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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의 부고... 나는 대구에 가야만 했다

[코로나19와 가족의 장례식]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애도에 대하여

등록 2020.02.28 08:21수정 2020.02.2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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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6시 40분께 평소 같으면 차량과 사람이 넘칠 대구의 중심가 동성로의 중앙파출소 삼거리 일대가 차량과 오가는 사람이 뜸하다. 대구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시민들이 외출을 꺼려 이날 동성로 대부분의 상가가 휴업하거나 일찍 문을 닫았다. ⓒ 연합뉴스

 
지난 금요일(21일) 대구를 다녀왔다. 대구에서 18일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뒤로 지역사회 감염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었지만, 그런 곳에 가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지난해 봄이었다. 어머니의 칠순을 맞아 외가 어른들을 모시고 일본 교토로 여행을 다녀왔다. 어른들께 항상 받기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드리는 선물과 같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여행길을 함께 걸었던 큰 이모님이 지병으로 지난주 목요일(20일)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났다.


도리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두고 어떡할지 고민하게 될 때가 있다.

어머니의 하나뿐인 언니였고, 어릴 적 댁에 놀러 가면 곁에 누워 잤던 기억이 날 정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친척 어른이었다. 그런 분의 부고를 접하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이유가 여태까지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바이러스라니. 이런 안타깝고 원망스러운 일이 있을까.

빈소에 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염병이 번지고 있어도 큰 이모님께 마지막 인사는 꼭 드려야 했다. 형들과 누나에게 위로의 인사도 전해야 했다. 다만, 식구들과 함께 갈지 말지를 두고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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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동대구역에 도착한 서울 출발 부산 도착 KTX 135 열차에서 내리거나 타는 사람이 뜸하다. 최근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진이 급증하며 대구시민들은 외출을 꺼리고 타지인들은 대구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구로 내려가기로 결정한 금요일 아침에 회사의 공지 사항이 메시지로 도착했다. 가급적이면 대구·경북 지역의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고는 이미 하루 전 팀에 전달했고, 대구에 다녀온다면 한 주 이상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일에 차질은 없도록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혼자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집안 어른들은 말렸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니 아무도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가겠다고 했다. 만류하는 마음을 잘 알지만 나는 가겠다고 했다. 


병은 걸릴지 안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남을 것은 알 수 있었다. 도리를 하지 못했다는 마음. 받기만 했던 사랑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한 번 더 전하지 못했다는 마음.

영정 사진에 절을 하고, 친척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랬지만, 서울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큰 이모를 이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격리

대구에 다녀온 뒤로 스스로 격리를 하고 있다.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임시 거처로 정했다. 그리고 몇 가지 원칙과 함께 자가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항상 마스크를 착용한다. 생활용품을 모두 분리해서 사용한다. 식사와 잠자리도 분리한다. 아무 이상이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해 보기로 했다. 아빠의 마음을 알아준 가족을 위해서.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 먼저 연락을 했다. 아빠가 대구에 다녀와서 잠시 쉬겠다고. 아이들도 일종의 격리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학원들은 대체로 고마워했다. 말을 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오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일주일 동안 전 직원의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한다는 공지였다. 그리고 몇몇 학원으로부터 당분간 수업을 하지 않겠다는 연락도 왔다. 뉴스를 아무리 봐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일상이 이렇게나 크게 흔들리는 것이.

언제쯤 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통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 날을 담담하게 기다릴 뿐이다. 모두가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땐 이모님을 위해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애도를 마저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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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기온이 크게 오른 26일 대구시 수성구 수성못 주변에 매화가 활짝 피어 있다. 매화 너머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우려한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장례식 #코로나19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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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사업을 개발하는 직장인 ●작가, 시민 기자, 기업 웹진 필진 ●음악 프로듀서 ●국비 유학으로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공학박사 ●동경대학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쿄대 스토리"의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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