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검투사의 검, 넥타이

[디카시로 여는 세상 시즌3 - 고향에 사는 즐거움 50] 복효근 디카시 '넥타이'

등록 2020.02.10 18:14수정 2020.02.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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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 이상옥

    올가미를 닮았으나
    죽음보다는 죽임의 혐의가 농후하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검투사의 검 같은
         - 복효근 디카시 <넥타이>


이 디카시의 '넥타이'는 숫사자의 '갈기'를 연상케 한다. 그것은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검투사의 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숫사자의 생태를 통해서 '넥타이'의 환유적 의미를 투사해 봐도 좋을 듯하다.

숫사자의 수명은 대체로 10년 남짓이다. 숫사자는 태어나 무리 속에서 2년 정도는 보호받는다. 물론 그 시기에도 다른 숫사자에게 물려죽거나 먹이를 잘 먹지 못해 죽기도 한다. 무리의 우두머리 사자가 외부의 젊은 숫사자의 도전을 물리치지 못할 경우에는 새로운 지배자가 된 숫사자는 기존의 새끼 사자들을 모두 물어죽인다. 이때는 어미 사자도 방어할 수 없다. 어미 사자는 새로운 수컷 지배자에게 복종해야 하고 그의 새끼를 가져야 한다.

무리 속에서 2년을 보낸 새끼 숫사자는 무리의 지배자인 아비와의 충돌을 피해 홀로 떠나 독립 생활을 해야 한다. 무리의 지배자 아비 사자는 새끼라 할지라도 수컷인 경우는 경쟁 상대로 보기 때문에 무리에 덩치가 커진 새끼 숫사자를 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쫓겨난 새끼 숫사자는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몸집을 키워 대략 네 살이나 다섯 살이 되면 전성기를 맞는다. 떠돌이로 혼자 사냥을 하기도 힘들기에 썩은 고기로 배를 채우기도 해야 하는 고난의 세월을 보낸다. 숫사자의 떠돌이 생활은 무리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숫사자로서는 통과제의의 기간이라 할 만하다.


전성기가 된 젊은 숫사자에게는 이제 무리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 무리를 만들어 지배자가 될 수는 없다. 기존의 왕권에 도전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숫사자가 무리의 지배자가 되는 것은 3% 정도라고 한다. 무리의 지배자가 된 숫사자라고 마냥 안락한 생활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암사자들을 거느리고 자기 새끼를 가지지만 무리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곧바로 퇴출된다. 무리의 지배자로서 누리는 기간은 짧게는 1년에서 끝나기도 하고 삼 년이나 사 년 정도 전성기를 누린다. 결국에는 도전자에게 패배하여 즉사하기도 하고 쫓겨나 떠돌이로 생활을 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숫사자의 갈기 같은 넥타이

숫사자의 갈기와 우람한 외모를 보면 경외감마저 느껴지지만 따지고 보면 왕좌에 오르든 그렇지 못하든 숫사자의 길은 고단하기만 하다. 암사자는 숫사자에 비해 수명도 길고 무리에서 쫓겨나는 일도 없으니 안정적으로 천수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몇 차례의 왕권 다툼의 피비린내를 경험해야 하며 새끼를 잃는 슬픔도 겪기는 하지만 그래도 숫사자보다야 평탄하게 일생을 보낸다.   

복효근의 디카시 <넥타이>의 '넥타이'는 사자의 갈기처럼 멋지게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남성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 있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디카시 #복효근 #넥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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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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