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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이 그린 초상화, 이목구비가 흐릿한 이유

[화가의 한마디5] 자신에게 가장 엄격했던 세잔, 그림에 영원과 고요를 담다

등록 2020.03.27 10:23수정 2020.03.2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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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야기와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림에 대한 이해를 넘어 예술가, 그리고 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과 사물, 세상에 대한 그들의 철학과 고민을 엿보고 인간으로서의 좌절, 고통, 자부심, 고집을 조명해보면서 그림이 전달하는 의미와 그 너머 화가의 존재를 인식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성격이 괴팍하고 결단력이 떨어지며 고향 마을에 처박혀 외곬으로 살아가던 화가. 세잔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철저히 남들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고 스스로도 자신의 이러한 결점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평가에 주눅들거나 소심해지기도 했고, 심지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절친 에밀 졸라가 쓴 소설을 읽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아 그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의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은 자살을 하는 예술가로 그려졌고 여러 면에서 세잔을 닮아 있었다.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 화가

젊은 시절 졸라를 따라 파리에 처음 발을 들였지만 세잔은 파리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며 카페에서 오래도록 토론을 벌이거나 파리의 거리를 거닐던 예술가들과는 기본적으로 성향이 달랐고 그들이 그리는 그림과는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았다.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 위주로 열렸던 전시회에 참여는 했지만 세잔의 그림을 전시회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도 꽤나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세잔의 그림은 도대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너무 거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괴롭고 실망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결국 파리를 떠나 자신의 고향 마을에 주로 머물며 자신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세잔은 그림을 그리는 속도가 느렸을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 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구상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 문제는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구도와 색, 형태의 균형 및 조화는 기존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이기에 이를 찾아내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음 속에는 있지만 그것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어 실망과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세잔은 고집스럽게 그리고 또 그렸다. 그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기 일쑤였고 아무리 공들인 그림이라도 서슴없이 망가뜨리고 파손시키곤 했다. 그렇다면 세잔이 그토록 그리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잔이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은 말 그대로 자신의 목표와 신념, 의지를 한마디로 공고한 것이었다. 그 흔한 사과, 그 흔한 정물화로 어떻게 파리를 놀라게 할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기에 세잔의 드높은 야망은 어쩌면 헛소리로 들렸음이 분명하다. 

기존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사과는 물론이고 모든 물건들은 언제나 인간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정물이 그림의 전면에 등장한 것도 불과 17세기의 일이었고 정물화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인간의 손길이 닿은 물건들이 풍기는 서정성에 있었다. 또는 북유럽의 경우, 과일이나 꽃을 그린 정물화는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세잔의 사과는 인간의 흔적이나 어떠한 의미도 제거한 채 오로지 사과의 형태와 색에만 집중했다. 때로는 위에서, 때로는 옆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린 사과는 그 크기와 색깔도 제각각이었다. 마치 사과라는 대상에 대해 눈으로 지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법에 대해 탐구를 하듯이, 그 형태와 색이 캔버스 화면에 확고히 자리잡아 전체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확고한 대상'으로 남겨두는 일
 

사과 바구니(1890-1894) 폴 세잔 Source: Wikimedia Commons ⓒ 시카고 미술관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과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고, 그림 속 사과가 실제 사과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하고자 한 것은 그림이라는 전체 화면에 우리 눈에 보이는 대상의 형태와 색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연결시켜 확고한 대상으로 남겨두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전체적인 구상을 해놓기는 해도 이를 하나하나 표현함에 있어서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때그때 바꿔나가기도 했다. 심지어 선 하나를 그리다가도 그 선을 일직선으로 기계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위로 기울어지거나 아래로 기울어지기도 했다. 그의 사과 정물화 속 식탁이 똑바르지 않은 것도, 탁자 뒤 벽이 한쪽으로 기운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나마 사과와 같은 정물은 세잔이 원하는대로 얼마든지 구도를 바꿀 수도 있고 작업이 느린 세잔을 탓하지도 않으며 묵묵히 있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세잔의 초상화는 특정인을 모델로 하여 그렸음에도 실존 인물과의 유사성이 두드러지지 않으며 대상의 감정이나 성격, 지위 등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무표정이거나 아예 눈, 코, 입을 흐릿하게 그려넣거나 얼굴을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는 듯한 모습이다. 몸은 좌우 대칭을 일부러 무너뜨리려는 듯 비스듬히 한쪽으로 기대거나 다리를 꼬고 앉는 식이다. 뒤의 배경도 좌우와 위아래를 나눠 서로 다른 패턴을 그려넣거나 대비되는 색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은 꽤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교함을 요해서 세잔은 모델이 조금만 움직여도 불같이 화를 냈다고 전해진다. 
 

마담 세잔(1888-1890) 폴 세잔 Source: Wikimedia Commons ⓒ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자연으로 돌아가다

세잔은 남들에게 괴팍한 존재였지만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했다. 자신이 추구한 색이나 형태의 조화가 조금만 어긋나도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거나 절망에 휩싸였다. 그의 복잡하고 예민하며 소심한 성격은 그의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켰다. 이러한 와중에 그가 찾은 나름의 해결책은 혼자가 되는 것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1890년대 들어 세잔은 대부분의 시간을 엑상 프로방스에서 보내며 오로지 자연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생 빅투아르 산과 주변의 풍경들을 모티브로 삼아 영원을 창조하고자 했다.

"예술은 우리의 상상 속에 자연을 영속시켜야 한다. (중략) 그것들은 나의 사고를 뛰어넘어 선을 이루고 대상이 된다. 부피를 얻고 효과를 낸다. 이러한 덩어리와 무게가 캔버스 위의 평면과 만나 내 마음 속에 있는 장면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지점들과 만날 때 캔버스는 비로소 완성된다. 그것은 흔들리지 않고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다. 진실되고 견고하며 온전하다. (중략) 하지만 내가 조금만 산만해지거나 조금만 약해져도, 특히 대상에서 너무 많은 것을 읽어내기 시작하면, 어제의 이론과는 다른 오늘의 이론에 휩쓸린다면,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하게 되면, 방해가 되면, 그 순간 뱅!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

눈에 보이는 표면의 자연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언젠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지만 세잔은 자연의 내면에 자리한 흔들리지 않는 영속성, 견고한 무게감, 무한의 깊이를 유연한 질서와 함께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자연은 점점 더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변해갔고 그 안에서 고요와 평온을 발견하는 것은 신선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세잔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세잔이 의도한 엄청난 목표를 한 번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그의 의도를 전해들어도 여전히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한 가지는 확실히 와닿는 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림에 들인 그의 엄청난 노력이다. 그림 하나하나에, 선 하나하나에, 모양 하나하나에, 크기 하나하나에, 색 하나하나에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심혈을 기울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그의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비로소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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