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가 '무슨 사태'라고 했던 그 시절

등록 2020.02.18 10:19수정 2020.02.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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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표가 '무슨 사태'라고 했던 그 시기, 그와 비슷한 연배인 나는 대학원생으로 학과 조교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신군부가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취하며 전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그때부터 시작된 휴교령은 다음 학기나 돼서야 풀렸다.

학과 사무를 봐야 했던 나는 휴교령이 내린 지 얼마 안돼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학교가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집단유급을 당할 판이라, 교수들로부터 성적을 대체할 과제물 지침서를 연락 받아 학생들에게 우편으로 이를 발송하라는 업무가 주어졌다.

막상 학교를 나가보니 학교는 상전벽해의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정문은 굳게 닫히고 수위실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다. 탱크의 거대한 포신이 정문을 막아섰고, 새까맣게 얼굴이 탄 특전사 요원들이 거총 자세로 학교 앞을 지키고 있었다. 정문 옆 운동장은 서울 서부지역 계엄군 사령부가 주둔하여 부대 깃발과 함께 군용 막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 위압적 풍경을 떠올리면 휴교령이 내린 직후인 5월 18일 전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무슨 용기로 그런 시위를 벌일 수 있었는지 잘 상상이 안 간다.

학교 안을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니 학생 하나 없는 캠퍼스에는 까치들만이 내려앉아 한가히 노닐고 있는데, 언더우드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특전사 군인들의 말소리만이 캠퍼스의 적막을 간간히 깰 뿐이었다.

단 한국어 학당에 등록한 외국인 학생들의 학교 출입은 허용됐다. 나는 국문과 조교라서 어학당과 주고받을 업무들이 있어 그곳 출입을 더러 했는데, 거기 외국인들로부터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비로소 알게 됐다.

당시 국내 서점에서 판매되는 아시아판 타임과 뉴스위크지는 검열·삭제된 것들이었지만, 외국인들은 자신들 소속 국가의 문화원에 비치된 것들을 구해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일부를 복사해 나에게 몰래 건네주기도 했다. 기사 속 사진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트럭을 타고 복면을 쓴 총을 든 젊은 시위대 사진과 함께 'Riot in Kwangju'(광주에서의 폭동)라는 커버스토리 제목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Riot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폭동'으로 돼있다. 정확한 번역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Riot는 광주를 바라보는 미국 언론의 시각을 확인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나마 국내 언론은 5월 18일로부터 한참 지나서야 보도가 되기 시작했는데, '소요'라는 단어를 사용해 '광주 일원에서 학생들 소요가 있다'라는 단 한 줄짜리 기사를 전했다.

당시 폭동, 소요, 사태 등등으로 불리던 광주가 '광주 민중항쟁', '광주 시민항쟁' 등의 명칭 논의들을 거쳐, 지금은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불린다. 이는 마치 내가 초등학교 시절 '동학란'이라고 불리던 그 사건이 오랜 논의를 거쳐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전쟁' 등으로 바뀌어져 불리게 된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까?

이름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논리도 없고, 일도 성사되지 않고, 형정만 문란하고, 백성들이 수족을 어디다 둘지 몰라 우왕좌왕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있다.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황 대표가 적당히 얼버무려 '사태'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그에게 정치를 맡길 경우 공자가 말한 사태가 빚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황교안 #광주 #사태 #RIOT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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