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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까지 할 필요 있냐'는 댓글에 피해자 아빠의 답변

[시끌법정 ③] 법원과 법 감정의 괴리, 왜 불법 촬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까

등록 2020.03.24 08:27수정 2020.03.2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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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재판'이 진행될 수도 있는 법정 안팎의 내밀한 모습을 '시끌법정'에서 보여드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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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났던 불법촬영 피해자가 복용하고 있는 약. ⓒ 소중한

 
얼마 전 집을 나서는데 골목길에 웬 남성 한 명이 절을 하는 모습으로 엎드려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뭐야?' 하고 지나갔을 텐데, 감염병이 돌던 시기라 온갖 생각이 다 들더군요. 혹시 코로나19 때문에 쓰러졌나? 다가가서 괜찮은지 물어봐야 하나? 그러다 나한테 옮으면 어쩌지?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후 자동차 경적이 울리자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자리를 떠났습니다. 행색은 좀 초라했지만 건강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죠. 저를 비롯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했으나, 몇몇 주민들은 그가 떠나는 중에도 공포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공포는 대개 주관적입니다. 내겐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 남에겐 아닐 수 있고, 내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남에겐 공포일 수 있죠. 또한 어제는 공포가 아니었던 게 오늘은 공포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공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등학교 소풍 때, 흔들거리는 놀이기구 '바이킹' 앞에서 주저하는 제 팔을 잡아끌며 "이게 뭐가 무섭냐"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지금은 별 거리낌 없이 바이킹에 오를 수 있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바이킹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이게 뭐가 무섭냐"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각자가 느끼는 공포가 다르다는 걸 바이킹으로 몸소 느껴봤으니까요.

공포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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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신부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불법촬영 사건 2심 선고공판이 지난 2월 12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진행됐다. ⓒ 소중한

 
지난 2월, 광주고등법원을 찾았습니다. 자신이 일하던 병원 탈의실과 마트, 면세점, 호텔 등 공공장소에서 수십 차례 여성들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주아무개(40)씨의 2심 선고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주씨에게 징역 1년, 40시간 성폭력 치유프로그램 이수, 3년 신상정보 공개·고지, 취업제한 3년을 선고했습니다. 1심에 비해 형량이 2개월 늘었고, 3년 신상정보 공개·고지가 추가됐습니다. 수의를 입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주씨는 교도관에 이끌려 법정을 떠났습니다. 

이날 방청석엔 피해자의 부모도 와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습니다. 주씨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던 피해자는 결혼을 앞두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선고 결과를 들은 부모는 마음을 추스르며 법정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주씨의) 지인"이라고 밝힌 한 남성이 불만을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2심 재판부의 형량이 지나치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는 피해자 부모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향해 더욱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버지는 울분을 토하며 화를 참지 못했고, 고함을 내지르던 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20분쯤 흘렀을까요. 아버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슴 속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저도 솔직히 예전엔 불법 촬영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당사자가 아니었으니까요. (피해 사실을 안 뒤에도) 딸에게 이겨내라고만 했어요. 딸은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닌데... 제가 잘 안 보려고 하는데 가끔 (딸 관련 기사의) 댓글을 봐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로 자살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고 그러더라고요. 불법 촬영은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살인 행위예요."

이 재판 외에도 여러 불법 촬영 사건을 지켜본 김미리내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SNS 등 공유기술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불법 촬영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인지할 경우 엄청난 공포에 압도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가해자의 과도한 형량을 이야기하는 주씨의 지인과 '자살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고 말하는 누리꾼을 보며 다시 한번 공포의 속성을 떠올려봅니다. 내겐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 남에겐 아닐 수 있고, 내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남에겐 공포일 수 있습니다. 또한 어젠 공포가 아니었던 게 오늘은 공포로 느껴질 수도 있죠.

뉴스 밖 법정의 불법 촬영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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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업소 불법촬영·생중계 사건’이 터진 2019년 3월, 경상남도아동·여성안전지역연대와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는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엄중처벌’과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 윤성효

 
우리 사회는 불법 촬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법무부 '2020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2013년 412건이던 불법 촬영 처벌 건수는 2018년에 2388건으로 약 6배 늘었습니다. 또 지난 20년간 누적된 성범죄 재범자 2901명의 범죄 유형을 분석해봤더니, 첫 범죄가 불법 촬영이었던 428명 중 321명이 다시 똑같은 범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명 연예인은 물론 뉴스 앵커와 판사까지도 불법 촬영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여성의 공포에 대한 공감대가 너무 낮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몰카'란 이름으로 너무도 쉽게 저질러지는 이 행동은 엄연한 범죄이자 성폭력입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①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제1항에 따른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반포ㆍ판매ㆍ임대ㆍ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 또는 제1항의 촬영이 촬영 당시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사후에 그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반포 등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영리를 목적으로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중략)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제2항의 죄를 범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불법 촬영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그 촬영물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엄중히 다뤄져야 합니다. 나와 내 주변 사람이 언제든 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유명인의 범죄나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안이야 종종 뉴스에 나오지만, 오늘도 뉴스 밖 법정에선 수도 없는 불법 촬영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범죄자의 촬영물이 수백, 수천 건에 이를 경우 자신이 피해를 본 것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피해자도 많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떡하니 적혀 있는데도, 불법 촬영은 왜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될까요. 우리 사회 곳곳에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저는 법원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법원의 문제를 중심으로 그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렵지 않은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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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로비. ⓒ 소중한

 
선고재판에 들어가면 길든 짧든 판사의 판결 요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판사마다 혹은 여론집중도에 따라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어쨌든 선고를 내리는 판사는 피고인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먼저 유·무죄 여부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설명하고, 이어 유죄로 판단할 경우 어떤 형벌을 내릴지(양형) 알려줍니다.

불법 촬영 재판에 대한 지적도 유·무죄 판단 부분과 양형 부분을 나눠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법원의 유·무죄 판단에 대한 논란은 심심찮게 뉴스를 장식하는 소재입니다. 앞서 소개한 법 조항에 나와 있듯 불법 촬영 처벌 대상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입니다. 그런데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원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 간혹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지난해 11월 류영재 대구지방법원 판사가 <한겨레>에 쓴 '맨발 몰카는 성범죄에 해당할까'란 제목의 칼럼엔 이런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칼럼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맨발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라고 규정하는 데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피고인이 그 사진을 맨발 페티시(fetish) 인터넷 카페에 올린 상황이라면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해 10월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은 남성이 1심과 달리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2심 재판부는 "레깅스는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몰래 촬영이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유발한 것은 분명하지만 성적 수치심을 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죠. 앞서 소개한 류 판사의 칼럼은 이렇게 끝납니다.

"모두가 '무단촬영 당하여 타인의 성적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소비될 위험'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에 도달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묻건대, 맨발 몰카는 성범죄인가."

답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제가 더 문제 삼고 싶은 건 양형 부분입니다. 이는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시끌법정①] 음주운전 재판서 생긴 일 http://omn.kr/1mswz
[시끌법정②] 죄명도 후덜덜 범죄단체 재판 http://omn.kr/1ms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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