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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도 같은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창간 20주년 공모- 나의 스무살] 잉걸로 살은 나의 스무 살

등록 2020.02.24 10:32수정 2020.02.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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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다 못해 아직 남이 보기에 짧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숨이 가쁘도록 살은 해는 바로 스무 살 때였다. 어린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대처하느라 노력한 기억은 고등학교 이전이 더 많다. 그렇지만 특정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 쏟아부은 노력은 스무 살 무렵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때 인생에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추상적인 틀을 두고 그냥 대강의 방향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워낙 성격이 급하고 조급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라 대강의 방향만 있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뭔가 막 해야 하지 않으면 안 될 조바심이 들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많이 넣은 원서 중 단 1개의 구원을 얻어 감지덕지하며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내가 다닌 학과는 취업보다는 고시나 대학원 진학이 목표가 되는 과였다. 입학 때부터 어렴풋이 내가 고시에 합격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대학원 입시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과의 교수님은 여러분의 청춘은 소중한 봄이며, 어영부영 사는 일은 봄을 파는 일이니 절대 팔지 말 것을 권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삶의 궤적을 쫓는 법을 아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학과에도 이렇다 할 실적이나 길을 아는 선배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대학원 입시를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마지막 학년은 대학원 준비에 노력하기 위해 써야 할 온전히 시간을 다 써야 할 듯싶었다. 이전에 학점을 다 들어두어야 했다. 돈도 문제였다. 대학원 진학에 성공한다면 장학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생활비까지 지원받을지는 알 수 없었다. 진학에 시간을 쓴다면 당연히 돈은 더 줄어들 것이었다. 짧은 시일 내에 진학도 준비하고 돈을 벌 방법도 필요했다.

그 말은 내가 죽도록 달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첫해에 나는 1학기 20학점, 여름 계절학기 9학점, 2학기 20학점, 겨울 계절학기 3학점을 들어 한 해 동안 52학점을 들었다. 일반적인 학과의 졸업 요건이 4년간 120학점에서 130학점 정도이니 엄청나게 많은 학점의 강의를 머리에 때려 박듯이 들은 것이다. 2, 3학년에는 19, 22, 23, 21학점을 들었고 겨우 4학년을 입시를 위해 비울 수 있었다.

학기의 일부는 통학시간이 왕복 6시간 20분이었다. 나는 인천 사람이었다. 인천 사는 대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만한 문제인데, 인천 사는 학생은 말이 수도권이지 서울 인근이라 할 수 없는 지역에 살아도 어쨌든 수도권에 산다는 이유로 대학의 기숙사나 각종 지원에서 배제되기 마련이다. 주변 친구들은 나보다 통학시간이 더 길어서 이를 악물고 다녀야 했다. 그나마 나는 운이 좋았다.

하루는 아침 수업만 있는 날이라서 쾌재를 부르며 집에 돌아갔다. 한산한 시간에 지하철을 타니 사는 것이 꿈만 같았다. 좀 운이 따라서 이런 지하철만 타고 다니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에서 내려 핸드폰을 켜니 문자가 와있었다. 학생들을 잘 배려해주시고 최대한 편의를 봐주시는 교수님께서 보내신 문자였다. 오늘 오후에 수업을 해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날은 12시간 40분 동안 통학을 했다.

계속 잉걸불로 살고 싶다

돈을 버는 일은 노력과 행운에 의해 해결되었다. 나는 빠른 시일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으로 퀴즈를 선택했다. 종합편성채널의 퀴즈 프로그램에 응모한 뒤 주말에 팀원의 학습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텍스트 파일로 정리해서 나누었다.

시험기간과 촬영기간이 겹쳐서 밤을 새우고 출연했지만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했는데, 다른 팀원의 노력으로 큰 공헌 없이 상금을 나누어 받았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2년 뒤에 1대100이라는 퀴즈 프로그램에서 상금을 한 번 더 받으면서 가까스로 돈을 마련했다.

모두 나중에 시간과 돈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급하게 했던 일들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긴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분배하는 법을 몰랐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되는대로 아무것이나 하니 점점 숨이 가빠졌다. 코피도 자주 흘렸고 지하철에서 얕은 숨을 쉬면서 살았다.

결국 스무 살에 한 노력으로 내게 비는 시간이 생겼다. 그때 준비한 성과로 나는 원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내가 그리던 삶의 궤적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내가 목표로 한 것을 잡기 위해서는 감정이든 시간이든 양껏 부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잃은 것이 정말 많았다. 체력이 나빠졌고 원래 급했던 성격은 더욱 급해졌다. 여유가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배려를 하지 못했고 받은 것이 있어도 돌려주지 못했다. 심화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질적인 학습은 시도도 못 했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도 같은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을 써서 한계까지 몰아붙였던 경험에서 얻은 것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오롯이 쓰는 일은 잡념을 없애주고 상쾌한 기분이 들게 했다. 품에서 놓치기 쉬운 것이었다.

내 정신과 체력의 한계, 한계에 몰렸을 때 내가 하는 행동의 특징은 살면서 한 번은 파악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한계를 알아야 한계가 오기 전에 일을 그만두고, 스트레스로 인해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대비할 수 있다. 그래야 남부끄러운 짓을 덜 한다. 물론 이는 짧은 경험에 의한 지식이고 실제로 한계를 피하는 일에는 긴 삶의 경륜이 필요할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사 등급이 '잉걸'이다. 잉걸불은 '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스무 살을 잉걸불로 살았다. 이제는 내 삶의 일부라 드물게 기억나지만 아직 열이 식지 않은 기억이다. 

잉걸불의 또 다른 뜻은 '다 타지 아니한 장작불'이다. 계속 잉걸불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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