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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기생충> 끝나자 누군가 다가왔다 "한국인인가?"

[현장] 외국에서 다시 본 영화... 영국 관객들이 가장 크게 웃었던 장면

등록 2020.02.13 18:56수정 2020.02.1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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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은 영국에서 지난 7일부터 런던을 중심으로 영국 전역에서 상영중이다. 지난 2일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 주최로 열리 영국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이후, 오스카 4개부문을 석권하면서 영국에서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영국의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상영관 중 하나인 '오데온(ODEON)' ⓒ 김종철


갈색 곱슬머리의 청년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나에게 말을 건넸다. 한국 사람인지를 묻더니,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자신보다 더 영화를 잘 이해했을 것이라면서.

그의 질문은 영화 <기생충> 막바지에 "왜 운전기사가 사장을 갑자기 찔러 죽였는가"였다.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우리는 다시 영화를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박 사장이 마지막에 자동차 열쇠를 들면서 지었던 표정, 냄새(smell)라는 표현이 영화 중간에 몇 차례 등장했던 것과 그 의미들...

지난 11일 늦은 저녁, 런던 남쪽 윔블던 한 극장에서 만난 앤디(Andi)와의 대화는 신선했다. 호기심이 가득찬 영국 청년이었다. 첫 한국 영화에 대한 감상평이 끝나자 스마트폰과 북한, 독일을 주제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영국에서 <기생충>을 다시 본 이유

그날 저녁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작정 근처 극장으로 향했다. 바로 전날부터 내 스마트폰의 각종 알림과 웬만한 소셜미디어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 소식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심지어 아르헨티나 변호사인 친구 라미로(Ramiro, 그는 런던에 머물다 지난달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는 모바일 메신저로 나에게 <기생충>이 어떤 영화인지를 물어왔다.

그리곤 그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 사실 지난해 <기생충>을 본 이후, 이들에게 영화를 설명할 정도로 자세한 내용들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하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그 생생한 한국 특유의 대사들이 어떻게 영어로 표현돼 있을까, 과연 이곳 사람들도 우리가 웃거나 긴장할 때 같은 반응을 보일까 등. 내가 극장을 다시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오데온(ODEON) 영화관은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극장 체인이다. 윔블던 오데온은 아이맥스(IMAX) 상영관을 비롯해 15개의 스크린을 갖고 있는 제법 큰 극장이다. 이날 이곳에선 10여 편의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기생충>은 두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오후 9시 10분 표를 샀다. 여러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통로 입구에서 극장 관계자가 표를 검사했다. 그는 웃으면서 "나이스 초이스(nice choice)"라고 했다.

자리는 충분했다. 일반석 기준으로 성인은 10파운드(우리 돈 1만5000원 정도), 15세 이하 청소년과 60세 이상은 9파운드였다. 프리미엄 좌석은 12파운드였다. 극장 좌석은 100석이 채 안 됐다.

서울대는 '옥스퍼드'로, 카톡은 '왓츠앱'으로

사실 주말도 아닌 평일 저녁 9시가 넘어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영화가 끝나면 밤 11시가 훌쩍 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후 9시께 자리를 잡아 앉았을 때, 극장은 대여섯 명 정도만 들어와 있었다. 이후 10분쯤 지나서 제법 관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추 세어보니 30여 명 정도 됐다. 젊은 남녀도 보였고, 중년으로 보이는 부부 등 다양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우리나라처럼 각종 광고가 이어졌다. 그 중에 농심 신라면 광고가 눈에 띄었다. 영화 내용 중에 '짜파구리(짜파게티와 너구리 라면을 섞어 만든 것)'가 나오면서, 농심 쪽에서 상영 전에 광고를 하게 됐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영화는 시작됐고, 새롭게 다가왔다. 매번 극장에서 외국영화를 볼 때 우리말 자막이 뜨던 자리에 영어 자막이 나오니 생경했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 말했듯, 나는 그 '1인치 장벽'을 넘어서는 관객들의 반응을 느꼈다.

영어 자막으로 표현된 대사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단어는 '옥스퍼드'와 '왓츠앱'이었다. 영화 초반 아버지 기택(송강호)이 딸인 기정(박소정)의 대학 졸업장 위조 기술을 빗대어 '서울대 문서위조학과'를 언급했을 때, 젊은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자막에는 '옥스퍼드(Oxford)'라고 적혀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은 이곳 사람들에게도 아무나 갈 수 없는, 최고의 학교로 인식돼 있다. 또 '카톡'은 영미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인스턴트 메신저인 '왓츠앱(Whats app)'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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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영국 멀티플렉스 오데온(윔블던)에서는 기생충을 2개의 상영관에서 평일 하루 5차례에 걸쳐 상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상영관 1개로 2-3차례 상영하는 데, 그보다 2배 정도 더 상영하는 것이다. ⓒ 김종철


물론 다른 한국어 대사를 영어로 맛깔스럽게 옮겨놓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관객들은 영화 초·중반 배우들이 직접 던지는 영어 대사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영화 속 배우들이 던지는 영어 대사는 단순 의미보다는 계층적인 측면에서 함축적인 의미가 더 크다.

또 박 사장 아들의 인디언 분장과 스카우트 캠핑 이야기 등이 나오자 관객들은 좀더 친근감을 느끼는 듯했다. 이어 영화가 기택 가족과 지하층 사람들과의 갈등, 생일파티에서의 살인 등으로 전개되며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자,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는 '오우~' 하는 조용한 탄식도 들렸다.

특히 영화 중반 이후 박 사장의 전 집사가 기택 가족의 정체를 알고, 동영상을 찍으면서 북한 핵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북한 텔레비전 아나운서 성대 묘사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지하층으로 숨어들어간 기택이 새로운 집 주인으로 온 '독일' 사람을 '순진하고, 쏘세지나 맥주만 먹는 사람'으로 말하는 부분에서, 관객들은 크게 웃었다. 이는 과거 영국과 독일 사이에 있었던 1차 세계대전 등 전쟁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 중인 앤디는 "영국인은 독일(사람)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다"면서 "1차 세계대전 등 전쟁을 겪어온 세대들이 여전히 살아 있고, 각종 기념 행사 등을 통해 전쟁에 대한 기억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 관객들은 북한보다 독일에 반응

영화 마지막 장면, 기택의 아들이 돈을 벌어 집을 사서 아버지를 지하에서 살려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소오 롱(so long, 그럼 이만)'이라는 마지막 자막이 올랐다. 관객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부 관객은 마지막 스태프들의 이름 등이 오를 때까지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나 역시 마지막 장면 후 잠시 앉았다가 영화관 문을 나섰다. 문을 나서고, 발걸음을 옮길 때 한 젊은 청년이 나에게 다가왔다. 앤디는 '궁금한 것이 있다'고 했고, 내가 웃으면서 "나는 봉 감독이 아니다, 나 역시 관객"이라고 하자, 대뜸 "(마지막 부문에서) 왜, 운전기사가 갑자기 사장을 칼로 찔러 죽였는가"라고 물었다.

순간 고민스러웠다. 사실 그동안 크게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영화에서 몇 차례 등장하는 '냄새'라는 표현을 말해 줬다. 이미 박 사장과 기택 사이에 '냄새'는 계층을 구분 짓는 단어가 됐고, 마지막 박 사장이 자동차 열쇠를 건네받는 과정에서 보인 모습(태도)은 상류층의 하위 계층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를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관을 나오는 통로에서 그와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이어 내가 이미 작년에 한국에서 영화를 봤고, 이번 오스카 수상과 함께 다시 한번 보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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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 수식을 전하는 영국 일간 신문 가디언(아래)과 석간 이브닝 스탠다드. <가디언>은 이미 기생충의 감독상과 각본상 수상을 예상하기도 했으며, 지난 11일치 신문에서는 1면 사진과 함께 2면에 걸쳐 수상 소식과 의미를 자세하게 보도했다. <이브닝 스탠다드>는 10일 석간식문에서 신문 제호 옆에 봉준호 감독 사진과 함께 사설까지 써가며 기생충의 수상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 김종철


그는 "한국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오스카 수상 뉴스를 보고, 신기하고 궁금해서 극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인상적이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을 알려 달라고 하자, "대학 졸업장 위조하는 것과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촬영하는 장면과 북한 핵 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어 집사가 북한 핵 이야기를 하면서 목소리 톤을 바꿔가면서 연설하듯 말하는 것을 어떻게 봤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냥 의기양양하게 말하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에 나오는 아나운서 말투를 배우가 흉내낸 것이라고 알려줬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친구들에게 알려 줘야겠다"고 답했다. 또 영화를 본 소감에 대해 "브릴리언트(brilliant, 대단한), 브릴리언트"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리가 극장 통로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중년으로 보이는 부부는 우리를 향해 웃으면서 "이츠 아웃스탠딩(it's outstanding, 훌륭했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문 사설까지 '브릴리언트 코리아'… 백인 중심 문화우월주의 변화의 전조

영국 언론들도 이번 <기생충>의 오스카상 석권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을 싹쓸이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오스카상에 앞서 열린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기생충>은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 등 2관왕을 차지했지만, 작품상과 감독상 등은 < 1917 > 등으로 돌아갔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오스카 시상식 직전 주말판(8일치) 신문에서 영화전문기자인 피터 브라드쇼(Peter Bradshaw)의 '누가 수상할 것인가(Who will win?)'를 통해 <기생충>의 '감독상과 각본상' 수상을 예상했었다. 이 신문은 지난 11일치에서 기생충의 수상 사진을 1면 톱으로 싣고,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과 함께 새 역사를 썼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비비씨(BBC)>를 비롯해 <더타임스>와 <데일리메일>, <텔레그래프> 등 대부분 일간 신문들도 <기생충>의 수상 소식을 비중있게 다뤘다. 특히 영국 최대 석간신문인 <이브닝 스탠더드>는 10일치 신문에서 아예 '브릴리언트 코리아(Brilliant Korea)' 제목의 사설을 싣기도 했다.

신문은 "<기생충>의 수상은 전세계에 걸쳐 차세대 영화제작자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문화 이슈가 영국 신문 사설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들은 대체로 <기생충>의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 등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오랫동안 지속돼온 '백인 중심의 영미문화 우월주의 변화'에 더 주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앤디도 아침 신문을 봤다고 했다. 잠시 후 그는 시계를 보더니 웃으면서 "나이트버스(night bus, 심야버스)를 타야 한다"면서 "언젠가 한국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비행기로 아무리 빨리 가도 11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더니, 그는 "오마이 굿니스(Ohmy goodness, 어이구)"라고 말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밤 12시가 훌쩍 넘어섰다. 스마트폰 알림은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기자회견 풀버전 영상을 소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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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 수식을 전하는 영국 일간 신문 가디언(아래)과 석간 이브닝 스탠다드. <가디언>은 이미 기생충의 감독상과 각본상 수상을 예상하기도 했으며, 지난 11일치 신문에서는 1면 사진과 함께 2면에 걸쳐 수상 소식과 의미를 자세하게 보도했다. <이브닝 스탠다드>는 10일 석간식문에서 신문 제호 옆에 봉준호 감독 사진과 함께 사설까지 써가며 기생충의 수상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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