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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못 가면 '개근거지'?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사춘기 쌍둥이 아들과 나누는 이야기 16] 왜곡된 개근의 의미, 아이들에게서 배우다

등록 2020.02.12 20:07수정 2020.02.1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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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감금생활을 하고 있다. 24시간을 집안에서 보내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처음엔 '이참에 책이나 맘껏 읽고 냉장고 파먹기 하면서 지내면 좋겠다'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문제는 나 혼자서 감금생활을 하는 게 아니었다. 열세 살 쌍둥이 아들과 남편과 함께하는 감금생활 때문에 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날이다. 물론 조용히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시간들을 보내며 몸과 함께 마음도 지쳐가고 있다. 늦은 밤에 아이들이 잠들면 비로소 내 시간이 되지만 그마저도 즐길 여유가 남아 있지 않다.

침대에 누워 '내일은 아이들과 영화나 한 편 볼까?' 생각하면서 영화 애플리케이션을 보았다. <스탠리의 도시락>이란 영화의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손가락을 움직이기만 하면 영화는 재생된다. 어떤 영화인지 간단히 살펴보려다가 누운 자세 그대로 영화를 끝까지 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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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탠리의 도시락> 스틸 컷 ⓒ 타임스토리그룹

 
주인공 스탠리는 알지 못하는 어떤 사정(영화 뒷부분에서 밝혀진다)으로 도시락을 못 가져온다. 선생님 중에도 도시락을 챙겨오지 못하는 '베르마 선생님'이 있다. 스탠리는 '오늘은 빵을 사 먹을 거야' '집에 가서 먹고 올 거야' 등의 핑계를 대로 교실을 빠져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친구들이 도시락을 나눠주기도 한다. 반면 베르마 선생님은 몰래 다른 선생님의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대놓고 도시락 나눠 먹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나는 엄마다. 엄마의 눈으로 바라본 시선에서 스탠리는 너무나 안타깝다. 점심시간이면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오후 수업시간엔 허기져 하는 모습, 주머니의 박음선이 떨어진 윗옷, 찢어진 책가방 등 당장이라도 데려다 씻겨주고 따듯한 밥을 해주고 싶어진다.

크리스마스 휴일이 지나고 학교는 보충수업을 하기로 결정한다. 이 말은 제대로 된 도시락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역시 스탠리는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다. 친구 아만은 '스테인리스로 된 사단 도시락'을 가져온다. 식탐이 많은 베르마 선생님은 아만의 도시락을 보고 흐뭇해 하며 같이 먹기를 종용한다.

그날따라 다른 학생과 선생님이 베르마 선생님의 발목을 잡는다. 가까스로 그들을 따돌린 베르마 선생님이 스탠리의 교실에 도착했을 때 아만의 도시락은 다 비워져 있었다. 화가 난 베르마 선생님은 마침 빈 그릇을 들고 있는 스탠리에게 화풀이를 한다. 베르마 선생님이 나가고 친구들은 스탠리를 위로해 준다.

그 다음날부터 베르마 선생님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친구들은 스탠리와 도시락을 나눠 먹기 위해 베르마 선생님을 따돌린다. 며칠간의 추격전 끝에 아이들은 꼬리를 잡힌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도시락을 싸오지 않을 거면 학교에 나오지 말라'라며 스탠리에겐 등교 정지를 명한다.

순간순간 화가 치밀지만 영화는 따뜻했다. 스탠리와 그의 친구들이 그렇게 느끼게 해준다. 도시락을 못 먹어 항상 허기진 상태이면서도 상으로 받은 초콜릿을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스탠리. 스탠리의 사정 따위는 우정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친구들(오히려 우정은 돈독해진다). 영화가 뒤로 갈수록 하나씩 베일이 벗겨지며 그동안의 스탠리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내일 꼭 아이들과 같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스탠리와 그의 친구들의 모습과 그날 낮에 읽었던 어떤 기사의 내용은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아이들을 일반화한 나 자신을 반성하며

그 기사에는 '개근거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결석을 못하는 거지란 뜻이다. 믿고 싶진 않지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라떼는 말이야-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표현-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개근상은 꼭 받아야 하는 상이었다. 우수상이야 받는 친구도 있고 못 받는 친구도 있는 게 당연하지만 개근상은 장기 입원이 아니고서는 꼭 받아야 하는 상이었다. 3일 결석을 하면 정근상을 받는데 그건 조금 창피했다. 근면함의 상징이던 개근이 왜 거지라는 말과 합해졌을까 궁금해 하며 기사를 읽었다.

체험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출석인정을 해주지만 아이들 눈에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결석이다. 개근을 하는 아이, 다시 말해 결석을 하지 않는 아이는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친구라는 게 그들의 논리이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면 가난하니까 거지이고 그래서 개근거지가 되는 것이다.

내 아이들도 열세 살, 곧 초등학교 6학년이 된다. 또래의 아이들 머릿속에서 생긴 생각이 입을 통해 배출되고 친구의 귀로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그 다친 마음을 보이면 엄마의 마음은 몇 십 배 더 아프다.

나는 믿고 싶지 않다. 고작 또래의 장난감, 게임 아이템 등을 부러워해야 할 아이들이 부모의 경제력을 내세워 무리를 만들고 또 다른 무리를 배척하는 이 상황이 약간은 무서워졌다. 그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내 아이들도 개근거지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과 덮어두고 싶은 마음 반반을 억누르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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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풍경 ⓒ flickr

 
다음 날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스탠리의 도시락>을 보여주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영화는 열세 살의 마음을 붙잡기 힘들다. 엉덩이가 근질거리던 아이들은 스탠리의 힘겨운 상황이 시작되자 영화에 집중했다. 베르마 선생님의 행동에 분노하며 영화를 보던 아이들은 아침을 먹으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조심스럽게 질문할 틈을 엿봤다.

강물 : "어떻게 선생님이 그럴 수 있지?"
마이산 : "맞아. 스탠리 같은 애는 더 보살펴 줘야 해."
나 : "애들아, 엄마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너희 반에도 해외여행 간 친구들 있어?"
마이산 : "응, 있는 거 같아. 잘 모르겠어."
강물 : "있어. 규몽이가 시드니에 갔었어."

나 : "그래? 친구들이 다녀와서 자랑 많이 해?"
강물 : "가기 전에는 했는데 오히려 갔다 와서는 안 해."
나 : "너희들도 해외여행 가고 싶어?"
마이산 : "딱히, 별로."


조금 안심이 된 나는 하나 더 묻기로 한다.

나 : "새 아파트 단지에 이사 간 친구들 많아?"
강물 : "응, 좀 있어."
나 : "혹시 그 친구들 부러워?"
강물: "왜? 오히려 우리 아파트 근처에 친구가 더 많이 살아."
마이산 : "맞아. 친구가 많은 곳이 더 좋아."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나 : "애들아, 친구가 스탠리처럼(비교는 항상 조심스럽다) 깨끗이 씻지도 않고 찢어진 옷을 입고 낡은 가방을 메고 학교에 오면 같이 어울릴 거야?"
강물 : "상관 없는데. 대신 세수는 하라고 할 거야."
마이산 : "나도 같이 놀 거야."
나 : "친구가 스탠리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떡할 거야?"
강물 : "도와줘야지."
마이산 : "어른들한테 도와달라고 하고 같이 놀 거야."


내 마음을 무겁게 했던 그 기사는 특별한 상황에서 나온 소수의 말이었기를 바란다. 그 기사를 일반화하며 스탠리의 친구들과 우리나라의 아이들을 비교한 나 자신을 반성한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생각을 말을 바꾸는 것은 바로 나를 포함한 어른들임을 스탠리와 그의 친구들에게서, 또 내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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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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