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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치 않은 SBS의 '검찰발' 보도, 이대로 괜찮나?

[게릴라칼럼] 공교로운 시점에 나온 보도들, 반론도 없이 검찰의 주장만 전달해

등록 2020.02.06 20:06수정 2020.02.0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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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6일 오후 8시 51분]

<野 "뭐가 두려워 숨기나"…秋 "잘못된 관행 개선> <MBC <뉴스데스크>)
<추미애 "공소장 제출 않겠다" 재확인…"언론 유출 경위 파악"> (KBS <뉴스9>)
<'비공개' 공소장엔…"울산 경찰 수사상황, 21번 청와대 보고"> (JTBC <뉴스룸>)
<檢 공소장 보니 "경찰, 靑에 하명수사상황 21차례 보고"> (SBS <8뉴스)>
 

법무부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 비공개 원칙을 이어간 5일, 지상파 및 JTBC가 메인뉴스를 통해 이 사안을 다루는 스탠스는 확연히 달랐다. 먼저 보도량은 MBC와 KBS는 1건에 그친 반면, JTBC는 2건, SBS는 3건에 걸쳐 보도했다.

이 중 MBC는 법무부의 비공개 원칙에 따른 검찰과 법무부, 여야의 대립에 초점을 맞췄다. KBS는 법무부의 방침과 배경,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을 전하면서 "이에 앞서 동아일보는 오늘(5일) 공소장을 입수했다"며 관련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했다. "추 장관은 법무부가 제출하지 않은 공소장이 하루 만에 기사화된 일과 관련해 어떻게 유출이 됐는지 앞으로 확인하겠다고 말했습니다"라는 마무리 멘트와 함께.

JTBC는 "한 언론에 공소장의 내용이 공개됐다"는 언급과 함께 공소장 내용을 정리한 뒤,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청, 거부한 법무부…핵심 쟁점은?>라는 별도 리포트로 취재기자가 직접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를 둘러싼 반발과 쟁점, 향후 전망 등을 정리했다.

이날 <檢 "자신 있다"..'靑 선거개입 의혹' 녹취파일 확보>이란 단독보도로 한발 더(?) 나아간 것은 SBS였다. SBS는 비공개 공소장 내용에 대해 "저희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취재한 내용을 보도하기로 했습니다"라며 단독 취재임을 강조한 뒤, 소위 '검찰발' 보도를 이어갔다.

한 발 더 앞서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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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자 SBS 뉴스 보도 ⓒ SBS 영상 캡처

 
"검찰이 지난달 29일, 이 (울산시장 선거 의혹) 사건 피의자 13명을 재판에 넘기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에 대해서는 직접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하명수사와 선거개입 관련 혐의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SBS 취재 결과 검찰이 송철호 울산시장을 비롯해 사건 관련자들의 대화 내용이 담긴 다량의 녹취파일을 확보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사건 관계자들의 전화 통화나 대화, 회의 내용 등을 녹음한 파일들인 걸로 알려졌습니다." (SBS <檢 "자신 있다"..'靑 선거개입 의혹' 녹취파일 확보> 중에서)



기사만 놓고 보면, SBS는 녹취파일의 실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녹취파일 속 사건 관련자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적시하지도 못했다. "검찰이(...) 확보한 걸로 확인됐습니다"란 문장에서 알 수 있듯, SBS가 파일을 직접 입수했는지도 의문이 간다.

기사 전체가 '주어는 검찰', '술어는 알려졌습니다'라는 검찰의 전언으로 채워진 전형적인 검찰발 기사였다. 얼핏 보면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이 '진실'인듯 하다. SBS 보도를 더 보자.

"특히 송철호 시장과 측근들이 김기현 전 시장 측근 비리를 수집하고 청와대, 경찰과 접촉한 구체적인 정황들이 담긴 걸로 알려졌습니다. 대화 내용이 녹음된 시점도 송병기 울산 부시장 업무수첩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한 걸로 파악돼 검찰은 신빙성이 높은 걸로 결론 내렸습니다.

검찰은 이런 녹취파일을 바탕으로 공소장에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대화 일시와 내용을 특정해 적시했습니다. 지난달 말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이 연 비공개회의에서 객관적 물증이 확보된 만큼 공소 유지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도 이 녹취파일들이 결정적이었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녹취파일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신빙성이 높은 걸로 결론 내렸다"는 검찰의 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할 증거를 제시하지도 않았다. 반면 "수사 관련자들" 측 반박이나 반론, 여타 법조계 의견은 단 한 줄도 싣지 않았다. 물론, SBS의 이런 '단독'은 처음이 아니었다.

'녹취 파일'과 닮아 있는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

불과 5개월 전이다. <"조국 아내 연구실 PC에 '총장 직인 파일' 발견">이란 SBS의 '검찰발' 단독 보도가 논란이 됐던 때가. '조국 청문회'가 끝난 직후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 없는' 기소가 이뤄진 다음날이던 지난해 9월 7일, 이 단독보도를 전하는 앵커 멘트는 이랬다.

"검찰은 지난 3일 조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동양대 연구실을 압수수색 했습니다. 이후 정 교수는 압수수색 전에 연구실에서 가져갔던 업무용 PC를 검찰에 임의 제출했습니다. 검찰이 이 PC를 분석하다가 동양대 총장의 직인이 파일 형태로 PC에 저장돼있는 것을 발견한 것으로 S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검찰은 총장의 직인 파일이 정 교수의 연구용 PC에 담겨 있는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딸 조씨에게 발행된 총장 표창장에 찍힌 직인과 이 직인 파일이 같은 건지 수사하고 있습니다."


시점이 중요하다. 법조계조차 검찰의 '사문서 위조' 혐의 기소가 공소시효나 소환 조사 여부를 둘러싸고 무리한 기소, 정치적 기소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던 시점이었다. SBS의 이 단독보도는 검찰이 기소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한 '언론 플레이'의 일환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검찰발' 단독보도의 문제는 향후 사실 관계에 착오가 있거나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시점이나 신빙성 면에서 의구심이 드는 SBS '검찰발' 단독은 비단 '조국 일가족' 사건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논두렁 시계 보도' 진상조사위원회의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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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8일자 SBS 보도 ⓒ SBS 영상 캡처

 

"청와대가 유(재수)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이 중단된 뒤 감찰 자료를 모두 폐기하면서 김(경수 경남) 지사와 유 전 부시장 사이의 메시지는 남아 있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담당했던 전직 청와대 특감반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당시 유 전 부시장과 김 지사가 나눈 대화 내용 등을 재구성했습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해 김 지사를 소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12월 8일, SBS <8뉴스>의 <'유재수 감찰 무마' 개입 의혹…김경수 조사> 보도 중 일부다. 역시나 이 '단독'의 근거이자 검찰이 김 지사를 소환한 주요 근거는 검찰이 확보했다는 전직 청와대 특감반원들의 진술이 전부다.

하지만 그 '진술'도, 검찰이 아직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는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정황"도 SBS는 보도하지 못했다. SBS는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정황은 무엇인지, 또 전직 청와대 특감반원들의 진술은 무엇인지, 또 그 진술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이후 수많은 언론이 김경수 지사의 기소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결국 검찰은 더 이상 김 지사를 조사하지도, 기소하지도 않았다.

검찰발 보도가 이어지는 이 시점에서 지난 2017년 12월, SBS 노사 합의에 따라 구성된 '논두렁 시계 보도' 진상조사위원회가 발표한 조사결과 보고서의 결론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논두렁 시계' 보도경위에 대한 의혹 자체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명백하게 규명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이번 조사가 언론이 지금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 검찰발 수사 속보와 단독 보도의 취재 관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서 열거한 SBS의 개별 단독들은 사안의 경중도, 보도에 대한 판단도 각자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SBS가 "지금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 검찰발 수사 속보와 단독 보도의 취재 관행"을 근절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점이리라.  
#검찰 #SBS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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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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