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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거론하며 피고인 지적한 판사, 왜?

'미신고 수출' 관련 위헌법률심판 요청에 "특정 시점 및 다른 사정에 의해 크게 문제될 수 있어"

등록 2020.02.10 12:27수정 2020.02.1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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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발생해 국내 확산 조치가 상향되고 있는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지나는 버스운전기사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 이희훈

 
"마스크 이거, (평소 같으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 건데 이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이르러선 중요한 물건이 됐어요!"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317호 법정. 제3형사단독 김춘호 판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왜 '마스크'를 거론하며 피고인의 논리를 지적했을까.
 
이날 법정에선 관세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의약품 도·소매업체 A 과장의 선고공판이 진행됐다. A 과장은 회사 수출업무에 종사하던 중 2018년 2월 20일부터 2019년 1월 16일까지 총 24회에 걸쳐 관할 세관장에 신고하지 않고 의약품 2759개(한화 약 2억 3000만 원)를 수출했다.
 
그런데 A 과장은 재판을 받던 도중인 지난해 12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김 판사에 신청하기도 했다. 위헌법률심판은 법률이 헌법에 반하는지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것으로, 재판 당사자는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김춘호 판사 "미신고 수입-미신고 수출, 차이 있지만..." 
 
A 과장은 관세법 제282조 3항의 '추징'과 관련된 부분을 문제 삼았다. 해당 조항에 따라 미신고 수출품을 몰수할 수 없을 경우 국가는 범인으로부터 물품에 상당한 금액을 추징할 수 있다. 이는 미신고 수입품에 대한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A 과장은 '고의로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수출업무 담당 직원에게 물품에 상당한 금액을 추징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또 '수입에 비해 수출은 국내 경제나 생태계, 국민의 건강, 안전의 측면에서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비하므로 수입과 수출과 관련된 범죄를 똑같이 취급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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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청역 인근 약국의 모습이다. 기존에 있던 방역마스크는 모두 품절된 상태고, 남은 마스크는 아동용 방역마스크 포함 총 4개다. 옆에 비치된 것은 방역마스크가 아닌, (방한용) 면 마스크들이다. ⓒ 강연주

 
하지만 김 판사는 이날 선고공판에서 A 과장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김 판사는 "국제 거래가 국내 거래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점"이라며 "해외로 물품을 수출하려는 사람이 수출업무를 하면서 그와 관련된 행정적인 제약이 있는지 여부에 관해 살피지 않고 업무상 미숙이나 과실을 내세우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감면받으려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판사가 '마스크'를 거론한 것은 '수입에 비해 수출이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다'는 A 과장의 주장을 지적하면서 나왔다. 우선 김 판사는 "마스크 이거, 평소 같으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 건데 이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이르러 중요한 물건이 됐다"라며 "이처럼 (평소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물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특정한 시점에 다른 사정에 의해 크게 문제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어떤 물건이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필요한데 그게 과도하게 나가면 안 되므로 관세당국에서 (수출과 관련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현재 마스크와 같은 물건을) 함부로 신고 없이 수출해버리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며 "그런 점에서 볼 때 '무조건 수출을 많이 하면 나라에 좋은 것이다'라는 접근은 맞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도 이 같은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그는 "(형사처벌의 경우) 미신고 수입행위의 불법성과 미신고 수출행위의 불법성에 차이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바, 따라서 수입신고와 수출신고가 그를 통해 확보하려는 행정목적상의 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일단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수출이라고 하여 그것이 국내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이나 안전 측면에 미치는 영향이 마냥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물품이 국외로 수출되는 경우라고 하여 그러한 물품의 판매에 따라 취득하게 되는 부가가치만을 중시할 순 없다"라며 "그러한 물품의 종류나 그 물품이 사용되는 시기에 따라 (중략) 그 물품의 일정 수량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 또한 국민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중요시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이후 마스크, 손세정제 등이 신고 없이 대량 해외로 반출되고 이에 따라 해당 품목들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관세청 등 당국이 집중 단속에 나선 상황이다. 
 
한편 김 판사는 A 과장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김 판사는 "벌금 200만원, 추징금 2억 551만 6850원의 선고를 유예한다"라고 밝혔다. 선고유예는 범행이 경미한 피고인에 대해 일정 기간 선고를 미루고, 피고인이 그 기간을 사고 없이 보내면 선고를 면하는 제도다.
 
김 판사는 ▲ 범행이 업무상 미숙으로 인해 벌어진 점 ▲ 미신고 수입에 비해 미신고 수출의 경우 해악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점 ▲ 피고인이 회사로부터 급료를 받은 것 외에 미신고 수출로 인한 직접 취득한 이득이 없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마스크 #서울중앙지법 #관세법 #김춘호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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