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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켜는 유재석을 보고 떠오른 이 사람 "사는 게 뭔지..."

[리뷰]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아름다운 하모니의 예술

20.03.09 11:46최종업데이트20.03.0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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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방영한 유재석의 오케스트라 도전기를 보고, 오케스트라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놀면 뭐하니?> 유케스트라 특집에서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은 전체 리허설 때 혹시나 자신의 실수로 하모니가 무너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유재석의 모습이었다.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 제작진들의 계략으로 하프에 도전한지 얼마 되지 않는 초보 연주자라 그 부담감이 더 했겠지만, 연주에 능숙한 프로 연주자 또한 자신의 실수로 합주가 망치지 않을까 하는 긴장은 늘 도사리고 있을 터. 아무튼 오케스트라의 하모니가 유독 웅장하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러 악기들이 각자의 소리를 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팀 워크'에 있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지이프로덕션 , 윤스코퍼레이션

 
<놀면 뭐하니?> 유케스트라 특집을 거론한 것은, 최근 재미있게 본 한 영화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지난 5일 개봉한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10년 가까이 홍상수 감독 영화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여성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이찬실(강말금 분)은 영화 감독 지망생,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영화 프로듀서를 타의적으로 그만둔 실직 영화인이다. 

홍상수 영화처럼 소규모 예술영화 프로듀서로 인정받아온 찬실이는 그녀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던 감독의 급사로 돌연 백수가 된다. 그간 프로듀서와 배우 이상으로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소피(윤승아 분)의 배려로 그녀의 가사도우미로 취직한 찬실이는 영화인으로서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어렵다"는 야멸찬 반응 뿐이다. 

한 때 찬실이를 두고 "한국영화의 보배, 한보"라고 치켜 세웠던 제작자(최화정 분)는 프로듀서 취업을 부탁하는 찬실이에게 "지 감독님 영화는 유일무이한 예술영화야. 막말로 찬실이 같은 PD가 없어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라면서 그간 찬실이의 경력을 완전히 평가절하 해버린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지이프로덕션 , 윤스코퍼레이션

 
흔히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고 한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인들이 주장한 작가주의에 기인한다. 영화는 감독이 창작한 예술작품이라는 인식 덕분에, 지금도 영화에서 주목받는 인물은 자연스레 감독이다. 대규모 상업영화 같은 경우에는 제작자나 투자, 배급사가 기획한 영화가 늘어나고 있고 강력해진 그들의 입김 때문에 감독이 예전만큼 힘을 못쓴다고 하지만, 여전히 감독은 영화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영화 제작을 위해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을 지휘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극중 지 감독의 모티브가 된 홍상수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영상언어를 구현하는 감독은 그(녀)의 작품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구축한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고 할지라도 그 혼자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려면 감독 외에도 각본과 배우가 있어야 하고 그 배우의 연기를 카메라로 담아내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감독이 연출에만 전념할 수 있게 예산, 촬영 현장 등을 관리하는 프로듀서(PD)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극중 독보적인 예술영화로 평가받는 지 감독의 영화 또한 찬실이와 같은 프로듀서, 스태프들의 '공조'가 있었기에 만들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면서 동시에 수많은 개별 예술가, 전문가들이 함께 만든 종합 예술이다. 

지 감독과 함께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던 찬실이는 "그 영화는 오직 지 감독만의 예술작품", "찬실이 같은 PD가 없어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영화"로 단정짓는 사람들에 의해 그간 영화 제작을 위해 고군분투 했던 노력들을 송두리째 부정 당하게 된다. 더 이상 프로듀서로 영화 일을 할 수 없게된 찬실이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감독이 되기로 결심한다. 

허나 오랫동안 시나리오에 손을 놓고 있었던 찬실이가 하루 아침에 좋은 작품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다. 다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면서 찬실이는 짝사랑의 쓴맛도 경험해보고 영화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과 마주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오랫동안 믿고 따르던 소피와 후배 영화인들은 물론, 주인집 할머니(윤여정 분)과 장국영이라고 주장하는 귀신(김영민 분)의 응원을 받으며 차근차근 감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지이프로덕션 , 윤스코퍼레이션

 
실직 이후 인생의 희노애락, 쓴맛 단맛을 모두 맛보고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에 들어간 찬실이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세상은 자기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찬실이는 외친다. "사는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어렴풋이 알게된 찬실이는 그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동행에 기꺼이 참여한다. 물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갈 하모니를 지휘하는 이는 찬실이다. 그녀 혼자만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아름다운 합주를 만들어가고 싶어하는 이찬실(김초희)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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