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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앞잡이 관군의 만행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 / 71회] 전봉준의 애끓는 '척왜'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등록 2020.02.20 19:20수정 2020.02.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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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송당하는 전봉준 장군(좌)과 백산 봉기 기록화(우) 압송당하는 전봉준 장군(좌)과 백산 봉기 기록화(우) ⓒ 최장문

박은식은 『조선독립운동지혈사』에서 "동학당은 호미와 곰방메와 가시나무총을 들고 밭고랑에서 분기하여 우리의 관군과 일병을 상대하여 교전한지 9개월 만에 드디어 항복하였다. 이 변란통에 사망자가 30여만 명이나 되었으니 미증유한 유혈의 참상이다"라고 썼다.

일본군은 비록 3개연대 8,000여 병력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잘 훈련되고 신식 무기로 무장한 데다 조선 정부군과 지방의 영병 또 첩자들인 일본 대륙낭인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동학농민군 30만 명을 학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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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 ⓒ 안병기

 
이러한 참극을 지켜보면서 전봉준은 동학농민군이 제2차 봉기를 하여 충남 강경으로 출발하기 이틀 전인 1894년 10윌 12일 서울에서 파견된 경군과 충청감영 병사, 공주읍내 아전과 상인들에게 골육상잔을 하지 말고 반일의 대의 아래 대동단결할 것을 호소하는 「고시경군여영병이교시민(告示京軍與營兵吏校市民)」을 발표하였다.

일본과 조선이 개국 이래로 비록 이웃 나라이나 누대로 적국이더니 성상의 인후하심을 힘입어 삼항(三港)의 개항을 허락하여 통상한 이후 갑신 10월에 사흉(四凶 :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ㆍ박영효ㆍ서광범ㆍ홍영식을 이르는 말―저자)이 적을 끼고 활동하여 군부(君父)의 위태함이 조석에 있더니 종사의 흥복으로 간당(奸黨)을 소멸하였다.

금년 10월에 개화간당이 왜국과 체결하여 밤을 타서 황성에 들어가 군부를 핍박하고 국권을 함부로 자단하며 더구나 방백수령이 모두 개화파 소속으로 인민을 어루만지고 구휼하지 아니하고 살육을 좋아하며 생령을 도탄에 빠지게 하매 이제 우리 동도(東徒)가 의병을 들어 왜적을 소멸하고 개화를 제어하며 조정을 청평하고 사직을 안보할새 매양 의병이 이르는 곳마다 병정과 군교가 의리를 생각지 아니하고 나와서 접전하매 비록 승패는 없으나 인명이 피차에 상하니 어찌 불쌍하지 아니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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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룡산성 성벽 이곳이 김개남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의 주둔지였음을 알리는 팻말을 누군가 세워두었습니다. ⓒ 서부원

 
그 실은 조선사람끼리 서로 싸우자 한 바 아니어늘 이와 같이 골육상잔하니 어찌 애닯지 아니하리오. 또한 공주와 한밭(大田)의 일로 논하더라도 비록 봄 동안의 원한을 갚은 것이라 해도 그 일이 참혹하여 후회막급이며 방금 대군(大軍)이 한양을 점령하여 팔방이 흉흉한데 서로 싸우면 이는 골육상잔이라.

일변 생각컨대 조선사람끼리라도 도(道)는 다르나 척왜(斥倭)와 척화(斥華)는 그 의(義)가 일반이라, 두어 자 글로 의흑을 풀어 알게 하노니 각자 돌려보고 충군우국지심이 있거든 곧 의리로 돌아오면 상의하여 같이 척왜척화하여 조선으로 왜국이 되지 아니 하게 하고 동심협력하여 대사를 이루게 할지라. (주석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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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순 공덕비'에는 당시 동학농민군을 토벌했던 을사오적 박제순을 칭송하고 있다 '박제순 공덕비'에는 당시 동학농민군을 토벌했던 을사오적 박제순을 칭송하고 있다 ⓒ 송성영

 
전봉준의 이와 같은 애끓는 '척왜'의 호소도 일본군의 앞잡이로 변신한 정부 관병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공을 다투어 동학농민군의 학살과 정탐에 열을 올렸다. 이두황, 박제순, 장용진 등은 특히 이 때의 동학농민군 학살의 공로로 병탄 후에 일제로부터 높은 감투를 얻어썼다.

또한 동학농민군 내의 일제 앞잡이들이 혁명지도자들을 밀고하여 일제로부터 후한 상금과 벼슬을 받았다. 이봉우(李鳳宇)는 손화중 장군 밑에서 충성을 하는 척하다가 배신, 그를 일본군에 밀고하고 증산군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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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3 미터 가까이 되는 '유림의병정난사적비' 에는 공주지역 유림들이 충효정신으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이 아닌 동학농민군을 몰아냈다고 적혀있다 높이 3 미터 가까이 되는 '유림의병정난사적비' 에는 공주지역 유림들이 충효정신으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이 아닌 동학농민군을 몰아냈다고 적혀있다 ⓒ 송성영

 
법성포의 진사로서 동학도가 되었던 이현숙(李賢淑)은 오시영(吳時泳) 장군을 잡아다 바치고 많은 상금을 받았다.

김개남과 전봉준도 현상금과 벼슬에 탐이 난 배신자들에게 붙잡혀 정부군과 일본군에게 넘겨졌다. 


주석
9> 오지영, 앞의 책, 15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동학혁명과 김개남장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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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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