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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삭감... 힘내세요" 대구 건물주의 어떤 안내문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곳이 됐지만... 서로 도우며 지켜내는 대구 시민들

등록 2020.02.25 08:03수정 2020.02.2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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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재난 문자가 하루에도 서너 번씩 울리는 요즘이다. 듣고 싶지 않은 탁음이지만, 그래도 울릴 때마다 뭔가 하고 궁금해 꼭 봐야 한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불안한 마음뿐이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는데,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둘째 아이가 대구에 거주한다.

내가 사는 경북 경주에서 승용차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대구다. 요즘은 고속철이 있어 20분이면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급증하면서 지난 21일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된 대구는 이제 쉽게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유일한 소통 창구가 휴대폰뿐이다. 며칠 전 대구에 사는 둘째에게 한 장의 사진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거리가 텅텅 비어버린 모습이었다. 코로나19가 전염성이 강하다고는 하나 시민들 반응이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학교 주변 한산한 거리 모습 (사진 제공 : 한아름) ⓒ 한정환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다 마찬가지지만 대구에 혼자 있는 둘째가 걱정됐다. 감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동과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곳에서 먹고 사는 일이 제일 문제였다. 다행히 집에서 보내준 쌀과 반찬이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됐다.

멀리 뿔뿔이 흩어져 있는 아이들이 서로 문자 메시지와 전화로 소식을 전하며 대구에 있는 둘째를 걱정한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연락했는데, 최근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안부를 물으며 지낸다고.

다른 남매들이 둘째에게 필요한 물품을 택배로 부쳐주기도 한다. 대구가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택배 불가 구역도 생긴 모양이다. 둘째가 사는 곳은 해당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들은 경주에 사는 내게도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보내준다. 사회활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더 필요할 물건일 텐데 부모님을 생각하며 보내주니 가슴이 찡하다.

세입자 위해 임대료 삭감... 대구의 훈훈한 인심  
 

대구 북구 산격동 소재 건물주가 월세 임대료를 삭감해 준다는 안내문을 건물 입구에 붙여 놓았다. (사진 제공 : 한아름) ⓒ 한정환


둘째는 대구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학교 인근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 중이다. 최근 코로나19가 지역사회에 전파되자 사람들의 외출이 줄었고, 장사를 잠시 쉬는 가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아이가 보내준 사진을 보면, 주변 몇몇 가게는 2월 말 또는 3월 중순까지 임시 휴업을 한다는 안내문을 붙여 놨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어떤 건물주는 월세를 20% 삭감하겠다는 안내문을 입구에 부착해 놨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이에 3월, 4월, 5월의 월세 임대료(전세관리비 제외)에 대해 20%의 삭감을 하고자 합니다. 3월분, 4월분, 5월분 월세 이체일에 반영하시어 이체하시기 바랍니다. 힘내시고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시기에 서로를 돕는 대구의 훈훈한 인심이 느껴졌다.
    
이외에도 둘째가 전해온 최근 대구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번화가인 대구 동성로는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하다. 동네 상가 주변도 마찬가지다. 평소 사람들로 항상 북적이던 곳인데 인도는 물론 거리에도 지나가는 차량이 별로 없다.

임시 휴업하는 가게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생계를 위해 문을 여는 식당, 카페 등도 있다. 하지만 내부에 손님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평소 줄을 서서 먹는 유명한 식당도 한두 테이블밖에 손님이 없다.

그래도 상가 사람들은 대구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다. 이마저도 안 되면 대구 경제는 일어설 수가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상인끼리라도 상부상조하는 분위기다.

하루빨리 둘째와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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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대구에서 시민들이 외식·외출 등을 자제하는 가운데 20일 대구 시내 한 대형마트 식품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 연합뉴스

 
평소 오프라인 매장을 찾던 사람들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부분 온라인 주문을 많이 하는데, 평소 같으면 당일 배송되던 물품들이 요즘은 4~5일 걸려 집으로 배달된다. 그만큼 온라인 주문 물량이 많은 것이다. 배송은 비대면 방식으로 받는다. 택배기사가 아파트 문 앞이나 가게 앞에 물건을 둔 다음 문자 메시지로 알려준다.

온라인 주문은 시일이 소요되다 보니 급하면 동네 마트를 찾는데, 저녁에 가면 식재료 진열대가 텅 비어 있을 때가 있다. 다행히도 다음날 오전에 가면 바로 물품들을 가득 차 있어 장 보는 데 어려움은 없다. 마트를 찾는 사람들은 꼭 필요한 물품만 산 뒤 바로 매장을 나간다. 그래서 평소 북적이던 마트에는 사람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어쩌다 마주치는 동네 주민들은 거의 100% 마스크를 끼고 있는 모습이며, 손을 흔들거나 서로 눈인사만 나누고 지나간다. 평소 같으면 잠시라도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최대한 접촉을 피하며 조심한다고 한다.

간혹 문을 연 가게 안에 들어가면 방역 소독 냄새가 거북할 정도로 많이 난다. 평소 필요한 곳에만 하던 실내·외 방역은, 코로나19 여파로 내부 바닥은 물론 화장실, 의자, 소파 할 것 없이 전부 철저히 한다. 보통 상황이라면 손님들이 인상을 찌푸렸을 텐데, 요즘은 소독약 냄새가 나면 오히려 믿음이 간다며 안심하는 분위기다. 여기까지가 둘째의 전언이다.

정부는 23일 대구 지역 거주자 등에게 최소 2주간 자율적 외출 자제와 이동 제한을 요청했다. 하루빨리 둘째와 만나 얼굴을 마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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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24일 오전 대구시 동구 신암동 동대구역 역사 내에 '코로나19' 영향으로 이날 4개 열차의 운행이 중지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 19 #텅빈 거리 및 상가 모습 #경북대학교 앞 거리 모습 #임시 휴업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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