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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이지만 무죄" 후배 법관에 90도 숙인 선배 '피고인' 법관

서울중앙지법, '박근혜 명예훼손' 재판 등 개입한 임성근 판사에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어" 무죄

등록 2020.02.14 13:11수정 2020.02.1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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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3일, 임성근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주문, 피고인은 무죄. 무죄 판결을 언론 등에 공시하길 원하십니까."
"네."


피고인인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7기)가 재판장인 송인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천천히 허리를 세운 뒤 법정을 빠져나간 임 부장판사는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는 법원 경위가 뛰어나가 미리 잡아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건물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떠났다.

위헌적 행위이지만 무죄. '사법농단' 의혹 법관 중 한 명인 임 부장판사에게 내려진 1심 판결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14일 오전 열린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의 재판관여 행위는 피고인의 지위 또는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의 행위가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직권남용죄의 형사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범죄구성 요건을 확장 해석하는 것이어서 이 또한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되어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판결했다.

임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하던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당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등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해당 사건의 재판장이었던 이동근 부장판사에게 ▲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기사가 허위라는 점이 입증되었다는 점을 밝히게 하고 ▲ 판결문 구술본 말미(선고 시에 읽는 요약본)를 미리 보고받아 이를 수정하도록 요청했으며 ▲ 선고기일에 외교부 공문의 내용을 고지하도록 요청했다.

또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의 체포치상 사건의 재판장이었던 최창영 부장판사에게 지시해 판결문 내용 일부를 수정 및 삭제하도록 지시하고 ▲ 프로야구선수 도박 사건 담당판사인 김윤선 판사에게 '다른 판사에게 더 물어보라'고 하는 등 이 사건이 정식재판이 아닌 약식명령으로 마무리되도록 이끌기도 했다.

"법관독립 침해, 다만..."

송 부장판사는 이날 약 50분 동안 판결 이유를 읽어 내려갔다. 그는 "헌법은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고 (중략) 이를 위해 다른 국가기관이나 외부세력뿐만 아니라 사법부 내부에서도 법관의 독립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라며 "사법행정권도 궁극적으로 사법권 독립 내지 법관의 독립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므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되는 한계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의 재판관여 행위는 법관의 재판업무에 개입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은 법관 독립의 원칙상 재판업무에 관하여 행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이 사건 각 재판 관여행위 당시 이를 피고인에게 구체적으로 위임·지시 또는 명령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관찰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가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없다"라며 "오히려 피고인의 재판관여 행위는 피고인의 지위 또는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송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재판관여 행위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징계사유 등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지만,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라고 결론냈다.

특히 상급자인 임 부장판사의 지시가 각 법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는 "합의부의 재판은 합의에 따라 심판하는 것이므로 재판장의 의사와 독립된 것으로 재판장이 혼자서 이를 결정할 수도 없다"라며 "(합의부의 재판장이었던) 이동근, 최창영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요청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자신의 법적 판단 및 합의부 내의 논의 등을 거쳐 독립적으로 판단, 재판부와 합의해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윤선 판사 또한 동료 판사들의 의견을 듣고 독립적으로 결정해 피고인의 요청과 김 판사의 약식명령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됐다"라며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려면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이 의무 없는 일을 했거나 다른 사람의 구체적인 권리행사가 방해되는 결과가 발생해야 하며, 또한 그 결과의 발생은 직권남용 행위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행위가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직권남용죄의 형사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범죄구성 요건을 확장 해석하는 것이어서 이 또한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돼 허용되지 않는다"라며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해 무죄를 선고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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