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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여의도 서쪽 건물 높이가 일정한 이유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국회도서관 ②

등록 2020.03.19 12:06수정 2020.03.1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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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도서관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군사 정부 시절 '공공건축'에 대해 문화평론가 이영미가 지적한 내용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에 지어진 공공건축들에 이러한 계단과 열주가 아주 흔했다는 점이다. 위를 우러러보며 한참을 올라가야 하고, 거대한 지붕을 받치는 튼튼하고 멋진 돌기둥이 늘어서서 엄숙함을 뽐내는 구조 말이다. 장충동 국립극장, 경주박물관 등의 주요 박물관 건물은 물론 실용성이 중요한 연구·교육기관인 정신문화연구원(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주주의의 전당이어야 할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모두 계단과 열주를 만들고 그 위에 멋진 지붕을 씌운 설계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즉, 당시 공공기관에 대한 '힘 있는 분들'의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건축 전문 기자였던 구본준의 <세상에서 가장 큰 집>(2016)에 의하면, 공모를 통해 당선된 설계를 국회의원들이 '더 폼 나는 모습으로 만들어달라'고 압력을 넣어 돔 지붕을 덮고 거대한 열주를 늘어 세운 권위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나도 들은 적이 있다. 심지어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방송사 건물에도 이랬다는 것이다. 바로 여의도의 KBS 본관 건물이다. 이 건물에도 어김없이 계단과 열주가 갖추어져 있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의 지적처럼 국회의사당은 그 시절 전형적인 공공건축의 하나다. 그러면 국회도서관은 어떨까?

여의도 서쪽 건물의 높이가 일정한 이유는?
 

국회도서관 국회도서관 1층엔 대출대와 석박사학위논문실, 어린이방이, 2층엔 사회과학자료실과 법률정보센터, 디지털정보센터, 독도.통일정보센터가 있다. 3층엔 인문자연과학자료실이, 4층에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있다. 5층엔 정기간행물실과 의원열람실이 자리하고 있다. 의원열람실과 연구실이 있는 5층에는 야외 테라스가 있다. 예전에 개방했던 5층 야외 테라스는 이제 개방하지 않는다. ⓒ 백창민

 
국회도서관은 국회의사당처럼 '열주'(列柱)가 없을까? 국회도서관에도 국회의 '열주 사랑'은 이어졌다. 외관에 책이 꽂혀 있는 형상을 새겼다고 하나, '변형된 열주' 일뿐이다.

국회도서관의 건축면적은 5,517m2이며, 연면적은 25,776.3m2다. 지하 1층, 지상 5층 건물이며, 구조는 철근콘크리트조와 철골트러스다. 국회의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함이었는지, 국회의사당보다 높지 않도록 건물 높이를 조절했다.

국회의사당보다 낮게 건물을 지어야 하는 '고도제한'은 국회도서관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여의도는 여의도공원(옛 5.16 광장)을 기준으로 동여의도와 서여의도로 나뉜다. 국회의사당이 자리한 여의도 서쪽 지역의 건물 높이는 국회의사당 처마보다 높일 수 없는 행정지침이 적용되었다. 국회의사당을 내려다보지 말고 올려다보라는 취지인 셈이다. 우리 국회가 시민으로부터 자발적 권위를 확보한 기관이 아니라 강제에 의해 권위주의적 기관으로 군림했음을 알 수 있다.

국회도서관은 책 보존을 위해 직사광선을 피하도록 설계됐다. 사무 공간은 외곽으로 배치하고, 서고는 북쪽에 배치했다. 설계는 건축가 이승우가 담당했다. 당시 이승우는 종합건축 대표였다. 이승우는 국회도서관뿐 아니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과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도 설계했다. 도서관이 아닌 작품으로 여의도 한국증권거래소, 서울대학교 강당, 한국방송회관 신축건물을 남겼다. 종합건축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도 설계한 곳이다.

초기에는 국회의원과 직원, 시민의 출입 동선을 나눠 배치했다. 국회의원만을 위한 별도의 출입 동선이라니 마뜩지 않지만, 시민 대표인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위함이라면 봐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별도 동선을 마련할 만큼 국회의원들이 국회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는지는 의심스럽다.

국회도서관은 정면과 측면, 후면이 비슷한 입면을 가지고 있다. 좌우대칭 구조일 뿐 아니라 진입로에 계단을 두어 권위적 인상이 강하다. 외벽 재료로는 단단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화강석과 유리로 마감했다. 언뜻 국립중앙도서관과 비슷해 보이는 건 이런 공통점 때문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가장 큰 차이는 3층부터 5층까지 '중정'(中庭)을 두었다는 점이다.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eh)는 건축을 이렇게 정의했다.

"건축은 공간의 용어로 표현된 시대 의지다(Architecture is the will of the epoch translated into space)."

귄위주의적 외관을 지닌 국회도서관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시대 의지'를 읽을 수 있을까.

국회도서관은 큰 도서관인가, 작은 도서관인가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도서관학 5법칙>(Five laws of Library Science)을 쓴 S. R. 랑가나단은 도서관의 크기를 언급하며 타고르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타고르는 1913년 <기탄잘리>로 아시아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29년 타고르는 조선을 노래한 <동방의 등불> 이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 Wikimedia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회의사당과 국회도서관, 의원회관 건물을 연결하는 T자 형태의 '지하통로'가 있다. 460미터 길이의 지하통로는 1984년 국회도서관 신축 과정에서 설계됐다. 비상시에는 대피소로 쓰이며, 평소에는 비를 피해 국회 건물을 이동하거나 자료와 기록물을 옮길 때 사용한다. 시민은 출입할 수 없다.

국회도서관 5층뿐 아니라 의원회관 205호에는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이용할 수 있는 80평 규모 '의원열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국회도서관은 의원이나 보좌진이 신청한 자료를 의원사무실까지 '배달'하기도 한다. 국회도서관에서 의원회관으로 책 배송은 어떻게 할까? 의원사무실에서 책과 자료 신청이 많으면 차량을 이용할 듯싶은데, 그 양이 많지 않은지 도서관 직원이 손수레로 옮긴다고.

국회도서관에 연결된 '의정관'은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을 교육. 훈련하는 곳이다. '국회전자도서관 겸 서고동'으로 건립이 추진되었다. 건립 과정에서 지하층 서고동은 그대로 설치했지만, 지상층은 국회 사무공간과 회의실로 용도가 바뀌었다. 국회사무처와 국회예산정책처가 의정관에 자리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전자도서관' 건립 계획은 훗날로 미뤄졌다.

의정관은 지하 4층, 지상 6층, 연면적 45,935m2 규모로 2007년 12월 완공되었다. 시민은 국회도서관과 연결된 의정관 3층의 독도·통일정보센터와 디지털정보센터만 출입할 수 있다. 의정관 지하 1층부터 지하 3층까지는 국회도서관의 서고가 자리하고 있다. 의정관 5층과 6층은 국회방송이 사용한다. 의정관 앞에 있는 건물은 '헌정기념관'이다. 헌정기념관은 1998년 5월 29일 국회 개원 50주년을 기념하여 개관한 건물로, 이곳에 국회 방문자센터가 있다.

국회도서관은 외형에서 웅장함을 주는 건물이고, 국가도서관에 걸맞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인원도 2016년 개정된 국회도서관직제를 기준으로 316명이 되었다. 국회의원이 300명이니까 의원 1인당 국회도서관 직원수는 1명이 넘는 셈이다. 규모와 직원수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손꼽힐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크기는 규모에 의해 결정될 듯싶지만, <도서관학 5법칙>(The Five Laws of Library Science)을 쓴 랑가나단(S. R. Ranganathan)은 타고르(Tagore)의 이런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도서관의 크기는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원의 서비스에 있다(It is such hospitability that makes a library big not its size)."

도서관을 크게 하는 것은 '규모'가 아닌 이용자에 대한 '환대'에 있다는 뜻이다. 타고르의 말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국회도서관은 '큰' 도서관인가, '작은' 도서관인가.

한국 의회 민주주의와 국회도서관
 

국회의사당과 국회도서관, 의원회관 국회 주요 건물은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ㄷ자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의사당 왼편에 국회도서관이, 오른편에 의원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여의도 서쪽 지역은 국회의사당보다 높지 않도록 고도가 제한되었다. 국회도서관 5층 뿐 아니라 의원회관 2층(205호)에도 ‘의원열람실’이 마련되어 있다. ⓒ 대한민국 국회

 
국회도서관의 역사를 정리한 두툼한 책, <국회도서관 60년사>를 읽다가 눈에 띄는 대목을 발견했다. 국회도서관이 3공화국 시절에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4공화국 시절에는 "안정적으로 발전"했다는 것.

'성장'이 수치 증가에 입각한 개념이라면, '발전'은 양적 성장뿐 아니라 질적 내실화까지 함께 이뤄짐을 의미한다. 직원과 조직, 장서량이 증가했으니, 이 시기 국회도서관이 외형적으로 '성장' 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국회도서관이 외형뿐 아니라 질적 내실화까지 함께 이뤘느냐 하는 점이다.

3공화국과 4공화국 시대는 박정희가 군부 독재를 이어가던 시절이다. 3공화국 헌법에서 제3장에 있던 '국회'에 대한 조항은 유신헌법에서 제6장으로 밀려났다. 심지어 유신체제 하에서 국회는 대통령 명령에 따라 법률을 통과하는 '통법부'로 전락했다. 한국 의회 민주주의가 '암흑기'를 겪던 그 시절, 의회의 입법활동을 보좌하는 국회도서관은 질적으로 '발전'했다는 역사 서술이다. 국회도서관이 추구했던 '성장'과 '발전'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의회도서관은 의회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런 발전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의회도서관의 목적에 부합하는 발전일까? 한국 의회 민주주의 역사와 국회도서관은 도대체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을까?

유신 시대인 1975년 3월 19일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법사위 장소를 국회도서관 의원열람실로 바꿔 형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이 법안의 법사위 통과를 막기 위해 태평로 국회의사당 건너편 법사위원실을 지키고 있었다. 공화당은 야당 의원을 피해 국회도서관 의원열람실에 모여 법안을 변칙 통과시켰다. 법안 통과에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법사위원장이 '의사봉'이 없어 머뭇거리자 누군가 건네준 '라이터'로 탁자를 두드려 통과를 시켰다. 공화당은 도서관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의정 활동과 입법 보좌 활동이 아닌 국회 '파행' 공간으로 도서관을 활용한 사례다.

국회의원은 국회도서관을 얼마나 이용할까?
 

국회 야경 번듯한 ‘의회도서관’을 가졌지만 국회의원의 국회도서관 ‘외면사’는 길다. 박상균 전 경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아직 국회와 의원들이 도서관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회와 의원의 도서관 의지 없음이 국회도서관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 대한민국 국회

 
국회의원은 입법 활동 보좌를 위해 존재하는 국회도서관을 얼마나 이용할까? <경향신문>은 1964년 3월 24일에 이런 기사를 냈다.

 
"국회의사당 바로 곁에 붙어 있는 국회도서관은 늘 조용하다. 서재의 분위기가 그런 것이 아니라 드나드는 선량(選良)들이 드물어 언제나 한산해 보인다. 의원 열람실의 좌석은 모두 16석. 그 푹신한 의자는 늘 비어있기 일쑤다. 개원 이래 열람실을 다녀간 의원은 고작 50여 명. 그것도 단골의원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아직 도서관에 얼씬도 안 한 의원은 거의 1백여 명을 헤아릴 정도다."

해마다 낮은 독서 수치를 갈아치우는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의원이라 그럴까. 국회의원의 '도서관 외면' 역사는 길고 오래다. 기사가 쓰인 1964년 당시 국회도서관을 찾는 의원은 하루에 서너 명뿐이었다. 당시 국회도서관은 추경을 합해 연간 2천5백만 원의 예산을 썼다. 예산 규모로 국내 최대, 이용률은 국내에서 가장 낮은 도서관이었다. 12만 권의 장서 중 1/3인 4만여 권은 외서였다. <경향신문> 1966년 4월 22일에 실린 기사다.

 
"9만여 권의 장서를 갖고 연간 6천3백80만 원의 예산으로 112명(임시직원 제외) 직원을 두고 의원들이나 직원에게 책을 대출해주고 있는 국회도서관이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 졸고 있다는 민망스러운 이야기.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는 의원이 없다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3일 만에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 찾아와서 한 권의 책을 빌려가는 실정이라면 누구나 거짓말이라고 믿지 않을는지 모르나 9개월 동안에 고작해야 연 백명의 의원이 180권의 책을 대출해갔다는 통계가 나왔으니 사실은 3일에 한 사람씩 찾아오는 의원들이 한 권도 되지 않는 0.6권의 책을 빌려간 셈이 된다. (중략) 6대 국회의원 가운데 도서관 출입은 물론 책 한 권 빌려보지 않는 의원의 수가 112명이나 된다니 그 허구헌 날 휴회 중에는 도무지 무엇들을 하는지 돈 많은 것도 탈이렷다."

당시 국회도서관 예산은 6,390만 원으로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예산의 3배에 육박했다. <경향신문> 1967년 9월 13일 기사를 보자.
 
"국회의원들은 모두 독서로 소일했다고 기자에게 말하고 있지만 국회도서관은 개원 이래 이현재, 안동준 의원 등 20여 의원만이 주로 회의록과 법률서적을 들춰볼 뿐이라니 의원의 도서관 기피증은 여전."

10대 이전까지 국회의원의 국회도서관 이용이 저조했던 데 반해, 11대 국회의원의 경우 이전 국회의원보다 4배 이상 국회도서관을 많이 이용하기도 했다. 국회도서관을 자주 이용한 국회의원 이름 중에 낯익은 이름도 보인다. <매일경제> 1988년 8월 9일 기사다.

"도서관 5층에 마련된 의원열람실은 50여 평의 규모에 2명의 여직원이 근무하는데 하루에 이용하는 의원은 전체 의원 299명 가운데 3~5명에 불과. 이용하는 의원들도 대부분 초선의원이어서 의회 경력이 많을수록 도서관과는 담을 쌓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강신옥, 신영국 의원(민주) 등이 매일 찾는 편이고 박찬종, 이철(무소속), 이상수, 이해찬(평민), 노무현(민주) 등도 자주 들러 정기국회를 앞두고 입법자료와 국정감사 준비에 열중."

1998년 10월 21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다.

 
"국회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과 함께 1백만 권 이상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국내 양대 도서관 중 하나다. 막상 국회도서관의 최대 고객이어야 할 국회의원이나 의원 보좌진이 이곳을 이용하는 일은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도서관이 20일 국회운영위원회에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1996년 5월 15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지금까지 299명의 의원실에서 국회도서관 책을 빌려간 권수는 24,042권. 의원실 한 곳에서 한 달에 평균 2.87권의 책을 빌려간 셈이다."

국회도서관 책을 '관외대출' 할 수 있는 사람은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회 직원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3년 국회의원실에서 책을 대출한 건수는 국회도서관 전체 대출건수의 24%를 차지했다. 나머지 76%는 국회에서 일하는 직원이 빌렸다. 이쯤되면 국회도서관은 국회'의원'을 위한 도서관이 아니라 국회'직원'을 위한 도서관이다. 대출 권수만으로 도서관 이용률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21세기 들어서도 국회의원의 도서관 외면은 바뀌지 않은 셈이다. 

상당수 국민이 독서를 '취미'로 삼는 대한민국에서 독서에 대한 수치는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유권자의 절반 가까운 사람이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수치가 나왔다. 그 국민에 그 국회의원이라고 해야 할까. 대다수 시민이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도서관은 제대로 성장하고 기능할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한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의 말을 살짝 바꾸면 이런 말이 된다.

"모든 시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도서관을 갖는다(Every nation gets the library it deserves)."

국회도서관은 무엇이 다른가
 

의정관 지하 4층, 지상 6층 규모로 완공된 의정관의 지하는 국회도서관의 서고로 쓰인다. 2002년 12월 착공해서 2007년 12월 완공했다. 의정관을 설계한 곳은 ‘종합건축’이다. 종합건축은 국회도서관을 설계한 곳이기도 하다. 의정관 지하 서고와 국회도서관 건물 사이에는 북컨베이어가 설치되어 책을 운송한다. ⓒ 대한민국 국회

 
국회도서관이 여느 도서관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회도서관이 '입법 지원기관'이라는 점이다. 의회도서관이 시민을 대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의회도서관의 핵심적인 책무는 의원의 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1963년 11월 26일 제정된 국회도서관법 제2조는 국회도서관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도서관은 도서 및 도서관 자료를 수집하여 국회의원의 직무수행에 자함과 동시에 도서관 봉사를 함을 그 임무로 한다."

행정부와 비교해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입법부, 즉 의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의회도서관은 의원의 입법활동을 보좌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

나라마다 의회도서관의 기능은 차이가 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의회도서관은 의원뿐 아니라 시민에게 도서관 봉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에 반해, 독일과 프랑스 의회도서관은 오직 의원에게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 의회도서관도 의원에 대한 서비스에 집중하고 일반인의 이용은 제한한다. 

한국의 경우 미국, 일본과 달리 '국립중앙도서관'이라는 국가도서관이 따로 존재한다. 국회도서관이 의원에 대한 입법 지원 업무에 집중하고, 나머지 업무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이관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모두 국가가 설립한 도서관이다. 미국과 일본은 의회도서관과 국가도서관을 따로 세우지 않고 의회도서관이 국가도서관 기능을 겸한다. 한국에 국립도서관 수가 적지 않다는 내용은 국립중앙도서관 편에서 언급했다(관련 기사 : 국립중앙도서관 뒷마당에 자리한 독재자의 '하사품'). 국회도서관만 하더라도 2021년 개관을 목표로 부산 명지신도시에 자료보존관 명목으로 '부산관'을 건립 중이다.

국회도서관 부산관은 건립 예산만 433억 4천2백만 원이 소요된다. 국회는 여의도 면적의 1/8인 10만 평 땅에 자리를 잡고 있다. 통일과 부속 건물 건립을 위해 부지에 여유를 둔 것이다. 국회도서관과 연결된 헌정관 앞에는 국회 테니스장까지 있다. 여의도 국회 부지가 부족해 보이지 않음에도 국회도서관이 410km나 떨어진 부산에 자료보존관을 건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세종의사당'이 추진되면, 세종시로 국회도서관이 이전하거나 분관이 추가 건립될 수 있다. 그 상황이 되면 여의도 국회도서관 건물은 무엇으로 활용할 계획일까? 인구절벽 시대를 맞아 공공도서관 증가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회도서관을 비롯한 '국립도서관'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걸까? '분관'이라는 이름으로 국립도서관이 '우후죽순'처럼 지어지는 상황에서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통합론'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의 통합은 여러 차례 거론된 적 있다. 1960년대부터 통합에 대한 의견이 있었다. 1963년 도서관법 제정 때도 중앙도서관을 입법부 국회도서관에 두느냐, 행정부 국립도서관에 두느냐 논란이 일었다. 중앙도서관을 행정부 국립도서관에 두는 것으로 정리하면서 국립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입법부에 두는 것으로 정리했다면, 국회도서관 이름은 '국립국회도서관' 또는 '국회중앙도서관'이 되었을지 모른다.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 '통합론'의 역사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의 야경. 앞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디지털도서관이고, 뒤쪽으로 본관이 보인다. 본관은 위형복이 설계했고, 디지털도서관은 정림건축이 설계했다.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을 통합하자는 주장은 1960년대부터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 국립중앙도서관

 
1973년 국립중앙도서관이 소공동 부지를 롯데에 매각하고 1974년 남산 어린이회관 건물로 옮길 때도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의 통합 얘기는 나왔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이전 부지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인 만큼 '통합'해서 여의도에 통합도서관을 '신축'하자는 안이었다. 통합 주장은 주로 국회 쪽에서 흘러나왔다. 1974년 7월 9일 <동아일보>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의 통합을 도서관 분야 혁신책으로 주문하는 사설을 게재했다.

당시 국회도서관은 예산 3억 2천만 원, 209명의 인원을 보유한 상황이었고, 국립중앙도서관은 예산 1억 원에 인원이 99명이었다. 예산이나 인원 모두 국회도서관이 2배 이상 많았기 때문에, 국회도서관 중심의 통합 제안이 흘러나오지 않았나 싶다.

1979년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을 통합한 도서관을 세우자는 논의가 다시 일었다. 1978년부터 국회도서관은 여의도에 도서관 신축 계획을 준비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예 국립중앙도서관과 통합해 '국립국회도서관'을 건립하자는 의견을 국회도서관 측이 냈다.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을 지낸 이봉순 교수도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의 통합을 거론한 바 있다. 이봉순 교수는 1974년 국립중앙도서관의 남산 어린이회관 이전 때는 "부적절한 건물로 옮기느니 국회도서관으로 들어가 명실상부한 대표도서관 기능을 회복할 것"을 제안했다. 그녀가 통합을 주장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을 통합함으로써 국가 대표기관을 일원화시키고 예산과 정력을 효율화시키며 통일적인 도서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봉순 교수는 신군부 시절인 1981년 이렇게 다시 말했다. 당시 그녀는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이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좁고 작은 나라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하나로 통합돼야 마땅하다."

박상균 전 경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도 2002년 발간된 <국회도서관 50년사>에서 두 도서관의 통합을 주장했다. 박상균 교수는 통합의 이유로 국회도서관의 모호한 성격을 지적했다.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감히 하게 된 이유는 국회도서관이 국립도서관인지, 공공도서관인지, 아니면 전문도서관인지 그 성격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전문가도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의 통합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1966년 미국 국제개발처(AID) 조사단은 한국 출판산업의 현황을 진단한 보고서에서 4가지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도서관을 확대 강화하고, 문교부에 단일한 출판 행정기구를 설치하며,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을 통합하라는 권고다.

<발전도상국의 도서관직>을 쓴 레스터 어샤임(Lester Asheim)도 한국의 도서관 상황을 논하면서 국가도서관 통합을 언급했다.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나뉜 국가도서관을 합치는 것이 한국 도서관 발전에 도움될 거라고 제안한 것이다. 

겹치는 중복 사업 문제, 이로 인한 예산 낭비, 비슷한 국가도서관이 난립하는 것으로 보여 두 도서관을 통합하자는 문제 제기는 계속 이어져왔다. 문제는 어느 도서관을 중심으로 통합해서 어느 소속으로 둘 거냐, 통합 후 두 도서관 직원의 자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진지한 통합 논의를 진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시민과 국가를 위해 지금의 국회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 양립 체체가 바람직한가라는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도서관장'은 누가 되어야 하나
 

강주진 국회도서관장 임명식 이효상 국회의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는 강주진 국회도서관장. 최장수 국회도서관장인 그는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제10대 한국도서관협회장을 지냈다. 강주진은 1947년 종로 YMCA에서 출범한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초대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강주진은 출판계 출신으로 국가도서관장 자리에 오른 드문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중앙대학교 학생처장, 서지학회장, 독서신문 사장, 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94년 10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 국가기록원

 
2017년 국회도서관 관장 부임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그동안 국회도서관장은 야당이 자신의 몫으로 추천권을 행사해온 '보직'이었다. 1987년 여당이 국회사무총장을, 제1야당이 국회도서관장 자리를 '차지'하기로 합의한 이후 관행이다. 차관급인 국회도서관장은 야당이 정부 인사에서 챙길 수 있는 최고위직이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정치 혁신의 일환으로 국회도서관장직을 외부에 개방하기로 했다. 이 '결정'을 통해 국회도서관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한 후 성균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이은철 교수를 임명했다. 이은철 교수가 국회도서관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국회도서관 관장직엔 단 한 번도 도서관 분야 전문가가 임명된 적이 없다.

도서관 전문가로 부임한 이은철 관장 후임으로 자유한국당(지금의 미래통합당)이 예전처럼 당내 인사 임명을 고려하면서 국회도서관장 자격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국회도서관장에 도서관 전문가가 임명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의회 전문가가 임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기도 했다(관련 기사 : 국회도서관장, 의회전문가가 맡는 게 맞다). 

'의회' 전문가인 동시에 '도서관' 전문가가 있다면 좋겠지만, 양자를 모두 갖춘 전문가가 없다면 우리는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국회도서관장으로 의회 전문가를 택해야 하나, 도서관 전문가를 택해야 하나. 역대 국회도서관장 중 의회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도서관 전문가 관장이 임명되지 않았던 시절 국회도서관은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도서관 전문가 관장이 임명된 후 국회도서관의 운영은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흥미롭고 의미있는 논쟁이다.

어떤 전문가를 임명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국회도서관장의 짧은 임기 역시 문제다. 2-3년에 불과한 관장 임기는 국회도서관 현황을 파악하고 제대로 이끌기에 짧은 기간이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역사가 220년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도서관장은 단 14명이다. 13대 제임스 빌링턴(James H. Billington)은 28년 동안 관장으로 일하다가 86세의 나이로 퇴임했다. 제8대 허버트 푸트넘(Herbert Putnam) 관장은 무려 40년을 재임했다. 

미 의회도서관보다 역사가 1/3에 불과한 우리 국회도서관은 그보다 많은 22명의 관장이 거쳐 갔다. 9년 동안 재임해서 최장수 관장으로 기록된 강주진, 7년 재임한 7대 김주봉 관장의 사례가 예외적일 뿐, 관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2.9년에 불과하다(박연섭과 이금석, 두 명의 '군바리 관장'까지 합하면 2.6년이다). 그나마 평균 재임기간이 1.7년인 국립중앙도서관장보다 길다는 것을 위안 삼아야 할까. 

국회의원 위에 있다는 '입피아'를 아시나요?
 

국회도서관 1층 중앙홀 1988년 2월 20일 개관한 국회도서관은 지상에는 열람시설과 사무실을, 지하에는 강당과 회의실, 식당을 갖추고 있다. 도서관 주변에 야외 서가인 ‘숲속도서관’이 있다. ⓒ 백창민

 
도서관 규모와 예산에 비해 낮은 이용률로 국회도서관이 '고심'한 역사도 길다. 1964년 4월에는 전직 국회의원과 일반 연구원에게 개방을 하고, 시민 개방도 함께 고려했다. 1977년에는 학계와 전문가에게 연구 편의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대학 교수에게 열람증 발급을 시작했다.

1998년 10월부터는 시민을 대상으로 전면 개방했다. 이를 위해 금속탐지기를 철거하고 도서관 이용하는 시민을 위한 전용 출입구를 따로 마련했다. 개방 범위가 확대되면서 국회도서관은 1999년 2월 주당 이용자가 5,500명에서 7,700명으로 크게 늘었다.

도서관이 부족했던 시절 우리에게 도서관은 다다익선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공공도서관 수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국회도서관의 '공공도서관' 기능 강화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점이 있다. 국회도서관의 책무는 국회의 입법 보좌 활동이 먼저다. 의정 활동 보좌가 충분하다면, 국회도서관의 시민 봉사는 박수 칠 일이다. 제 일을 잘하면서 일을 더 하겠다는데 말릴 시민이 누가 있을까.

문제는 국회도서관의 입법 보좌 활동이 충분하냐는 것이다. 입법 지원기관으로서 유용성을 의심받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국회도서관이 공공도서관 성격을 강화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국회도서관이 국회도서관다워지는데, '국가도서관' 또는 '공공도서관'이라는 타이틀이 굳이 필요할까. 국회도서관은 '의회도서관'이라는 전문성만으로도 충분히 존재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하지만 입법 전문도서관도, 국가도서관도, 공공도서관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이 지금의 국회도서관 아닐까. 

미국 의회도서관과 일본 국립국회도서관(國立國會圖書館)은 전문적인 입법 지원 조직인 의회조사처(CRS)와 조사 및 입법고사국(調査及立法考査局)을 산하 기관으로 두고 있다. 이와 달리 국회도서관은 2007년 '입법조사처'가 독립기관으로 분리 출범했다. 예산과 인원, 장서는 계속 늘었지만 입법조사처 출범 후 국회도서관의 위상은 더 모호해진 게 아닐까. 

무능한 국회, 일하지 않는 국회에 대한 '심판론'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행정과 보좌를 담당하는 국회사무처와 국회도서관을 비롯한 국회 지원기구 역시 비판을 피해 갈 수 없다. 1976년 도입된 입법고시 출신이 국회사무처와 국회도서관,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의 고위직을 독점하면서 '입피아'(입법관료+마피아)라는 말이 생겨났다.

국회의원은 유권자의 표로 심판이 가능하다지만, '국회의원 위에 있다'라는 '입피아'와 국회 '늘공'은 어떻게 개혁하고 심판해야 할까? '입법부 개혁'에는 국회의원뿐 아니라 국회의 '모든' 구성원과 제도, 기구, 예산이 포함되어야 한다. 

국회도서관은 '세금 먹는 하마'인가 
 

국회의사당과 국회도서관 1960년대 초부터 1980년까지 국회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보다 더 많은 예산을 사용했다. 1965년부터 1968년까지는 3배 이상 많았고, 1967년에는 4.6배나 예산이 많았다. 1981년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예산이 국회도서관보다 많다. 최근 들어서는 국립중앙도서관 예산이 국회도서관보다 2배 이상 많은 해도 있다. 두 도서관의 직원수는 3백여 명으로 비슷하다. ⓒ 대한민국 국회

 
"정치와 의회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의회도서관이 의회를 보좌하여 정치 발전을 도울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의회도서관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 대한민국 국회도서관은 어떨까? 대한민국 국회와 국회도서관 68년 역사는 이 표현이 달성 불가능함을 '증명'한 건 아닐까? 국회의원이 이용하지 않는, 국회 입법 활동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는 국회도서관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1953년 224만 원이었던 국회도서관 예산은, 1972년 2억 2천7백64만 원으로 100배를 넘어섰다. 1988년에는 23억 6천71만 원으로 1천 배를, 2005년에는 234억 2천5백만 원으로 1만 배를 돌파했다. 2020년 국회도서관 직원수는 관장 포함 317명이며, 장서량은 6,798,074권, 예산은 642억 원이다.

1952년 개관 당시와 비교하면 국회도서관의 직원수는 300배 이상, 장서는 3,604배, 예산은 3만 배 가까이 늘어났다. 공무원 수는 업무량과 상관없이 계속 늘어난다는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은 국회도서관에도 들어맞는 걸까.

1953년부터 2020년까지 국회도서관이 썼거나 사용 예정인 누적 예산은 8천2백16억 6천5백만 원이 넘는다. 2023년에는 국회도서관이 쓴 누적 예산이 1조 원을 넘길 것이다. 세금이 눈 먼 돈이라고 하나, 국회도서관이 지금까지 쓴 혈세는 적지 않다. 

입법 보좌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회도서관은 예산 642억 원짜리 도서관, 대출도 안 되는 '불편한 도서관' 일뿐이다. 대다수 시민은 한 해 예산이 수백억 원에, 직원이 3백 명이 넘는 국회도서관이 '있으나 마나 한 도서관'으로 기능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173개 공공도서관을 둔 서울시가 2020년 '도서관 및 독서 진흥'에 배정한 전체 예산은 494억 원이다. 이보다 1.3배 더 많은 예산을 쓰는 국회도서관은 그 예산에 합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설립 취지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국회도서관 역시 '세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무능한 의원을 놀려 '국개의원', 그들이 일하는 의사당을 '개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나마 의사당은 국회의원이 쓰기라도 하지, 국회의원이 자주 이용조차 하지 않는 국회도서관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입법 보좌에 필요한 꼭 필요한 장서와 인력, 시설을 제외하고 국회도서관의 과감한 축소 또는 국립중앙도서관과 통합까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국회와 더불어 국회도서관은 언제쯤 예산과 인원에 걸맞은 역할을 보여줄까. '너의 섬'으로 불린 여의도는 언제쯤 시민을 대변하는 '나의 섬', '우리의 섬'이 될 것인가.

[국회도서관]

-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여의도동)
- 이용시간 : 평일 09:00 - 22:00, 주말 09:00 - 17:00
- 휴관일 :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 법정공휴일
- 이용자격 : 18세 이상. 무료
- 홈페이지 : http://www.nanet.go.kr/
- 전화 : 02-788-4211
- 운영기관 : 대한민국 국회
덧붙이는 글 '국회도서관'을 다룬 이 기사는 ①편과 ②편 2개의 기사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글은 ②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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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해서 책사냥꾼으로 지내다가, 종이책 출판사부터 전자책 회사까지 책동네를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책방과 도서관 여행을 좋아합니다.

사람사이에 조용히 부는 따스한 봄바람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 동물, 책을 좋아하는 고양이 집사입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지금은 소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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