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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순수해야 해서...' 그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

[주장] 누가 투표할 자격을 판단하는가

등록 2020.02.26 18:41수정 2020.02.2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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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 - 헌법 제44조 제1항

헌법은 선거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등 소위 선거의 4대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들 원칙 중에 경중을 가릴 수야 없겠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사람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보통선거 원칙이야말로 가장 전제가 되는 원칙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이 보통선거가 확립된 지는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국민주권 원칙을 선포하고 선거권을 보장했지만 여기서 국민은 오직 남성이었다. 1832년 영국의 선거법은 인구의 5%인 귀족과 젠트리(토지 소유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다. 이후 차티스트 운동을 거쳐 1867년 노동자들의 선거권을 보장했으나 여성은 역시 제외됐다. 미국 역시 초기 선거법은 "선거권은 백인, 남성, 21세 이상, 재산소유자, 납세능력자에게만 부여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1920년 여성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되었으나 아메리카 원주민은 또 제외하였고, 1930년에야 이들에까지 선거권이 확대되었다.
  
한국은 어떨까? 1948년 제헌헌법은 현행 헌법과 마찬가지로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원칙을 보장하고 있었다. 1948년 5월 10일 제헌의회 선거는 '21세 이상의 성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통 선거'로 실시되었고, 투표율은 95.5%에 달하였다. 이처럼 한국이 제헌 당시부터 보통선거를 실시한 것은 서구의 선거권 확대가 이루어진 후에 근대적 선거가 실시된 덕분일 것이다. 그럼 한국은 그 이후에는 선거권에 있어 아무런 논란이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많은 국가가 그러하듯 보통선거원칙에는 일반적으로 2가지 예외인 집단이 존재한다. 바로 청소년과 수형자이다.
  
선거연령 제한,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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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2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회원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서 열린 선거연령 하향 촉구 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삭발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2019년 12월 27일, 선거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오는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18세 유권자가 참여하는 최초의 선거가 될 예정이다. 선거연령 하향은 오랜 시간 이어온 청소년 운동의 성과이다. '청소년들은 어려서 선동되기 쉽다', '교실이 정치화될 것이다'는 편견에 맞서 청소년 운동은 지속해서 선거연령, 피선거연령의 하향을 요구해 왔다.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사람에게 선거권 부여' 보통선거 원칙의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거에서의 연령 제한은 기본적 전제가 되어 있다. 여기에 일말의 합리성은 있다. 일정 이상 낮은 연령의 사람들이 선거 제도에 참여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연령제한은 '시간'이라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준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준을 몇 살로 둘 것인가 하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의 설정에는 많은 부분 기득권의 논리가 투여되어 왔다.

앞서 보았듯 제헌의회에서 선거권은 21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부여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이루어진 1946년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선거'의 경우 선거연령은 23세였다. 이는 미군정과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우익 세력의 타협점이었다. 미군정이 처음에 만든 보통선거법 초안에 따르면 선거권은 20세, 피선거권은 25세부터 부여되었다. 그러나 우익 세력이 주도한 법사위에서는 이를 각각 25세, 30세로 높이려 했다. 이에 대해 중도파들은 격렬히 반대했고 결국 미군정의 개입으로 선거연령, 피선거연령은 각각 23세, 25세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익들의 논리를 보면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현재와 같이 정계와 사조가 혼란한 시기에 23세 이하의 청년층의 정치적 판단이 반드시 건전하다고 볼 수 없다"며 선거연령을 23세보다 낮추는 것을 반대했다. 연령이 낮은 사람들은 미성숙하고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는 쪽에서 익숙히 보아온 것들이다. 그러나 이는 실은 기득권자들의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어서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청소년, 청년의 정치 참여를 막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그렇게 제헌의회에서 21세로 설정된 선거연령은 1969년 민법상 성인연령인 20세로 낮춰졌고 이후 민법개정으로 19세가 되었다가 드디어 18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걸로 선거연령 제한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 볼 수는 없다. 청소년 운동은 선거연령을 16세로 더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피선거연령이 여전히 25세(대통령은 40세)인 것도 문제이다.

피선거연령의 제한은 선거연령 제한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적은 사람은 미성숙하여 정치 참여가 어렵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그러나 여기서 미성숙은 누구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인가. 앞서 과도입법의원 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을 직접 적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 하위 계층의 선거권을 박탈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선거연령, 피선거연령 제한이 어쨌든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에 앞서, 그러한 제한이 과도입법의원 선거처럼 누군가의 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정된 것은 아닌지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수형자 선거권 제한

제18조(선거권이 없는 자) ①선거일 현재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선거권이 없다. 2.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사람. 다만, 그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유예 기간에 있는 사람은 제외한다. - 공직선거법
  
현행 공직선거법은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 선거권을 박탈하고 있다. 아마도 자격정지형을 받은 자나 피성년후견인을 제외하면 현재 가장 광범위하게 선거권을 제한받는 사람들은 수형자일 것이다. 수형자의 선거권 제한 역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94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 제정되었을 당시부터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은 선거권이 없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범죄의 죄질과 보호법익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든 비판이 꾸준히 있었다. 또한 형에 부가해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금지된 이중처벌이라는 지적들도 있었다. 이에 따라 해당 조항은 여러 차례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라갔다. 헌법재판소는 초기에는 이러한 제한이 합헌이라고 보았으나 2014년 입장을 바꾸었다. 2014년 1월 28일 2012헌마409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범죄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수형자에 대하여 전면적· 획일적으로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자에 대한 선거권 제한이 없어졌고, 이후 국회에서 1년 이상의 형을 받은 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도록 법을 개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국회가 설정한 '1년 이상의 형'이라는 기준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헌재의 앞서 결정 취지는 범죄의 구체적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시 1년이라는 일률적이고 자의적인 기준을 정한 현행 공직선거법이 과연 위헌 결정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외국은 어떠할까? 2014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용역 보고서인 <수형자에 대한 합리적인 선거권 부여방안>에 따르면 수형자 선거권을 제한하는 나라들이 존재하나, 그 기준은 ▲ 법원의 개별적 판결 ▲ 범죄 유형 ▲ 선고형 등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또한 이스라엘, 캐나다를 비롯해 20개국에서는 선거권을 전혀 제한하지 않는다. 이 중 이스라엘의 사례는 짚어볼 만하다.

1995년 당시 총리인 이츠하크 라빈이 극우파 이갈 아마르에게 사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라빈 총리의 후임 선출 선거에서 아마르의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살인범이 피해자 후임 선출에 관여하다니 당연히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대법원은 그러한 선거권 박탈이 아마르 개인이 아닌 이스라엘 민주주의에 해가 될 것이라 판시하며, 아마르의 선거권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설사 바로 지금 우리에게 적용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과 같은 수형자의 선거권 제한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영감을 안겨준다.

순수성의 논리, 누가 자격을 판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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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국가가 그러하듯 보통선거원칙에는 일반적으로 2가지 예외인 집단이 존재한다. 바로 청소년과 수형자이다. ⓒ 연합뉴스

선거연령의 제한과 수형자의 선거권 제한은 얼핏 다른 사안 같아 보이지만 근저에는 공통된 주장이 존재한다. 바로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은 순수해야 하는 데 정치참여는 이를 훼손한다, 교사의 견해에 물든 불순한 정치참여가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반대하는 논리로 쓰여 왔다. 마찬가지로 선거의 순수성을 보장하기 위해 기본적 의무를 저버린 수형자에게는 선거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수형자 선거권 제한을 찬성하는 하나의 논리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순수란 대체 무엇인가. 순수(純粹)의 사전적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이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는 다원성과 다양성이다. 인권과 평등이라는 기본적 가치 하에 다름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각자의 의견들이 경합하고 토론하면서 조금씩 발전해나가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그렇기에 정치, 나아가 우리 사회 어느 영역도 절대로 순수한 무언가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순수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선거권을 제한하고 사회에 참여할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선거권이 어떠한 경우에도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권도 권리의 하나로서 헌법 제37조에 따라 제한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거권을 논함에 있어 기존의 정치구조, 기득권의 관점에서 누군가에게 자격을 줄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로 흘러가서는 제대로 된 논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원치 않게 선거권을 제한당하거나 당할 우려가 있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나 평등하게 선거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보통선거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는 순수성이라는 허구의 논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선거제도의 중요성과 권리로서의 선거참여가 갖는 의의를 파악하면서 누구나 평등하게 이러한 권리를 누리기 위한 변화를 이야기하고 만들어나가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격월간 소식지 월간 평등업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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