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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이주한 나의 꿈은 '세금 내는 자영업자'

서귀포에서 음식점 겸 서점을 운영하는 나의 일상

등록 2020.02.18 17:09수정 2020.02.1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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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한 지 일 년도 안 돼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조금 벗어난 호근동, 초등학교 앞 귤밭 사이 한적한 동네에 음식점을 열었다. 장사라니, 계획은 둘째 치고 꿈도 꾼 적이 없는데 떡 하니 샌드위치 가게를 열고 그 안에 책방까지 열었다. 샌드위치 가게는 열겠다고 주장한 주방장 언니가 책임 진다지만 책방은 내 책임인데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50줄의 주방장 언니나 40줄의 나나 직장생활만 해봤지, 장사라고는 경험이 없었다.

우리가 얻은 가게 자리는 초등학교 앞이지만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문방구 하나 없다. 주방장 언니와 나는 1000원짜리 코코아부터 2500원 하는 돈가스 버거까지 어린이 메뉴를 만들었다. 어린이들도 이용할 수 있는 동네 카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반, 코 묻은 돈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겠냐는 절박한 마음이 반이었다.

가게를 열기도 전에 기웃거리며 들어와 '뭐 팔아요?'라고 수줍게 물어본 우리의 첫 손님도 초등학생이자 이웃집 아이였다. 아무것도 팔지는 못했지만 우리집 문을 처음 열고 들어와준 고마운 손님으로 가게의 역사책(즉, 주방장 언니와 내 마음 속에)에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는 들어와서 쭈뼛쭈뼛하며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몇 달 후에는 전용 놀이터라도 만난 듯 카페를 점령했다. 공부하고 일하고 직장 다니며 세월 보낸 비혼(非婚)의 주방장 언니와 나는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이토록 가까이에서, 또 자주 보기가 처음이라 신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들도 각자 성격과 개성이 다 달랐다. 무던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고, 생글생글 미소를 잘 짓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친구들보다 유난히 얼굴이 어두운 아이가 있다. 퉁퉁한 아이는 잘 먹고, 마른 아이는 입이 짧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면서 주방장 언니와 나를 보고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는 톤으로 '장사 잘 되세요'라는 이상한 문장을 덕담으로 건네는 녀석이 있어 웃음짓기도 했다.

A는 말만 어른스러운 것이 아니라 태도에도 어른스러운 데가 있어서 주방장 언니를 보든 나를 보든 언제나 대화를 시도했다. 캐나다에 사는 친구가 딸을 데리고 방문했을 때 가게 앞에서 이 아이와 마주쳤길래 영어로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이는 내가 하는 대로 멀어져가는 친구와 딸에게 '바이바이!'를 외치더니 돌아서서는 '아, 영어로 말하니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네.'하며 또 예의 할아버지 같은 투로 말했다. 필시 언어에 재능이 있으리라.

친구들보다 머리통 하나쯤 키가 크고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큰 B는 우리에게 어린이용 세트 메뉴를 제안하기도 했다. 컵스프와 토스트를 묶어서 팔라는 것이다.

우리는 제안한 초등학생의 이름을 붙여 겨울 한정 메뉴를 팔기도 했다. 이 아이는 사업 감각이 남다르려나. 날마다 우리집에 괜히 한 번이라도 얼굴을 비추던 초등학교 4학년 이웃집 아이는 이제 6학년이 되어 자주 오지 않는다. 우리집에 자주 왔던 5, 6학년 아이들은 이제 중학생이 되어 한 계절에 한 번 정도 떼로 와서는 저희가 다니는 중학교 앞에 분점을 열라고 조른다. 매일매일 오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는다.

올해 초에는 갓 100일이 된 딸을 둔 부부가 이웃으로 이사 왔다. 아기가 어려 나들이가 어려운 아기 엄마는 거의 매일 딸을 데리고 우리 가게로 놀러 왔다. 초등학생도 1, 2학년은 아기처럼 보였는데, 요만한 신생아를 매일 보기는 또 처음이라 주방장 언니와 나는 이 '초미니 인간'에게 홀딱 빠졌다.

알게 되는 것들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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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꿈은 세금 내는 자영업자다. ⓒ unsplash

 
백일이라 낯을 가리지 않으니 한가한 가게를 지키는 아줌마 둘이서 볼 때마다 안아 주었다. 20대에 첫아기를 낳아 키우며 둘째 낳을 이야기하는 서글서글한 새댁에게 잠시 팔을 쉬는 시간을 만들어주고도 싶었다. 아기는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나 어릴 적에 툭하면 당신 팔뚝 길이를 재 보이며 '너 처음에 요만했어'라고 하셨는데 진짜였다. 정말 작았다.

머리가 무거워서 가누지 못하던 아기는 곧 머리를 가누게 되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목을 빼고 머리를 돌렸다. 배밀이를 시작했고, 기는가 싶더니 뒤집었고, 엄마 무릎이나 의자를 붙잡고 일어서려고 용을 썼다. 어제 보고 오늘 보는데도 얼굴이 달라진 것 같았고, 며칠 못 보면 그새 엄청 커진 것 같았다. 남이 봐도 아까울 지경이니 부모 마음은 어떠랴.

아기의 몸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 팔다리가 얼마나 길어졌는지, 이제는 볼에 붙었던 살이 쏙 빠지고 걸음이 빠른 돌잡이가 되었다. 아기 엄마가 위대해 보이고, 새삼스럽게 '우리 부모님이 나 키우느라 고생하셨구나' 싶었다. 내 자식 볼 일 없어 모를 뻔 했는데 뒤늦게라도, 요만큼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아이들은 정성과 사랑을 먹고 자라고, 나는 장사를 하며 자란다.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고, 청소를 하고, 음료를 만들고, 그릇을 치운다. 식탁을 닦고, 의자를 바로 놓는다. 오늘 물을 줄 화분을 따로 추려서 물을 주고, 죽은 가지나 잎을 잘라낸다. 화초가 새끼를 치면 작은 화분에 새로 심어주고, 너무 자랐으면 분갈이를 해준다. 음악을 듣고,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우리 가게 이야기를 쓰거나 남의 이야기를 읽는다. 이번 주에 열릴 책모임과 뜨개질 모임을 점검하고, 약속하고, 연락한다. 책을 새로 꽂고, 다음에는 뭘 뜰까 생각한다.

종일 사람을 기다리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지도 않는데 일은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다. 자영업자로 살기 전에 자영업자의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언론에 회자되는 자영업자의 어려움 따로, 유리지갑이라는 월급쟁이의 피해의식 따로였다. 음식점이나 찻집에 가면 1인 1메뉴를 주문해 달라는 요청이 살기 위한 몸부림인 줄 몰랐다. 최저가를 찾아 헤매는 쇼핑 습관이 누군가의 고혈을 대가로 하는 줄도 몰랐다. 장사를 하면 모두 턱없는 이익을 남기는 줄 알았다.

장사를 시작한 지 3년째이지만 매출이 적어 세금 한 푼 내 본 적이 없다. 지금 내 꿈은 세금 내는 자영업자다. 나는 간이과세자로 연매출이 3000만원 이상이면 세금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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