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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선 알기 어려운 놀랍고 흥미로운 중세사

[서평] 우리가 몰랐던 중세 이야기 '낯선 중세'

등록 2020.03.04 17:37수정 2020.03.0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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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라는 단어는 많은 것을 떠오르게 한다. 말을 탄 기사가 중무장한 모습부터 밭을 가는 농노의 모습, 교황과 주교들, 성장하는 도시의 부르주아들이 모두 중세와 관련된 요소다.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싸우는 기사의 영웅담과 르네상스 도시의 예술은 중세의 밝은 부분이다.

한편, 중세하면 부정적인 요소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중세에 사라진 기술, 처참한 삶을 사는 농노들은 중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요소다. 중세를 암흑기로 보고 역사의 혼란기로 보는 시선도 있다. 이는 중세의 어두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둡거나 밝은 중세가 아닌 중세의 역사도 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친숙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가 있었다.
 

낯선중세 ⓒ 문학과지성사

 
'낯선 중세'는 중세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주제에 맞추어 분류된 서술, 내용의 질과 구체적인 설명을 생각해 볼 때 그야말로 중세사의 교과서로 쓸 만한 책이다. 중세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꼭 이 책을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양 수준에서 중세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알차게 담고 있다.

저자인 유희수 교수는 서양중세사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서양 중세사 강의를 공저한 중세사 전문가다. 저자는 중세의 낯선 모습을 보고 우리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세계를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중세의 낯선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1970년 이후에 연구된 역사인류학적 성과를 많이 반영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쌍두마차의 사회는 게르만의 이동과 교회의 발달을, 2부 지배 문화와 주변 집단은 성직자와 기사, 농민의 삶을 다룬다. 책의 1부와 2부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어렴풋이 배웠던 중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한다. 교황은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권위를 유지했는지, 봉건 왕정은 어떻게 성립되고 기독교화 되었는지 등이 설명되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교황은 중앙집권적 지배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이를 만회하고 동로마 황제에 맞서기 위해서 교황은 세속 파트너를 찾았고, 그 상대가 바로 프랑크 왕국이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권과 속권이 제휴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왕과 갈등하고 때로는 제휴하면서 중세사를 이끌어 나갔다.

프랑스의 주교 아달베롱은 세상은 기도하는 자, 싸우는 자, 일하는 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을 충실히 수행할 때 사회가 조화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성직자는 신을 위해 기도했고, 기사는 무거운 사슬 갑옷을 입고 싸웠다. 농민은 노예보다는 덜 잔인한 예속 상태에 속했으며 영주에게 부역과 공납의 의무를 졌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인상깊은 부분은 3부 일상적 삶의 세계와 4부 신앙과 상상의 세계였다. 3부와 4부는 많은 독자들에게 낯선 중세의 모습을 소개한다. 이 부분에서 소개되는 중세의 모습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중세의 사람들이 살았던 농가는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에 이엉을 얹은 집에서 사람과 가축이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살았다고 한다. 화덕과 침대가 딸린 인간의 공간과 가축의 공간이 한 곳에 있어 악취가 나고 빈대와 벼룩이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화덕에서 나오는 온기가 기본적인 난방이었고, 연통의 형태를 갖춘 굴뚝은 귀족과 부르주아나 집에 두는 것이었다. 농가는 굴뚝을 천장에 구멍만 내는 형태로 두어서 실내는 연기가 자욱했다고 한다. 창문도 사치품에 속했기 때문에 주택 내부는 그을음이 많았다고 하니,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주택에서 살아간 것이다.
 
중세 때는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사는 피붙이뿐만 아니라 하인과 장기 유숙하는 손님까지도 가족이었듯이, 집안에서 기르는 말, 소, 돼지, 개는 물론이고 집 주변에서 사는 여우, 족제비, 쥐, 까치도 가축이었다. -294P
 
서민만 오늘날의 우리와 달리 산 것은 아니었다. 중세 성직자들이 외국이나 다른 지방에 가서 성자의 유골을 훔치고, 자신의 동네에 모셔서 주민들이 기뻐했다는 이야기는 보는 사람을 황당하게 만든다. 물건을 훔치기 위해서 전염병으로 피신한 틈을 노리는 등 용의주도하게 절도가 이루어졌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온라인 게임의 무기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가져가도 되는 것인가 생각이 들지만, 의외로 당시의 중세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이런 행위를 용인했다고 한다. 성인의 유골이 기적을 일으켜서 주민과 지역을 안전하게 보장해줄 것이라는 믿음, 순례자들을 끌어들여 재정적 도움을 받겠다는 현실적인 이권이 이런 행위를 가능하게 했다.
 
역설적인 것은 구입하거나 증여받은 유골보다 훔친 유골을 더 높이 쳤다는 점이다. 합법적인 입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도둑질하는 그 자체가 유골의 가치를 높여주었다. -394P
 
이런 절도 중에는 수도원의 수도사에 의한 것도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성인의 유골을 보유하고 있으면 더 많은 순례자를 모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물론 교회의 건축비를 조달할 목적으로 훔치고, 교회를 현양하고 인근 교회의 명성을 압도하기 위해 훔치는 등 그밖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교과서 속 중세사에선 알기 어려운 놀랍고 흥미로운 역사다.

저자는 책을 정리하면서 다수의 한국인들이 산업화 이전에 살고 있던 시간과 공간을 지워버렸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가 삶의 여러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중세가 단순한 시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단순히 중세를 근대 이전의 미개한 시대, 기사가 적과 싸우고, 농노는 땅을 갈던 시대라고 이해한다면 중세의 많은 부분을 놓치는 것이다. 중세는 간단하게 이해하기에는 복잡하고, 짧게 파악하기에는 긴 시대였다.

낯선 중세 - 잃어버린 세계, 그 다채로운 풍경을 거닐다

유희수 (지은이),
문학과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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