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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물러가지 않아 날이 많이 춥습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들 ⑤] 아들, '꼰대같은 엄마'라서 미안해

등록 2020.03.16 17:31수정 2020.03.1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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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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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하고 싶었던 나는 몰래 주스를 만들기로 했다. 우물물에 오렌지색 크레용을 가루로 만들어 휘저었다. ⓒ unsplash

  
주스의 놀라움은 '색깔'에 있었다. 어떻게 무색의 물이 오렌지색으로 변할 수 있을까? 컵에 따르면 뽀글뽀글 기포도 발생했다. 그림책에서 오렌지를 배웠기에 나는 귤보다 오렌지를 먼저 알았다. 나중에 실제로 귤을 보았을 때도 오렌지로 착각했다. 오렌지같이 노랗게 생겼기 때문이다.

오렌지 색깔은 분명 노란색인데 가게에 한 종류밖에 없는 그 주스는 완전 주황색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오렌지 주스라고 했다. 모두 얼마나 마시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주스를 마시고 나면 입안도 빨갛게 변하나 궁금해하면서.

잘난 척하고 싶었던 나는 몰래 주스를 만들기로 했다. 우물물에 오렌지색 크레용을 가루로 만들어 휘저었다. 크레용 가루는 잘 안 녹았다. 억지로 비슷하게 만들고 비누 거품을 조금 넣었다. 거품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애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갔다. 애들은 "한 모금만" 하면서 침을 삼켰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가짜 주스를 입에 넣었다. 입안에 가득 찬 기름과 비누 냄새에 토할 것만 같았다. 크레용 가루는 비누와 엉켜 묘하게 입안에 달라붙었다. 그 주스를 삼켰는지 기억은 안 난다. 허겁지겁 집으로 뛰어 들어갔던 것만 생각난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소풍 때마다 우리 형제들에게 주스를 꼭 사주셨다. 걸어가야 하는 소풍에 주스병은 매우 조심스럽고 불편한 짐이었지만, 엄마가 사 온 주황색 주스병을 가방 속에 꼭 넣었다. 가슴이 울렁울렁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게다가 아버지는 담임선생님 것까지 챙겨주셨다. 점심시간에 재빨리 담임선생님께 주스를 드리고 돌아오면 친구들은 그때까지 김밥을 안 먹고 내가 주스를 한 입이라도 나눠줄까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귀하디귀했던 주스를 가져온 나는 모든 아이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빛에겐 항상 '꼰대'였던 엄마
 

나도 한빛, 한솔에게 똑같이 했다. 현장체험 학습을 갈 때 아버지처럼 선생님 것을 챙기게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너만 홀짝 사 먹지 말고 선생님께도 드려라"하면서 용돈을 더 챙겨 주었다. 그러나 한빛이 내 말을 안 들었다는 사실을 커서 알았다. '한빛한테 어떻게 생각하냐'고 의사를 물어봤어야 했는데 나는 너무 내 식대로 했다. 착한 한빛은 엄마가 확인할까 얼마나 불안했을까? 엄마 때문에 한빛은 지켜야 할 것이 많았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많이 피곤했을 것 같다.

'Latte is horse(나 때는 말이야)'처럼 나는 한빛에게 항상 꼰대였다. 한빛이 대학생이 되었어도, 취업했을 때도 꼰대처럼 잔소리를 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출근하는 환갑이 지난 아들에게 차 조심하라고 했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넘기면서도, 나는 한빛에게 똑같았다.

간곡하게 당부하는 엄마가 섭섭할까 봐 "네"하고 웃는 아들의 모습에, '어련히 잘 하려고. 내가 또 오버했네' 하며 후회했다. 다행히도 한빛은 엄마를 이해하고 인정해줬다.

한빛아, 엄마 때문에 많이 무거웠지?

학년말이면 아버지는 담임선생님께 선물을 드리게 했다. 달걀 한 꾸러미와 함께 감사 인사말을 준비하게 시켰다.

"동장군이 아직도 안 물러가서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세요. 저를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외우며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달걀을 드리고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동장군'이란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슨 장군이었는데? 이순신 장군인가? 아냐 유명하지 않은 장군이었는데? 계백 장군인가? 머리를 수없이 굴렸지만 도저히 모르겠다. 결국 나는 "이순신 장군이 아직 물러가지 않아"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무슨 말인지 아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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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은 군말없이 "네" 하고 고구마를 학교에 들고 갔다. 한빛이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다. ⓒ Pixabay

 
우리 가족은 한빛이 5, 6학년 때 주말농장을 했다. 고구마 농사가 잘되어 먹고도 남았다. 아침 시간을 쪼개 고구마튀김을 했다. 끓인 기름을 며칠씩 쓸 수 없어 가급적 많이 튀겼다. 금방 튀겨서 바삭바삭했다. 나누어 먹고 싶었다. 그래서 한빛에게 매일 조금씩 싸서 담임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다. 2교시 후에 잠깐 학년협의회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때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나도 교사지만 그 시간이면 이상하게 아이들 얘기를 하면서 커피가 마시고 싶다. 갓 튀긴 고구마가 얼마나 맛있겠는가? 대단한 간식이 될 거로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남자애가 꾸러미를 들고 가는 게 싫었을 텐데, 한빛은 군말 없이 "네" 하고 들고 갔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다.

대학 다닐 때 우연히 그 얘기가 나왔다.

"솔직히 가져가기 싫었어요. 애들이 선생님한테 뭐 갖다 바친다고 하니까."

'고구마튀김이라고 말하지'라고 하자 한빛은 "애들은 그런 거 몰라요. 아이들은 우리 집이 무척 부자라서 매일 담임선생님한테 무언가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더라고요"라고 답했다. 그때서야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럼 싫다고 말하지. 한빛아, 네 입장을 생각 못 했네. 미안해. 엄마는 몰랐어."

그러나 한빛이 싫다고 말했어도 나는 선생님들이 협의회할 때 작은 먹거리라도 있으면 마음이 따듯해질 거라고 설득했을 것이다. 내가 작은 일에 감격하고 행복하니까, 그 기준을 들이댔을 것이다. 그리고 한빛은 착했으니까 엄마의 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미안하다. 자기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으면서도 곳곳에서 나는 허점을 발견한다. 한빛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미안해, 고칠게. 이제 너도 싫으면 싫다고 말해. 엄마 절대 서운해하지 않을게"라고 말할 수가 없다. 한빛이 20대가 되면 많은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시간이 무한정 있을 줄 알았다. 어른으로 동등하게 얘기하고 싶었다. 한빛과 얘기하면 영화도 각색되고 드라마의 시시콜콜한 소품도 의미 있게 살아나리라 했다. 그러나 미뤘다.

한빛은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나의 억지일지라도 노력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 자신을 설득하고 또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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