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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전용, 비백인 전용... 어느 쪽에도 앉을 수 없었다

[유최늘샘의 세계방랑기 41] 희망 없는 희망봉, 남아공 케이프타운

등록 2020.02.12 15:12수정 2020.02.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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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부터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라비아, 아시아로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 주머니 가벼운 배낭여행자의 실시간 여행기입니다. 다양한 세계 각지의 모습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기자말]
공공 버스가 드물어 히치하이킹이 대중교통 수단인 북부와 달리, 보츠와나 수도 가보로네에는 크고 깨끗한 대형 버스 회사가 몇 곳 있었다. 아프리카 남쪽 나라들, 짐바브웨, 나미비아, 보츠와나, 모잠비크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연결하는 인터케이프 버스는 아프리카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국제적인 교통망과 깨끗한 서비스로 여행자들에게 유명했다.

2019년 국가별 GDP 자료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36위로, 100위권 밖의 인근 국가들보다 훨씬 크다. 경제적 격차 때문인지 남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의 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통했다. 


1488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도착한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유럽의 백인들이 남아프리카로 이주했다. 지리상으로는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가장 멀지만 다른 지역보다 백인 인구의 비율이 높고 그래서인지 유럽과 비슷한 사회 시설이 많았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관념에 비추어 '아프리카스럽지 않다'고 얘기되는 남아공 고급 버스를 경험해보려 했는데, 유명세 때문인지 새벽부터 버스 회사 앞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많아 당일 티켓은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다. 급히 공공 터미널로 이동해, 정해진 출발 시간 없이 사람이 꽉꽉 차야 출발하는 아프리카식(式) 미니버스에 올랐다. 350킬로미터를 이동해, 소매치기와 강도 위험으로 악명 높은 도시, '요하네스의 마을'인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는 언덕에 자리한 빈민가가 위험하다 했고,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는 오토바이 소매치기를 조심하라 했는데, 요하네스버그는 중앙 터미널과 기차역 주변에서도 사고가 잦다는 얘기를 들었다.

소문과 고정관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최대한 조심조심 몸소 부딪혀 보는 여행을 해 왔지만, 몇 차례 생사를 넘나들며 세계 일주의 막바지에 다다른 내 간은 뜻밖에도 콩알만큼 작아져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서 강도의 칼에 찔릴 뻔 한 다음부터는, '군대 제대 같은 큰 일 마무리 앞두고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고국의 격언이 종종 떠올랐다.

게다가 요하네스버그는 숙소비마저 비쌌다. 보츠와나 미니버스에서 만난 남아공 사람 피터(Peter)씨가 요하네스버그 거리가 위험하다며 친절하게 보디가드를 자청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난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 소매치기와 강도 사건이 많다며 나를 보호해준 피터 Peter 씨(왼쪽)와 그의 단골 식당 주인(오른쪽)과 함께 ⓒ 유최늘샘

 
"요하네스버그랑 남아공 대도시들이 정말로 위험해요?"
"소매치기랑 강도가 많지. 여행자들이 많이 털리니까 조심해야 돼."
"남아공은 주변 나라들보다 훨씬 잘 산다는데 왜 그럴까요?"
"가난해서 그렇지 뭐. 빈부격차랑 인종차별이 심해서 노숙인이 너무 많아.."



덕분에 무탈히 악명 높은 거리를 가로질러 남아공 돈을 환전하고 야간 버스 티켓을 샀다. 남아공의 남쪽 끝이자 아프리카의 최남단, 케이프타운까지는 1400킬로미터. 세계 일주의 마지막 장거리 버스 치고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희망 없는 희망봉과 케이프타운

'아프리카 종단 여행은 북쪽 끝과 남쪽 끝이 천국'이라고 쓴 여행 블로그를 읽었다. 아프리카 여행이 다른 대륙보다 비싸고 불편하고 어려울 수도 있는데, 북쪽 끝 이집트 다합과 남쪽 끝 케이프타운이 여행자가 머물기 편하고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다합의 푸른 바다에 푹 빠졌었다. 그곳으로부터 육로로 1만3595킬로미터를 지나 마침내 케이프타운에 닿았다. 193일 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했지만 모로코,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렇게 아홉 나라밖에 가보지 못했다.

아프리카에는 54개의 공식 국가와 9개의 비공식 국가가 있다. 이 거대하고 복잡다단한 대륙에서 내가 만난 아프리카는 고작 일부분일 뿐이다. 언젠가 아프리카의 서쪽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요하네스버그의 악명과 달리 케이프타운은 아름답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칼라하리 사막의 더위가 물러나니 서늘한 남반구의 바람이 불어왔고 광활한 포도밭이 펼쳐졌다. 기이한 모양의 산봉우리와 새파란 바다, 도시와 마을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다. 자자한 소문에 동감하는데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양과 대서양, 남극해가 만나는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일까, 전세계를 제패한 유럽 식민주의의 시작을 알린 곳이기 때문일까, 혹은 4000킬로미터 떨어진 남극에서 떠내려왔을지도 모른다는 아프리카 펭귄들의 향수 때문일까, 케이프타운에 불어오는 바람은 몸이 시리게 아름다웠지만 그 곁에는 먹먹한 슬픔이 감돌았다. 
 

테이블마운틴에서 바라본 희망봉 방향. 인도양과 대서양, 남극해가 만나는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 유최늘샘

 
테이블마운틴에서 케이프타운의 끄트머리, 희망봉을 바라보았다. 531년 전 유럽인들에게는 인도와 아시아로 향하는 '희망'의 장소였겠지만, 그 이후 오랜 세월 침략과 지배를 받게 된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아니라 '아픔과 절망'이 시작된 장소가 아닐까.

그 '희망'의 내용은 500년 동안 얼마나 바뀌어 왔을까. 도시 앞바다에는 작고(길이 4.5km) 아름다운 로벤섬이 떠있다. 아름다움이 무색하게, 17세기부터 500여 년 동안 흑인 노예와 정치범들의 감옥이었던 섬이다. 백인우월주의 정권에 항거한 넬슨 만델라도 18년 간 이 섬에 수감됐다. 

흔히 케이프타운을 '아프리카의 유럽', '지중해풍(風) 도시'라 한다. 아프리카 여느 지역보다 세련되고 편안하게 개발된 곳이고, 백인 인구와 여행자가 많으니 일면 타당한 설명이지만 한편으로는 도저히 편안하지 않다.

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정신분석학자 프란츠 파농은 식민지 역사 아래 서구화되고 분열된 흑인의 심리를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고 표현했다. 내 고향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린다. 나와 우리, 한국인을 비롯한 비(非)서구인의 시각은 얼마나 서구(서부 구라파)화 되어 있는 것일까. 잘못된 이름과 식민화된 생각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케이프타운의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변두리에는 노숙인과 빈민들이 사는 천막이 줄을 이었다.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들에는 대부분 술과 약에 취한 걸인이 많지만 남아공의 걸인들은 유난히 집요하고 때로는 공격적이었다.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따라오는 사람들을 떼어 내야했고, 배낭 지퍼를 열어 물건을 빼가는 사람을 잡아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이 부족한지, 여행자 거리에는 대낮에도 사설 경비원들이 순찰을 돌았다. 아름다운 자연과 화려한 도시의 바닥에 가난과 절망이 넘실거렸다.  
 

케이프타운 전경과 앞바다 왼쪽의 로벤섬. 500여 년 동안 흑인 노예와 정치범들의 감옥이었던 장소다. ⓒ 유최늘샘

 
백인 / 비백인 전용 벤치 앞에서 

케이프타운은 1488년 유럽인들에게 '발견'된 뒤 남아프리카 백인 이주와 침략이 시작된 땅이다.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정착촌 케이프식민지를 건설했고 1814년 영국이 식민지를 이어갔다. 백인의 비(非)백인 차별은 500년간 줄곧 이어져왔다.

남아프리카네덜란드어로 '분리'를 뜻하는 '아파르트헤이트'는 1948년 공고화 된 차별 정책이다. 모든 사람을 백인, 흑인, 컬러드(혼혈), 인도인 등으로 분류했으며, 거주지를 분리하고 인종간 결혼을 금지했다. '차별이 아닌 분리에 의한 발전' 이라는 미명하에 백인우월주의를 지향한 이 정책은 민주 선거에 의해 당선된 첫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1994년 폐지를 선언할 때까지 지속됐다.    
 

케이프타운 고등법원 앞 백인 전용 벤치와 비(非)백인 전용 벤치 ⓒ 유최늘샘

   
고등법원 앞에는 벤치 두 개가 놓여있다. 벤치는 텅 비어 있었지만 나는 둘 중 어느 곳에도 앉을 수 없었다. 왼쪽에는 'White Only(백인 전용)'이라고, 오른쪽에는 'Non-White Only(비백인 전용)'이라고 쓰여있다. 나는 백인이 아니니 백인 전용 벤치에 앉을 수 없었다. 길을 지나는 시민들이 '왠 황인종이 백인 벤치에 앉아 있지?' 하며 쳐다볼 것만 같아 부끄러웠다. 비백인 전용 벤치에 앉자니, 왜 이 따위 차별적인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모욕감과 분노가 차올랐다.

나는 어느 쪽에도 앉지 못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불과 25년 전의 정책이다. 정책은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남아프리카공화국 80퍼센트의 땅과 부는 20퍼센트의 백인이 소유하고 있다. 지구촌 방방곡곡에 사는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지만 모두 같은 사람이 아니며, 인종 차별과 식민주의는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았다.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로컬의 미래>에서 "근본적으로 오늘날의 '세계화'는 500년 전에 시작한 정복과 식민주의에 새로운 탈을 씌우고 계속 이어가는 착취에 불과하다"고 썼다.

오늘보다 공평하고 평화로운 세계의 내일을 향해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케이프타운 프리워킹투어.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 역사 투어의 참여 여행자들은 대다수가 백인이었다. ⓒ 케이프타운 프리워킹투어

 

케이프타운 남쪽 보더스비치 Boulders Beach 에 사는 아프리카 펭귄.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 유최늘샘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프리카여행 #인종차별 #탈식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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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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