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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겐 사랑이 전부라는 말, 이젠 지긋지긋하다고

[여자의 소설] 루이자 메이 올컷 '작은 아씨들'

등록 2020.02.29 19:47수정 2020.03.0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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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소설가가 통찰력 있게 그려낸 여성 서사를 통해 여성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 여성에게 의미 있는,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여성 서사가 우리 삶에 스며들길 기대합니다.[기자말]

책표지 ⓒ 윌북

 
십대 소녀이던 시절, 1994년작 영화 <작은 아씨들>을 봤다. 극장에 가서 봤는지, 나중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작은 아씨들>의 조는 내가 나와 동일시한 최초의 캐릭터였을 것이다. 아직도 조를 연기한 위노라 라이더가 집에 돈을 보태기 위해 긴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랐던 장면이 선명히 기억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미국 남북 전쟁시기였다는 것이나 영화 전반에 흐르는 여성의 낮은 인권 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저, 조. 선머슴 같고 천방지축인 조가 좋았다. 식탁에 앉아 있을 때도 어딘가 비뚜름한 자세로 대충 앉아 있는 것 같아 좋았고, 죽이 잘 맞는 '남사친' 로리와 개구쟁이처럼 뛰어노는 모습도 좋았다.

조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이 결심도 마음에 쏙 들었다(그즈음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캐릭터는 <목욕탕집 남자들>의 윤경(배종옥 분)이었는데, 윤경도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그 당시 나는 '결혼하지 않는 여자'='독립적인 여자, 멋진 여자'라고 생각하며 그녀들을 동경했던 것 같다). 결혼을 하는 대신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조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그녀가 그녀의 바람대로 성공한 작가가 되어 근사한 솔로 생활을 누리길 얼마나 바랐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조가 로리의 고백을 거절하고, 이 거절이 끝내 뒤집히지 않았을 땐 며칠을 방황할만큼 실망했었다(내게 이건 마치 빨간 머리 앤이 길버트와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같았다). 동시에 실망을 넘어서서 거의 충격을 받았는데 조가 느닷없이 어떤 할아버지에게(내 눈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반하더니 그와 이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조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던 선언을 뒤집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이라잖은가! 하지만 그 상대가 로리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닌, 할아버지라니!

이후 나는 조라는 캐릭터를 이분해서 품고 다녔던 것 같다. 꿈이 있고 야망을 품은 반쪽 조는 나의 내면에서 나를 지지하는 하나의 축이 됐고, 갑자기 이해 못할 사랑에 빠져버린 조는 (미안하지만) 기억 저 너머로. 

조가 결혼할 수밖에 없던 이유 

그러다 2년 전 조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됐다. <여주인공이 되는 법>이란 책에는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자 메이 올컷이 친구에게 쓴 편지의 일부가 인용돼 있었다. 
 
"조는 독신으로 남아 계속 글을 써야 했는데, 수많은 열성 여성 팬들이 편지를 보내서 조를 로리나 다른 사람하고 결혼시키라고 난리였다. 나는 그런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비뚤어진 마음에 조를 어울리지 않는 짝과 연결시켰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거기엔 뭔가가 있었던 것이다. 방금 전까진 결혼을 거들떠도 보지 않던 조가, '앤과 길버트'급으로 잘 어울리는 로리를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물리친 조가, 갑자기 "어울리지 않는 짝과 연결"된 이유. 여기엔 조를 결혼시키라고 난리를 친 독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올컷이 잡지에 연재하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던 "열성 여성 팬"들의 마음을 이해 못할 건 없었다. 그 시절 독자들 역시 멋지고 당찬 조를 자신들과 동일시했고, 그 조가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길 바랐던 것 아닐까.

여성이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요원하던 시절, 가정이란 틀 밖에서 자립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절, 조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조가 본인들과 너무 다른 곳으로 떠나길 바라지 않았던 것 아닐까. 대신, 본인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계속 멋지고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던 것 아닐까. 조가 그럴 수 있다면, 자신들 역시 그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조에 대한 오해(올컷에 대한 오해)를 풀고 나자 오랜 시간 반쪽만 품고 있던 조를 대면할 용기가 생겼다. 900페이지가 넘는 <작은 아씨들>을 2019년이 되어서야 읽기 시작하며, 나는 올컷이 자신의 분신인 조를 어떻게 그리려고 했는지, 조를 통해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이 소설을 즐겁게만 읽지 못했다. 소설 전체엔 절로 한 귀로 흘려보내게 되는 기독교 교리가 가득 차 있는 데다, '착한 소녀상', '검소하고 경건한 여성상'을 주입하는 특유의 설교 투 문장들에 자주 한숨을 쉬어야 했다. 

조의 꿈과 야망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조라는 캐릭터는 더 빛났다. 설교 투 문장 틈틈이, 착하고 조신한 여성이 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듯 몰고 가는 틈틈이, 올컷은 조를 통해 오히려 책 전체가 견지하는 가치에 상반되는 말을 계속해서 해나간다.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한스러워, 아버지와 함께 전장에 나가 싸우고 싶은데 굼뜬 할머니처럼 집에 들어앉아 뜨개질이나 해야 하니, 날이 갈수록 내 삶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겠지."

"난 여자라서 고상한 척하면서 살아야 해. 어떻게든 순응하고 살아야 된단 말이야."

"난 나중에 천상 도시에 들어가기 전에 멋진 일들을 하고 싶어. 영웅적이고 놀라운 일. 내가 죽은 후에도 사람들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일.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잘 찾아봐야지. 언젠가는 모두를 놀라게 해 줄 거야. 일단 책을 써서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려고. 그게 제일 이루고 싶은 꿈이야."

소설에서 다시 만난 조는 단지 천방지축 말괄량이 소녀가 아니었다. 소설을 써서 부자가 되고 싶은, 여자는 부자가 되어야만 자립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소녀, 주어진 삶에 묵묵히 순응하기보다 떨치고 일어나 신문사 문을 두드리는 결연한 소녀였다.

조는 단지 낭만적인 꿈을 꾸듯 소설을 쓰지 않았다. 조는 생계를 위해 글을 쓰고자 했고, 소설을 팔아 돈을 벌었다. 돈을 벌기 위해 "쓰레기 같은 소설"을 쓰기도 했다. 역시 돈을 벌기 위해 펄프 픽션 쓰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올컷처럼. 

소설에선 조의 복잡한 내면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 조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평생 하고 싶고,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지만, 세상은 글을 쓰는 여자를 알아주지 않는 데다가, 글로 돈을 못 벌면 혼자 살아갈 가능성마저 사라지고 마니까.

이런 현실에서 조는 어떻게 부자에다 찰떡처럼 죽이 잘 맞는 것도 모자라 나이가 들며 점점 잘생겨진 로리를 거절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면 그만큼 올컷이 조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분명해진다. 올컷은 여성 또한 능력만 있으면 독립적이 삶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또, 그런 세상이 너무 늦지 않게 오길 바랐을 것이다. 
 

<작은 아씨들> 영화 중 한 장면. 자신이 쓴 소설을 읽고 있는 조. ⓒ 소니 픽쳐스


소설에서 조는 사랑을 택해야 했지만 

한편, 올컷은 여자에게 '사랑'이 전부일 수밖에 없는 현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성에겐 돈을 벌 수단이 주어지지 않던 사회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여성은 그 자체로 생존이 위태했을 테니까. 그래서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사랑받기 위한 태도와 기술을 익히는 데 전념해야 했고, 물론 이런 태도와 기술을 익히려면 개성이니, 꿈이니, 야망이니 따위는 모두 버려야 했다. 철저히 사랑스러운 여자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말, 잉크, 소설을 가장 사랑하는 조에게 이런 현실은 얼마나 갑갑했을까. 그리고 여성 인권 향상에 관심이 많았던 올컷은 이런 현실에 대해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하지만, 보통의 독자들이 읽는 대중 소설을 쓰는 작가가 급진적인 자신의 사상을 글로 표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2020년에 개봉한 <작은 아씨들>을 보며 어쩌면 그 시절 올컷이 하고 싶어했던 말을 21세기형 조가 시원하게 하는 장면을 본다.  
 
"나는 여자들은 사랑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너무 지겨워! 아주 지긋지긋하다고!"

"그녀들에겐 야망이 있고, 재능이 있어. 그냥 아름다움만 있는 게 아니야."

소설 후반부를 읽으면서는 조가 아닌 올컷에 감정을 이입하며 읽었다. 글로 돈을 벌겠다는 일념 하나로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과감히 전개해나간 19세기 여성 작가의 현실을 떠올리며 읽었다. 이렇게 읽다가 눈에 확 띄는 재미있는 문장을 만나고는 웃기도 했다.

조가 베어 교수에게 푹 빠진 채 속으로 그의 장점을 나열해 나가는 문장 뒤, 소설 속으로 작가 자신이 직접 개입해 이런 말을 한다. "가여운 조! 어째서 저 평범한 남자를 이렇게도 우러러보는 걸까." 자신의 분신 캐릭터가 사랑에 빠지자 작가 본인이 '이 사랑 반댈세'를 외치고 있다니. 올컷이 조와 베어 교수의 사랑 이야기를 쓰며 얼마나 갈등했을지 짐작이 된다. 

소설을 읽고 몇 개월이 지난 얼마 전,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을 보러 극장에 갔다. 소설의 단점은 최대한 덜어내면서 소설의 현대적 가치 또한 제대로 입증해낸 좋은 영화였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영화가 원작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지점에 서서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이었다. 영화는 소설이 쓰이던 당시 상황을 재치있게 언급하며 사실상 조가 올컷이었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조는 돈을 벌기 위해 분투하는 소설가이고, 현실에서의 올컷이 그랬던 것처럼 대중을 위해 그녀가 쓴 소설 속 인물인 조를 결혼시키기로 편집자와 합의한다.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된 소설 <작은 아씨들>. 영화 속 조는 자신이 쓴 소설을 가슴에 꼭 안은 채 단단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부자가, 영웅이, 후대에 길이 기억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제 막 자신의 첫 소설을 출간한 소설가와 매우 잘 어울리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올컷도 이 영화의 마지막을 아주 마음에 들어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원하던 대로, 영화 속 조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았으니까.

작은 아씨들 (영화 원작 소설) - 완역, 1·2권 통합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은이), 공보경 (옮긴이),
윌북,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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