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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재택근무라니... 재난이 나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코로나19가 포항시민에게 미친 영향]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할 때

등록 2020.02.25 11:44수정 2020.02.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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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23일) 오후 7시 반,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OO아파트 O동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였기에, O동에 거주하는 직원은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자가 격리(재택근무)를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싶었다. '회사 숙소 아파트 주변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사내 카톡방(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오가던 참이었다. 그 아파트는 직원인 내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재난은 그렇게 나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평온하던 일상이 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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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함에 따라 23일 경북 포항시가 중앙상가 길을 소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주 화요일(18일) 이웃 동네인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일단 내가 사는 경북 포항 지역에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없는 상황이었고, 정부가 안내한 코로나19 예방 지침은 무척이나 간결했으며, 질병관리본부의 침착하고 노련한 대응은 안도감을 주었다.

항상 마스크를 쓴 채 생활했고 가능하면 손을 더 자주 씻었다. 회사 곳곳에는 손 세정제가 비치됐다. 평소에 비해 악수를 하지 않는 것 외에는 다를 것도 없었다. 많은 모임들이 취소되기는 했으나 일정에 쫓기는 업무들은 쉼 없이 유지됐다. 달라진 건 그 정도였을 뿐, 계획을 송두리째 덜어낼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평온하던 일상은 다음 날(19일)을 기점으로 깨져 버렸다. 하루아침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신규 확진자가 13명이나 나왔기 때문이다. 서서히 불안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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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북 포항세명기독병원에서 시민이 폐쇄된 선별진료소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 병원 선별진료소에서 검사한 1명이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 연합뉴스

 
20일 오후, 포항에서 첫 번째 확진자가 나왔다는 안내 메시지가 도착했다. 회사에서는 가능하면 국내 출장도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곧바로 주말에 예정된 영화 동아리 모임을 취소하겠다는 공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낸 직후, 모임 장소인 지역 독립영화관의 웹사이트에는 휴관 안내문이 올라왔다.


이후로는 회사-집 이외의 이동을 최대한 줄여야만 했다. 시청 홈페이지에 공지되는 확진자의 동선을 수시로 확인하며 혹시라도 내가 머물렀던 곳이 아닌지를 복기하는 게 일상이 됐다. 사내 채팅방에서 전해주는 소식에도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했다.

금요일(21일)에 퇴근하면서 주말 동안 자발적 자가 격리를 결심했는데, 이는 질병관리본부의 안내사항 때문이었다. '집에서 스스로를 격리한 후,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1339로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다. 나 자신은 감염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만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다 같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위해 협조할 때
 

2월 21일 금요일 저녁 장보기 일주일에 한번씩 지역의 생협으로 장을 보러 갑니다. 일주일동안 먹을 수 있는 계랸 한 줄과 두부 세 모를 사러 가는 길인데, 이 날은 라면 선반이 텅텅 비어있네요. 포항에서 두 번째 확진자가 나온 날이었어요. ⓒ 이창희

 
대구·경북에서 확진자 발생 후 맞이한 첫 주말, 불안한 마음 때문에 온전히 여유를 즐길 수 없었다. 별다른 이상 증세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혹시라도 지역 내 감염의 매개인이 될 수도 있을까 걱정돼 집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주말 새 지역 내 확진자는 11명으로 늘어났고, 결국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자발적으로 진행 중이던 자가 격리는 불가피하게 강제 재택근무로 전환됐다.
 

자가격리를 준비하며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아직은 이것저것 먹을만한 것들이 많이 보이네요. 얼마간은 강제 외출금지여도 문제가 없겠어요. 그래도, 사태가 빨리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 이창희

 
나는 얼마간 집안에서 좀더 엄격한 자가 격리를 이어가야 한다. 혼자 사는 살림이라 크게 걱정되는 것은 없지만, 일단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것은 충분한지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엄마가 챙겨주신 먹을거리가 냉장고에 가득하니 일단 안심은 된다. 며칠은 이것들에 기대며 지금의 불안을 견딜 수 있겠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마저도 답일 수 없다. 그러니 부디 신속하게 지금의 혼란이 안정화되기를 기대한다.

"O동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재택근무에 여러모로 힘드시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당분간 불필요한 외출은 자제해 주시고, 개인위생에도 각별하게 신경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회사로부터 두 번째 안내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외출 금지'를 지키며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는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을 잘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증오는 결코 답이 될 수 없고, 은폐는 상황을 더 위험하게 할 뿐이다. 모두가 바라는 '일상으로의 복귀'는 서로를 위해 협조할 때 가능할 테니까. 
 

겨우내 자리를 차지하던 트리를 치웠습니다 얼마간 머물러 있을 공간이기도 합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자가격리인데, 제발 무사히 잘 지나가길 바랍니다. ⓒ 이창희

 
#코로나19 #포항 #자가격리 #재택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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