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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코로나'? 그들에게도 기본소득이 지급되어야 한다

[동네의사의 기본소득 ③] 진정한 포용사회만이 감염병 확산 막을 수 있다

등록 2020.03.10 12:44수정 2020.04.2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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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와 기본소득'이 매주 여러분을 찾아 갑니다. '동네의사'는 과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고, 한국 최초의 에볼라 의사이기도 합니다. '동네의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풀어봅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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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주최 10만 수료식 장면. ⓒ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유튜브 화면

   
어쩌다 마스크를 안 쓰고 지하철이라도 타면, 마치 헐벗은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주변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네 의원에 오시는 어르신들 가운데 마스크를 쓰지 않는 분들이 종종 있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환자들인 그 어르신들이야말로 의료기관에 오실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한다. 필자가 놀라서 물었다.

"아이고, 어르신! 마스크를 안 쓰고 병원에 오시면 어떡해요?"
"어허, 깜빡했네. 미안하네."


눈만 뜨면 코로나 뉴스에 재난 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판국에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지만, 사실이다. 어르신 중에는 마스크를 코나 입에만 걸치신 분도 꽤 많다.

다른 어르신이 진료실에 들어섰다. 어제부터 기침이 살살 나는데 코로나가 아닌지 걱정되신단다. 감기 증상이 있으면 먼저 며칠 집에서 쉬라는 질병관리본부의 권고는 안중에 없으신 듯했다. 그리고 갑자기 핏대를 세우며 덧붙인다.

"그놈의 신천지 것들 싹 다 없애 버려야 돼. 그것들 때문에 온 국민이 무슨 고생이야?"

신천지 강제 해체 청원


청와대 홈페이지에서는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의 강제 해체(해산)' 청원이 진행중인데, 3월 9일 현재 125만 명이 넘었다. 이 청원의 카테고리는 '인권/성평등'이다. 서울시는 며칠 전 이만희 신천지교 총회장 및 12개 지파 지파장들을 살인죄, 상해죄 및 감염병 예방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만희 총회장으로부터 코로나19 검체를 강제로 채취하기 위해 경찰과 소방병력까지 동원해 가평 신천지 연수원에 직접 들어갔다.

온라인 게시판은 신천지에 대한 성토와 고발이 넘쳐난다. 신천지의 은밀한 포교행위, 교주에 대한 신격화, 이단적 교리, 엄격한 신도 관리 등이 모두 도마 위에 올랐다. 심지어 '신천지에 내란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천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만들지 않았다'는 신천지 대변인의 발언은 오히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너희들이 만들지 않았을지라도, 코로나19 감염을 숨기고 거짓말을 했다." 코로나19는 이제 '우한폐렴'에 더해 '신천지 코로나'라는 혐오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동성애 질환'의 기시감

1981년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몇몇 병원에 동성애자 남성 다섯 명이 각각 내원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은 쉽게 걸리지 않는 폐포자충 폐렴을 비롯한 여러 기회감염(신체의 기능이 저하되어 일어나는 감염)에 걸렸고, 면역력이 현저히 약해진 상태였다. 병의 원인을 몰랐던 당시에, 동성애자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감염병이라는 뜻으로 동성애 질환(Gay-Related Immune Deficiency; GRID)으로 부르기도 했다. 치료제가 없었기 때문에 환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 병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리고 공포는 동성애 혐오를 낳았다. 바로 HIV/AIDS 이야기이다.

이 병의 원인은 동성애가 아니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이다. 동성끼리 성관계를 갖는다고 바이러스가 생겨나지 않는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가 HIV 감염의 주 경로 중 하나이다. 2016년 유엔에이즈계획(UNAIDS) 보고에 따르면, 세계 HIV 감염자의 단지 8%만이 남성 동성애자이다. 더구나 HIV/AIDS는 더 이상 불치병도 아니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을 받는 환자들의 평균 수명은 이제 보통 사람들과 거의 비슷하다.

안타깝게도 HIV/AIDS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의학의 발전에 한참 뒤처졌다. 해마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때면, '동성애=에이즈'라는 피켓을 든 종교인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115개국에 거주하는 3340명의 남성 동성애자를 조사한 2014년 연구 결과를 보자. 동성애를 처벌하는 나라에 거주하거나 높은 수준의 성적 낙인(Sexual stigma)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콘돔을 사용하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낮고, HIV 검사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졌다. (Arreola, S., et al. (2014). Sexual Stigma, Criminalization, Investment, and Access to HIV Services Among Men Who Have Sex with Men Worldwide. AIDS and Behavior, 19(2), 227-234.) 혐오가 커질수록 사람은 감추고 숨게 된다. 그리고 질병은 더욱 퍼진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한때 즐겨보았던 <닥터 하우스>에서 까칠한 의사 하우스는 환자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이는 하우스의 유명한 대사 중 하나이다. 하지만 환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는 아니다. 그는 환자의 거짓말에서 배운다. 환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짓말을 하거나,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의학이나 방역에서 100%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과 이를 둘러싼 환경을 완전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역에는 약한 고리가 항상 있으며, 그곳을 통해 전염병은 확산한다. 신천지 신도들은 수천 명이 비좁은 교회에 바짝 붙어 앉아 예배를 드린다. 가벼운 질병쯤은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서로 압박하기도 한다. 은밀한 포교 방식 탓이겠지만, 확진자의 동선을 투명하게 밝히지도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에는 신천지 교회가 약한 고리였던 셈이다.

지난 2월 20일 올리버 모건 세계보건기구 보건긴급정보 및 위험평가 국장은 "(한국의 발병 확대가) 몇몇 개별적인 집단에서 유래했다"라며 "역학적으로 봤을 때 세계적으로 특별한 변화를 알리는 신호는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필자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누구를 비난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배울까?'이다.

방역의 약한 고리, 튼튼한 고리로 여러 겹 둘러싸자
 

코로나19 사태 관련 재난기본소득 지급 제안 기자회견 민생당 박주현 의원과 기본소득당, 미래당 등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한시적 기본소득 지급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정상훈


코로나19와 신천지 그리고 기본소득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기본소득에 대한 가장 흔하고 강력한 반대논리는 '일하지 않는 자들에게 왜 소득을 주냐?'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세금으로 '쓸모없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운동은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기본소득을 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모두가 나름의 고유한 '쓸모'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다수의 눈에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말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운동은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들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포용하자고 주장한다. 당연히 신천지 신도들에게도 기본소득이 지급되어야 한다. 그들이 비록 가족과 생계를 내팽개치고 비밀스러운 종교 활동에만 온 힘을 다한다고 해도 그렇다.

우리는 코로나19에서 무엇을 배울까? 방역에 약한 고리가 있다면, 튼튼한 고리로 여러 겹 둘러싸면 될 것이다. 코로나 공포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이 쉬면서 자신과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하는 한시적 기본소득도 그 방법이다. 인간 사회에는 언제나 예외가 존재해 왔으며, 예외를 허용하는 사회일수록 성숙하다. 일하지 않는 20% 개미처럼 말이다.
 
일하지 않는 개미

개미 집단에는 항상 20~30%의 일하지 않는 개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학계에 알려져 있다. 그 비밀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대학 하세가와 에이스케(長谷川英祐) 교수(진화생물학) 연구팀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전체가 모두 열심히 일하는 개미로 구성된 집단은 구성원 모두가 일제히 피로해져, 집단의 멸망이 빨라진다. 반면 일하지 않는 개미가 있는 집단은 더 오래 존속했다. 일하는 개미가 피로해졌을 때, 놀던 개미가 대신 일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세가와 교수는 "일하지 않는 개미가 항상 있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집단의 존속에 꼭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조직을 단기적인 효율이나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상훈씨는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코로나19 #기본소득 #신천지 #HIV/AIDS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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