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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청와대 비난 담화' 낸 북한, 왜 김여정이었을까

[이슈] 사실상 북한의 2인자... "남한 향한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 것" 평가도

등록 2020.03.04 18:51수정 2020.03.0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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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장으로 이동하는 남-북 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8일 오후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은 김여정 부부장.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작심한 듯 청와대를 비난했다. 그는 지난 3일 오후 10시가 넘어 발표한 담화에서 '저능한' '경악' '비논리적' '바보' '짓거리'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청와대가 2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화력전투 훈련)에 유감을 표하자 북한이 이에 응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이 공식 집권한 이후 김여정 제1부부장이 직접 담화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0월 북미 스톡홀름 실무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이 열 차례 이상 담화를 발표했을 때도 김 제1부부장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현재 남한을 향한 북한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평이 나온다.

단거리 발사체에 유감 표한 청와대... 북한 "남측도 군사연습 즐기는 걸로 알아"

김 제1부부장의 담화 대부분은 청와대를 향한 비난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남쪽 청와대에서 강한 유감이니, 중단 요구니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 우리로서는 실로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김여정의 담화에는 지난 2일 정부가 긴급관계부처 장관회의를 개최한 후 입장을 표명한 것에 불만이 담겨 있다. '북한의 연례적인 군사훈련을 왜 남측 정부에서 간섭하냐'는 비난이다. 2일 회의가 끝난 후 청와대는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와 합동타격훈련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 제1부부장은 이를 '주제 넘는 실없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이어 "나는 남측도 합동군사연습을 꽤 즐기는 편으로 알고 있으며 첨단 군사 장비를 사 오는데도 열을 올리는 등 꼴 보기 싫은 놀음은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3월 예정됐던 한미 합동군사연습 연기도 "남조선에 창궐하는 신형코로나비루스(바이러스)가 연기시켰지 평화나 화해와 협력에 관심도 없는 청와대 주인들 결심이 아니다"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사실 청와대의 행태가 세 살 난 아이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강도적이고 억지부리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꼭 미국을 빼닮은 꼴"이라며 "어떻게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 하는 짓거리 하나하나가 다 그렇게도 구체적이고 완벽하게 바보스러울까"라고 청와대를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판은 삼갔다. 북한 나름대로 '수위 조절'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김여정이) 문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대통령까지) 직접 물어뜯지는 않은 셈"이라고 풀이했다.

왜 김여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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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제1부부장, 조화 전달 ⓒ 통일부

 
청와대를 정조준해 비판한 담화의 주체는 왜 김여정 제1부부장이었을까.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으로 북한의 '백두혈통', 즉 '로열패밀리'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김 위원장의 뜻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는 2018년에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는 '대남메신저' 역할을 수행해 왔다. 공식 직함은 제1부부장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그림자가 돼 국정운영 전반을 보좌해 사실상 비서실장의 역할을 했다.

2018년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튼 것 역시 김 제1부부장이었다. 2018년 2월 10일 그는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 초청 친서가 담긴 파란 서류철을 전달했다. 그리고는 "제가 특사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전달한 내용이 "김정은 위원장의 뜻"이라고 했다는 말도 나왔다.

김 제1부부장은 그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첫 남북정상회담에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함께 배석했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김 위원장 곁을 지켰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2019년에도 김 제1부부장은 필요한 순간에 '대남 메신저'가 됐다. 그는 6월 12일 오후 검은 옷을 차려입고 판문점 통일각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에게 고 이희호 이사장을 추모하는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조화와 조의문을 전달했다.

이런 김 제1부부장이 발표한 담화는 여느 담화와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가 드러낸 불만이 곧 김정은 위원장의 불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남북관계에서 존재감·상징성·말의 무게감이 가장 큰 북측 인사는 당연히 김여정"이라며 "그는 당 전체의 실세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밝힌 비난은 김정은의 뜻과 일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을 제외하고 남북관계에서 상징성 있는 인물인 '김여정 제1부부장'을 통해 남측을 향한 불만을 고스란히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제1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한 시간도 주목할 만하다. 담화는 3일 오후 10시께 나왔다. 미국 워싱턴 D.C.의 시계가 오전 9시를 가리켰을 때다. 전문가들이 담화에 '대미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보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김 제1부부장은 담화 말미 '겁 먹은 개'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 표현은 북미 정상이 막말을 주고받았던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지칭하자 김 위원장은 "겁 먹은 개가 더 요란스레 짖어대는 법"이라고 맞불을 놓은 적이 있다.

최용환 실장은 "한반도 프로세스는 남북미를 떨어뜨려 볼 수 없다, 한미연합훈련이나 무기 반입 등은 모두 한미가 관계된 일"이라며 "미국도 새겨 들으라는 뜻이 포함됐을 것"이라고 짚었다. 홍민 실장 역시 "미국에 대해 직접적인 불만을 표출하기보다는 한국을 흔들어 한미 모두에게 불만이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정부는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 별다른 입장발표를 하지 않았다. 남북관계의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4일 정례브리핑에서 "김 부부장 담화와 관련해 따로 언급할 사항은 없다"라며 "다만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하여 남북이 상호 존중하며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김여정 #북한 #문재인 대통령 #남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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