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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한힌샘 주시경 선생은 누구인가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 / 1회] 내가 주시경 선생 평전을 쓰는 이유

등록 2020.02.28 09:08수정 2020.02.2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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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한글)에 대해 가해자들이 많았지만 이를 지키고 연구하고 다듬어 온 분들도 적지 않았다. 초기부터 수백 년 동안 '언문'으로 천시되어온 훈민정음을 '한글'로 이름하고 전 생애를 한글 연구와 맞춤법의 과학적 연구에 바친 선구자가 있었다.

한말과 일제강점 초기에 한글연구와 우리글 지키기에 온 힘을 쏟고 최현배ㆍ김두봉ㆍ권덕규ㆍ염상섭ㆍ변영태ㆍ현상윤ㆍ신명균ㆍ이규영ㆍ장지영ㆍ이병기 등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키워, 해방 후 남북에서 한글운동의 선두주자로 만들었다. 1914년 국내의 독립운동 동지들이 수감되자 해외 망명을 준비하던 중 급환으로 38살에 별세한 한힌샘 주시경(周時經, 1876~1914) 선생이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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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8일 한글날을 하루 앞두고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열린 '2015 한글문화큰잔치 전야제' 행사 당시 모습. 한글 창제와 반포에 대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심장부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문(文)의 세종임금과 무(武)의 이순신장군상이다. 두 분이 함께 조선왕조의 중심인물이다.

조선왕조 500년과 대한민국 건국 100년, 해서 600년 동안 우리나라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은 누구일까.

앞으로 당겨서 왕건이 고려를 세운 718년부터 이성계의 쿠데타로 붕괴되기까지 472년을 포함하여 대략 1천여 년 동안 우리 민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과 업적은 누구이며 무엇일까.

대륙국가이던 고구려와 발해가 망한 이래 한민족은 반도국가로 전락하여 970여 차례의 크고작은 외침을 받아왔다.

조선 선조 때는 왜군의 침략으로 7년 동안 백성은 어육이, 강토가 쑥대밭이 되고, 인조 때는 임금이 적장(청국)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수모를 당하였다. 그러다가 1910년 일제에 병탄되어 35년 동안 백성은 왜적의 모진 종살이를 하고 강산이 초토가 되었다.

줄기찬 독립전쟁 끝에 해방을 맞았으나 또 다른 외세에 의해 국토의 허리가 동강나고 겨레가 둘로 갈라졌다. 그리고 대리전인지 멍청한 짓거리인지 3년의 동족상쟁을 치렀다. 이후 두 쪽으로 갈린 남북의 정권은 냉전과 탈냉전을 오가면서 70년을 보냈다. 적대와 경쟁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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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이순신 장군상 아래 전의경들 ⓒ 강은경


다시 묻는다. 지난 1천여 년 동안 우리 민족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과 업적은 누구이며 무엇일까.

그 사이 우리 민족에 허다한 위해를 끼쳤던 이웃 국가들, 예컨대 대륙의 여진ㆍ만족ㆍ몽골ㆍ말갈 등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거나 왜소한 상태로 남아 있다. 특히 인류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몽골제국은 90년 만에 시들고 지금 초라한 후진의 모습을 보인다.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아탈리는 "북한 변수만 없으면 한국이 앞으로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본다.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 DNA의 원형은 무엇일까?

유라시아를 제패했던 몽골은 그들 고유의 문화가 없어서 90년 만에 제국에서 몰락하고, 중국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장악했던 청나라의 만주족은 지금 만주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10명도 안 될만큼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우리 민족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과 업적을 다시 묻는 질문은 의미가 없겠다. '인물'에 대해서는 다소 이의가 있을지 몰라도 '업적'은 일치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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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이 반포되던 해(1446년) 발행된 목판본으로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이정근

 
약간 긴 길을 돌아서 온 것은 '한글'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기 위해서다.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은 대륙민족이나 왜족에 동화되고 말았을지 모른다. 만족ㆍ여진ㆍ말갈 그리고 일본에 합병된 류우쿠우(琉球) 족처럼 말이다.

한글은 지난 700년간 한민족의 정체성이고 분단 70년이 되는 지금 남북 겨레의 공통점이다. 남북 8천만 겨레와 해외 교포ㆍ교민 800만의 원형질이다. 이 원형질은 한국어(조선어)를 통해 공유된다. 세계 200여 국가 중에서 우리가 통역 없이 대화가 가능한 언어는 한국어 뿐이다.

세종이 1443년 12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고 많은 책을 훈민정음으로 펴냈다. 특히 의서ㆍ농서 등 백성들이 실생활에 필요한 책과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한 교훈서 등이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일반 백성ㆍ국민을 위하고자 하는 정책에는 기득권 세력의 거센 도전이 따른다. 세종 당시 최만리 등 조정의 중신들과 각지의 유생들이 드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사대의 예에 어긋나며, 중국과 다른 문자를 쓰는 나라는 오랑캐들뿐"이라고 반대가 극심했다.

군왕이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하였지만 지배층에서는 19세기까지 언문(諺文)이라 비하하고, 어린이와 부녀자들의 글로 치부되었다. 말(언어)은 한국어로 하면서 글(씨)은 한문으로 쓰는 실정이었다. 양반 지배층은 여전히 한문(한자)을 자신들의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글이 백성들과 공유되는 것을 저지하였다.

한글의 수난사는 책으로 써도 여러 권이 될 정도로 극심하였다. 연산군 때에는 '언문'의 사용과 학습을 금지하고 언문 서적을 불태웠다. 일제강점기에는 아예 한글을 멸살시키고자 온갖 책동을 일삼았다. 미군정은 초기에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케 하려 들었다.

지금은 다른 형태로 한글이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우고 대학 졸업 때까지, 회사 취직용으로 영어에 매달리는 세태가 되었다. 힘이 센 자들은 미국 등 영어권 나라에 가서 출산하기도 한다.(여기에는 병역 기피의 목적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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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훈민정음(한글)에 대해 가해자들이 많았지만 이를 지키고 연구하고 다듬어 온 분들도 적지 않았다. 초기부터 수백 년 동안 '언문'으로 천시되어온 훈민정음을 '한글'로 이름하고 전 생애를 한글 연구와 맞춤법의 과학적 연구에 바친 선구자가 있었다.

독립협회에 참여하고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의 교정원으로 일하면서 협성회를 창립하여 『협성회보』를 발간하고 조선문동식회(朝鮮文同式會)를 결성, 한글기사체의 통일과 연구에 힘쓰는 한편, 경향 각지의 여러 학교와 강습소를 다니며 한글을 가르치고 보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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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문법 주시경 선생의 육필원고본 <국어문법>, 오른쪽에 "주시경 서"라는 글씨가 보인다. ⓒ 김영조

 
나라가 기울던 1905년 국어연구와 사전편찬에 관한 건의를 정부에 제출하고, 1907년 정부내의 학부(學部)의 국어연구소 위원으로 들어가, 나라가 망해도 국어만은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하였다. 국치의 해인 1910년 『국어문법』을 지었고, 최남선이 창설한 광문회에서 간행되는 국어관계 서적의 교정과 『말모이(국어사전)』의 편찬 책임을 맡았다.

한말과 일제강점 초기에 한글연구와 우리글 지키기에 온 힘을 쏟고 최현배ㆍ김두봉ㆍ권덕규ㆍ염상섭ㆍ변영태ㆍ현상윤ㆍ신명균ㆍ이규영ㆍ장지영ㆍ이병기 등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키워, 해방 후 남북에서 한글운동의 선두주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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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 선생 주시경 선생


1914년 국내의 독립운동 동지들이 수감되자 해외 망명을 준비하던 중 급환으로 38살에 별세하였다. 누구일까요?

한힌샘 주시경(周時經, 1876~1914) 선생이다.

어느 독립운동가 못지않는 애국자이고 '한글'이란 이름을 창안한, 세종대왕의 후계자라 하겠다. 그의 이름과 행적을 아는 이 얼마나 될까. 한힌샘 선생의 평전을 쓰게 된 이유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한글운동의 선구자 한힌샘 주시경선생‘]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힌샘 #한힌샘_주시경 #한글 #훈민정음 #한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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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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