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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지금 대구는...

[대구완전학습] 아쉽게 끝나버린 '대구 시민 주간'

등록 2020.02.28 12:25수정 2020.02.2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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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 ⓒ 정만진

 
2월 21일은 '대구 시민의 날'이다. 국채보상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 21일부터 대구2.28민주운동 기념일인 2월 28일까지는 '대구 시민 주간'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행사들이 취소됐다. 3.1절 기념식도 취소됐다. 코로나19를 걱정해 시민들은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가게들에는 손님이 끊겼다.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일부는 지역감정에 의존해 대구를 비방하기도 한다. 대구를 격려하는 뜻에서 '대구 시민의 날' 및 '대구 시민 주간' 관련 글을 써 본다.

대구 시민 주간

2월 21일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다. 2월 28일은 1960년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이승만 독재에 항의해 민주화 시위를 벌인 날이다. 그 두 날을 기념해 21일을 시민의 날로 정하고, 28일까지를 시민 주간으로 정한 것이다.

국채보상운동부터 먼저 알아본다. 1907년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에 진 국채는 1300만 원 정도였다. 1300만 원의 규모에 실감을 느끼지 못해 "1300만 원? 얼마 안 되네!" 하는 분도 있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의 1년 예산이 1300만 원 정도였다고 소개하면 생생한 체감을 맛볼 수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하면 300조 원 정도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 국채보상운동을 본격화한 서상돈(왼쪽)과 김광제. 사진은 대구근대역사관 게시물을 재촬영한 것임. ⓒ 대구근대역사관

 
우리나라가 무엇 때문에 일본에 그렇게 많은 나라빚을 졌을까? 일본은 우리나라를 경제적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강제로 부채를 떠 안겼다. 일본은 우리 정부에 엄청난 돈을 강압적으로 빌려주고는 그 돈으로 철도 공사 등을 벌이게 했다. 국채 1300만 원은 1910년 4400만 원으로 엄청나게 증가한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 계획이었던 일제의 음모가 국채로 현실화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 대구 사람들은 앞장서서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나라의 빚을 갚아야 경제적으로 독립이 되고, 나아가 정치적 독립을 쟁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구 사람들은 민족의 선각자였다고 상찬할 만하다.

국채보상운동은 독립운동이다

흔히 국채보상운동을 자강 운동, 자립 운동, 경제 주권 운동 식으로 표현하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국채보상운동은 독립운동이다. 1907년은 나라가 사실상 망한 상황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하면서 김광제와 서상돈 등은 "나라빚을 갚지 못하면 땅을 주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식민지가 된다는 뜻이었다. 

국가보훈처도 그 무렵 의병들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있다. 일제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국채보상운동을 탄압하여 결국 실패로 끝나게 만든 것도 그 운동이 독립운동이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사람들의 자랑이요, 자부심이다. 
 

중구 남산동 소재 2.28민주운동기념회관 ⓒ 정만진

 
2월 28일은 2.2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1960년 4월 19일 시작된 4월혁명은 2.28에 힘입어 일어났다. 대구근대역사관은 "2.28민주운동은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 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제1공화국의 붕괴를 이끌어냈다"라고 게시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당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제3세계 국민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 1960년대 세계적 학생운동으로 번져나갔다"라고 자부심을 표시하고 있다.
 

중앙초등학교 터 2.28중앙공원의 김윤식 시비에는 그의 시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 전문이 새겨져 있다. ⓒ 정만진

 

2.28중앙공원 입구의 '연혁'은 2.28의 의의에 대한 간결하고도 핵심적인 소개를 보여준다. ⓒ 정만진


다른 도시는

다른 도시들에도 시민의 날이 있다. 서울은 한양으로 천도한 1394년 음력 10월 28일을 기념해 양력 10월 28일을 시민의 날로 정했다. 인천은 본래 지명이 인주였는데 1413년 10월 15일 인천이라는이름이 처음 생겨났다고 하여 그 날을 시민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부산 시민의 날은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부산 앞바다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파한 10월 5일을 기리고 있다.

이순신은 부산포 해전 이후 조정에 장계를 보내어 "지금까지 네 번 출전해 왜적과 열 번 싸웠지만 부산포 해전보다 더 큰 승리는 없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한산도 대첩보다 더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경북 도민의 날은 10월 23일이다. 675년 신라는 음력 9월 29일 경기도 양주 매초성에서 당나라 20만 대군을 대파해 다시는 중국 군대가 한반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675년 음력 9월 29일은 당시 양력으로 10월 23일이다. 경북은 당나라 군대를 완전히 축출하여 사실상 통일을 완성한 10월 23일을 도민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대구, 경북, 부산은 모두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날을 시민의 날과 도민의 날로 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민의 날' '도민의 날' 할 때의 '시민'과 '도민'은 주소를 그곳에 두고 있다는 행정적 의미이다. 즉 시민이라는 말이 생겨난 역사적 연원과는 거리가 있다. 본래 시민이라는 말은 18세기 말에 일어난 프랑스혁명 때부터 일반화된 개념이다. 그 전에는 모든 성씨를 지칭하는 '백성'이라는 용어를 썼다. 백성은 왕의 신민이라는 뜻에 지나지 않았다.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시민이라는 어휘가 일반화됐는데 책임감, 자치정신, 연대, 저항정신 등을 내포한 용어이다. 시민은 정치적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을 가리킨다. 대구 사람들이 맹렬히 국채보상운동에 뛰어들고, 2.28민주화운동을 일으킨 것은 시민정신의 발로이다.

시민정신 발휘로 코로나19 사태 극복해야

대구 시민들은 현재 코로나19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를 정치적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시민정신을 갖춘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는 데 마음과 힘을 모아야 마땅하다.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화운동 대표 유적 답사

효율적 답사 순서 : 달서구 두류공원 2.28기념탑→지하철로 이동,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기념공원의 김광제, 서상돈 흉상, 여성 국채보상운동기념비 포함)→걸어서 중구 옛 시민회관 앞 도로변 국채보상운동 기념 조각→걸어서 중구 수창초등학교 왼쪽 뒤편 광문사 터→반월당(2.28 당시 학생들의 집결 장소)→걸어서 명덕로터리 표지석(2.28기념탑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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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소설 의열단><소설 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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