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옥중편지에 "천금 말씀"이라니... 총선이 박근혜의 것인가

[게릴라칼럼] 편지 한 장에 들썩이는 미래통합당... 새누리당으로 돌아가자?

등록 2020.03.09 19:17수정 2020.03.09 19:17
30
원고료로 응원
a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박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을 공개하고 있다. ⓒ 남소연

 "천금 같은 말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에 대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평가다. 보수의 적자를 자처하던 자유한국당이 새로운보수당, 전진당과 합쳐 미래통합당으로 출범했다. 하지만 소위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자유공화당과의 통합은 남은 숙제 중 하나였다. 

그런 숙제를 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그친 모양새가 됐다. 황교안 통합당 대표 처지에서는 '천금 같은 말씀'이고, 날아오를 용의 눈을 그려준 고마운 일일 법도 하다. 화룡점정의 의식이 끝났으니, 이제 총선과 정권 탈환을 위해 비상하는 일만 남았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가 용의 여의주가 될지, 감추고 싶은 과거의 소환장이 될지 섣부르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는 자연스레 잊혀가던 '새누리당'을 떠올리게 했다. 

박근혜 옥중편지, 새누리당을 소환했다
 
a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에 대해 “역사적 터닝포인트가 돼야 할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전해진 천금 같은 말씀이라 생각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 유성호

 
전두환과 같이 총칼로 정권을 잡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야당을 끌어들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피로 얼룩진 군사정권 흔적 지우기였고, 여소야대를 한 번에 뒤집는 폭거였다.

합당 세력들은 '구국의 결단'이라면서 당위성을 역설했지만, 국민들은 정권교체의 열망을 뒤엎은 야합이라면서 거리로 몰려나왔다. "백담사 X머리 청문회 오리발 울화통 / X가리 종필이 영삼 보수대연합 지랄통 / 아~ 하아~ 오공이 육공 육공이 삼공..." 대학가에서는 3당 야합의 주역인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을 비판하는 <1노2김가>가 널리 불렸다. 30년 전인 1990년의 일이다.

4.15 총선을 앞두고 보수정당의 당명 바꾸기와 연이은 합당도 '야합'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국민의 요구는 과거를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었지, 당명을 바꿔 탄핵의 강을 건너라는 꼼수가 아니었다. 또 합당 뒤 의례적인 명분으로 등장하는 '반문재인 빅텐트'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정당이 내보여야 할 비전이나 정책은 오간 데 없고, 현 정권에 대한 반대와 증오만 가득할 뿐이다. '탄핵 당했으니 우리도 복수하자'고 만들어지는 정당은 30년 전 민자당 탄생과 다를 바 없는 야합의 산물이다.


박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로 굳이 통합당과 새누리당을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새로 만들어진 통합당은 과거의 새누리당이고 자유한국당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거푸 당명을 바꾼 탓도 있지만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간의 차이를 찾기 어렵다.

안보·경제의 위기감을 키우고 반목·혐오로 정치 기득권을 지키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새누리당 당시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무능은, 현재 '반문재인'에 모든 것을 거는 정당의 무능과 동일선상에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당 이름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인적 쇄신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물마시는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 미래통합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5일 국회에서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4.15 총선을 앞두고 마무리 단계에 있는 통합당의 공천 결과는 실망스럽다. 공천으로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 차별성을 보여주려 했다면 실패다. '통합당에도 참신한 인재들도 많고,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사 다수가 공천에서 탈락했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공천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맞다. 참신한 인재들도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을 거치면서 퇴출돼야 할 정치인이 여전히 중진으로 행세하고 당의 중심에 서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다. 참신한 인재로 영입된 초선의원들이 당의 거수기로 전락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패스트트랙 상정을 막고자 국회선진화법을 어기고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자유한국당. 대부분의 관련자들은 검찰 소환마저 거부했고 당 대표는 '제 목을 치라'고 응답했다. 패스트트랙 상정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를 막는 행위는 정당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궤변이다. 또, 백 번 양보해서 패스트트랙 자체에 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물리력을 앞세워 국회를 마비시킨 것에 면죄부를 줄 순 없다. 검찰의 뒤늦은 수사와 기소, 법의 판단은 더 오랜 시간을 요하겠지만 기소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총선 후보로 내세운 것은 통합당이라고 해서 한국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심재철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 탄핵 가능성' 발언은 '우리도 당했으니 원내 1당이 되면 되갚아주겠다'는 분풀이 다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향후 국회에서 걸핏하면 대통령 탄핵을 정치쟁점화 할 것이라는 예고와 같다. '문재인은 가해자, 박근혜는 피해자'라는 그들의 의식구조를 계속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20대 국회에서의 풍경이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입법에 물리력을 앞세우고, 삭발 단식과 거리집회로 응수할 개연성도 피하기 어렵다. '동물국회 사건'이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행위는 '정당방위'이기 때문이다. 5.18과 세월호, 비정규직 등을 향한 혐오와 막말도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속단할 수 없다. 막말로 논란이 된 인사들이 그 당에서 공천을 받았다.

총선은 선거권 없는 박근혜 몫이 아니다 
 
a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은 2017년 7월 17일 오전 37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호송차를 타고 도착한 뒤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선거는 정당간 주도권 싸움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잘못된 점을 고칠 수 있어야 정치 발전 역시 가능하다. 또, 부적격 정치인을 거르고 참신한 인재를 중하게 써야 하는 것이 정치를 국민에게 위임받는 정당의 사명이다.

통합당이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박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를 '천금 같은 말씀'으로 추켜세우는 건, 통합당의 미래는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이라는 반증이다. 선거권을 박탈당한 피의자의 '야당 중심으로 힘을 합쳐 달라' 당부에 군소 보수정당이 그동안의 갈등이 아예 없었다는 듯 미래통합당과 하나가 되기 위해 잰걸음을 하는 것, 이 또한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과 같은 새누리당으로의 귀환인 셈이다. 

감옥 속 글쓴이의 의도야 어찌됐든간에 편지는 과거 새누리당을 소환했다. 총선 정국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단보다 앞선 당위는 4.15 총선이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부활이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통합당은 박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를 내세워 보수세력을 통합하고 '어게인 새누리당'의 영화를 꿈꿀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옥중편지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숙제와 같다. 국민들이 사법·경제·사회 개혁의 열쇠를 국회에 맡기려면 의회개혁·정당개혁 정도는 국민 스스로가 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옥중편지의 값어치는 보수정당이 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매겨야 한다. 4.15 총선은 선거권 없는 박 전 대통령의 몫이 아니라 국민의 선택이어야 한다.
#박근혜 #옥중편지 #미래통합당 #4.15총선
댓글30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