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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품으로 쌀이 왔는데 먹을 방법이 없네"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뚝 끊긴 '자가격리' 대구시 장애인들

등록 2020.02.29 21:01수정 2020.03.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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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에서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격리자를 위해 즉석밥, 생수, 라면, 통조림 등으로 구성된 긴급구호세트를 제작하고 있다. 2020.2.28 ⓒ 연합뉴스

   
"대체인력을 구한다고는 하지만 누가 오려고 할까요."

대구에 사는 뇌병변 장애인 김아무개(37)씨는 23일부터 집에서 지내고 있다. 최근 김씨의 지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김씨 역시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서는 21일 자가격리된 장애인들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에겐 무용지물이다. 적지 않은 수의 활동지원사들도 자가격리에 들어간 탓이다. 김씨의 활동지원사 역시 일주일 전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다.

복지부는 활동지원이 어려울 때는 가족 등에 의한 일시적 활동지원 서비스를 허용한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김씨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씨는 혼자 살고 있다. 그는 28일 <오마이뉴스>에 "활동지원사를 구한다고는 하지만 누가 오려고 하겠냐"라고 되물었다.

김씨는 하루에 한 끼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있다. 배달원이 문 앞에 음식을 놔두고 가면 김씨는 문 앞까지 기어가서 음식을 가져온다. 쌓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치울 수 없기 때문에 배달 음식을 계속 주문하기도 어렵다. 구청에서 구호 물품으로 쌀과 라면을 보냈지만, 김씨는 혼자서 밥을 짓거나 라면을 끓일 수 없다. 그는 쌀과 라면을 그대로 놔두었다.

김씨는 자가격리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못했다. 보건소까지 가기 어려운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경우 보건소에서 직접 나와 채취한다. 하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 김씨의 말이다.

"보건소에서 곧 연락한다고 들었는데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혼자 있는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에게 빠른 조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발달장애인 1명, 결국 양성판정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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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산병원 근무 교대 28일 오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격리병상이 마련된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근무를 교대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28일 오후 현재 대구에서만 코로나19 확진자가 1500여 명을 넘어섰다. 이날 오후 1명의 발달장애인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 발달장애인 A씨는 의심증상이 있어 지난 26일 보건소에 방문했지만 예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이후 장애인단체가 항의해 검사를 받았고 결국 양성 판정을 받았다.

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자칫 코로나19에 걸린 줄도 모르고 병을 악화시킬 수 있었던 상황이다. 대구 장애인지역공동체 조민제 사무국장은 29일 "대구시와 보건소에 확인한 결과, 발달장애인인 A씨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라고 밝혔다.

조 사무국장은 "대기 확진자가 600명을 넘어서 지금 병상자체가 없다고 한다. 집에서 격리되어 증상을 살피며 보건소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지금의 방역과 의료체계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라고 설명했다.

조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생활지원이 가능한 의료지원체계가 절실하다. 청도대남병원의 상황처럼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바로 장애인이다"라고 말했다.

29일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성명을 내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장애인을 위한 확실한 코로나19 대응체계를 발표해달라"며 "현재 발생한 장애인 확진자라도 긴급히 병원으로 후송해 보호해달라"라고 요구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 대책 '소용없어'

한 장애인센터는 지난 23일 확진자가 방문한 뒤로 센터를 폐쇄했다. 그 다음 날 해당 시간에 센터에 있던 직원과 이곳을 방문한 모든 사람은 자가격리에 돌입했다. 이들 중 일부가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들이다. 홀로 사는 장애인 직원들은 자가격리에 들어가면서 활동지원사 역할을 하는 비장애인 직원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비장애인 직원을 대체할 수 있는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전근배씨는 "자가격리 상태의 장애인에게 투입될 활동지원 인력을 구하려고 노력해 봤는데 위험을 감수하는 데에 대한 별도의 근무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전씨는 "자가격리 상태의 장애인이 대구에서 처음 생기다 보니 정부에서 내리는 지침이 상당히 허술하다는 걸 알게 됐다. 당장 장애인 확진자가 나오면 대책이 없기에 답답하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1일 보건복지부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유지를 위한 개별지침'에는 '장애인이 관할 보건소를 통해 자가격리대상자로 통보받은 경우 시·도별 설치된 격리시설로 이동하여 돌봄을 원칙으로 함', '각 격리 시설에는 돌봄서비스 가능한 의료인, 사회복지사, 활동지원사 등 배치'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장애인센터에서 일하는 관계자들은 이 지침이 소용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씨는 "현재 대구에는 자가격리 시설로 운영되는 곳이 없다. 이 상황에서 장애인 자가격리자가 나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대구시에 문의했더니 '운영 계획을 짜는 중'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보건복지부에서는 격리시설을 지정했으니 지자체에 문의하라 하고, 지자체에서는 격리시설의 경우 장애인이 아니라 주소지가 특정되지 않은 노숙자나 외국인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더라. 이 지침을 장애인에 대한 대책으로 보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대구 장애인지역공동체 조민제 사무국장은 "비장애인의 경우 물품 지원만 되면 생활이 되지만, 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격리시설에 들어가더라도 생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센터들은 매일 같이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면서 증상을 확인하고 있다.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의 허미연 사무국장은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분들의 경우 돌봄 공백이 생겨서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전화를 했던 한 어머니는 자녀를 데리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더라. 이 상황이 길어진다면 (장애인들이나 가족의 경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장애인 #대구 #활동지원서비스 #격리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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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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