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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의 진짜 정체 찾기? 그게 왜 중요할까

[주장] '인기 스타' 펭수의 인기 비결... 펭수는 오직 펭수로만 보아야

20.02.10 14:51최종업데이트20.02.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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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크리스마스마다 산타클로스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하얀 수염에 빨간 자켓을 입고 너털웃음을 웃는 뚱뚱한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마다 세계 각국의 꼬마들을 찾아와 양말주머니에 선물을 넣어줄 것이라는 믿음은 모든 어린이들의 로망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현실 속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아빠'나 '엄마'이거나, 혹은 사전에 미리 연출된 '연기자'라는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처음엔 순수한 믿음이 깨진 데 실망하거나, 어른들의 거짓말에 분노하기도 하고, 어차피 이 세상에 산타클로스 따윈 더 이상 없다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단계를 거친다.

하지만 그 시기를 한 번 넘어서면 다시 산타클로스라는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눈앞의 산타분장을 한 아저씨가 평상시에 우리 아빠이든, 서래마을에 사는 홍길동씨이든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에 산타의 복장을 하고 산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상 그 순간만큼은 산타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단지 알고서도 속아준다는 개념에서 좀 더 나아가, 서로가 합의한 세계관 안에 동참하여 역할극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 산타의 진짜 정체가 누구인지, 현실인지 가상인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다. 어차피 우리가 생각하고 보고싶어하는 '진짜 산타'는 어차피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중문화계의 대세로 떠오른 펭수 현상도 이와 비슷하다. 남극에서 온 210cm 자이언트 펭귄이라고 주장하며 '스타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펭수는 특유의 B급 감성과 자유분방한 캐릭터를 앞세워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런데 펭수가 높은 인기를 끌면서 정체를 받히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미디어와 누리꾼들 사급 이에서 최근 펭수의 진짜 정체로 추정되는 특정인의 신상명세가 공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평소 목소리가 펭수와 비슷하고 신체조건도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작 팬들은 '펭수는 펭수일 뿐'이라며 특정인을 추측하려는 모든 시도에 거부감을 표한다. 이들은 펭수라는 캐릭터와 세계관을 존중하며 펭수와 펭수 연기자를 굳이 구분하지도 않는다. 과연 이들은 피터팬 신드롬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철없는 어른이들일 뿐인 걸까?

펭수 팬들의 표현대로 '진지충' 혹은 '꼰대스럽게' 말하자면, 당연히 펭수는 진짜 펭귄이 아니다. 펭귄 복장을 쓰고 펭수인 척하는 연기자일 뿐이다. 물론 팬들도 바보라서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사실 펭수 현상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펭수라는 짜고치는 가상의 캐릭터에 이렇게 몰입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트맨이나 슈퍼맨은?아기공룡 둘리나 뽀로로는 모두 실존인물이었나. 간접적인 영상 화면으로만이 아니라 인형탈을 쓰고 실사로 캐릭터를 구현했다는 차이만 있을뿐 본질은 다를 것이 없다.

일종의 성인동화로서 펭수 현상의 매력은 인간세계의 규범을 초월하는 자유분방함에 있다. 사람의 언어를 쓰는 인간화된 펭귄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정작 펭수는 인간세계의 서열과 규범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EBS 교육방송 사장의 이름을 경칭 없이 부르는 야자타임을 펼치는가 하면, 누가 봐도 남자 목소리지만 남녀 성별의 구분도 가뿐히 무시한다. 심지어 과하지 않은 선에서 비속어나 허를 찌르는 독설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순수하지만 순진하지는 않고, 능글맞지만 얄밉지는 않은 것이 바로 펭수의 캐릭터다.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의 세계관에서 정해놓은 자질구레한 형식이나 규칙을 일일이 따르지 않아도 되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선을 넘어도 되는' 펭수만의 유머코드가 탄생한다. 한마디로 펭수는 펭귄의 모습을 빌려 어른들의 마음속에서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귀여운 일탈'을 대변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이런 펭수를 펭수 그 자체로 보지않고 펭수 연기를 하는 인간 캐릭터라는 시선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그 몰입도와 세계관이 흔들린다. 펭수를 연기하는 연기자의 개인사와 이미지가 섞이게 되면서 펭수 캐릭터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팬들에게 펭수는 어린시절 마음 속의 산타처럼 이미 구축된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물론 팬들도 마음 한켠에는 펭수가 누군지 알고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팬들에게 펭수 가면 뒤의 모습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펭수와 팬들 사이에서 형성된 놀이판의 규칙을 깨지 않는 것이다. 잭 스패로우는 조니 뎁이지만 <캐리비안의 해적> 안에서는 그저 캡틴 잭 스패로우 선장으로만 이해하면 된다. 조커를 잭 니콜슨이 연기하든, 고 히스 레저나 호아퀸 피닉스가 연기하든 조커는 조커일 뿐이다. 이게 현실이냐 아니냐에 집착하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고 몰입하는 것을 두고 허구라고 비판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물론 언젠가는 펭수 현상도 자연스럽게 내리막을 타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굳이 펭수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이야기조차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펭수는 오로지 펭수로서만 기억되고 존중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펭수와 그의 정체를 구분하기 시작하는 순간 판타지는 붕괴된다. 훗날 펭수 연기자가 토크쇼에 나와서 그때 펭수를 연기했던 시절의 에피소드 따위를 늘어놓기라는 순간이라도 온다면 오히려 팬의 입장에서는 추억을 부정당한 듯 슬플 것 같다. 펭수를 인정한다면 지금은 펭수의 시간이 방해되지 않도록 그 세계관을 존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펭수 펭수현상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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