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우울한 날 만난 화사한 봄꽃들

세상사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나는 꽃을 보며 희망을 봅니다

등록 2020.03.10 10:35수정 2020.03.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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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초 이파리가 하트 모양을 닮았다. 겨울동안 창가에 들여다 놓은 화분에서 덤으로 자라, 꽃을 피워주었다. ⓒ 김민수




완연한 봄이 왔건만, 선뜻 봄나들이 하는 것조차 사치인 듯하여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여기저기 피어나는 봄소식에 온 몸이 근질거리지만,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우니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초겨울 버려진 화분 하나를 얻어왔다. 서재 창가에 두고 푸른 이파리를 즐겼는데, 덤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사랑초 이파리가 돋아났다. 그리고 꽃줄기가 올라오는가 싶더니 연일 꽃을 피워댄다.

긴 겨울 끝에 선물처럼 피어난 꽃, '코로나19'로 마음이 무겁기만 할 즈음에 피어난 꽃이 고맙기만 하다.
 

덩굴해란초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지난 가을 뿌린 씨앗의 야리한 덩굴 줄기에서도 꽃이 피었다. ⓒ 김민수

 
지난해 여름, 인천에 나들이 갔다가 생소한 꽃을 만났다. 덩굴해란초라는 꽃이었다. 아마도 연안부두를 교두보로 삼아 이 땅에 들어온 외래종일 터이다. 꽃이 참 예뻤지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는 일이라 마음으로만 담아두었다.

그런데 지인이 가을, 덩굴해란초 씨앗이라며 좁쌀보다도 작은 검은 씨앗을 가져왔다. '설마 싹이 나겠어?' 하며 화분에 흩뿌려 두었는데 동장군의 기세가 거세지기 시작할 즈음에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꽃을 피었다.
 

회양목 꽃잎은 없이 꽃술이 피어나는 회양목, 나무 꽃 산수유보다도 먼저 피어나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꽃이다. ⓒ 김민수

   

냉이 아스팔트 틈 사이, 양지바른 곳에 푸른 잎을 내더니만 하얀 꽃도 피웠다. ⓒ 김민수

 
꽃을 피워도 봄꽃 주인공으로 불리지 못하는 꽃들이 있다. 회양목 같은 꽃은 그 중 하나다. 냉이꽃도 그런 류의 하나다. 아스팔트 틈을 뚫고 양지바른 벽에 기대어 생명을 이어가는 것도 대견스러운데, 하얀 꽃까지 앙증맞게 피우다니, 생명의 신비란 참으로 놀랍다.
 

동백 동백은 이제 내년을 기약하며 가고 있다. 저 푸짐한 꽃술 손님도 제대로 맞이하지 못했을 터인데 미련없이 간다. ⓒ 김민수

  
한 달 전, 화훼시장에서 꽃몽우리를 맺고 있는 동백 화분을 사왔다. 서울 노지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날이 따스하고 볕이 좋은 날은 밖에 두고, 추위가 몰아치는 날은 실내에 들여다 놓기를 반복했다.


남도처럼 화사한 꽃은 아니었지만, 동백은 풍성한 꽃술을 달고 피어났다. 이젠 밖에서 피어날 꽃봉우리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아쉽고 미안한 것은 그들을 찾아올 손님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하늘 어딘가에 동박새도 있겠지만, 동백꽃 몇 송이가 그들을 불러올 수는 없을 터이다.

화분은 그들의 감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 끝에 이젠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냥, 노지에서도 자랄 수 있는 것들로 만족하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
 

측백나무 열매는 보았건만, 꽃은 처음이다. 측백나무의 작은 꽃이 이토로 고운줄 오늘 처음 알았다. ⓒ 김민수

   

측백나무 꽃이 다닥닥 열렸다. 꽃의 길이는 겨우 2mm 정도, 처음엔 꽃인줄도 몰랐다. ⓒ 김민수

 
측백나무 꽃, 오늘 이 글을 쓰게 만든 주인공이다. 열매가 있으니 당연히 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꽃을 본적도 없었고, 더우기 요즘 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산수유보다도 더 먼저 피어난 것이다. 게다가 꽃술에는 마치 이슬방울 같은 것을 달고 있는데, 피톤치드향이 강하다.

"뭐, 저런 신기한 꽃이 있나?"

그참에 뜰을 어슬렁거리니 이미 수많은 꽃들이 피었다. 심지어는 아스팔트 틈 사이로 냉이꽃도 피었고, 민들레 싹도 나왔고, 방가지똥싹도 기세좋게 올라오고 있으며, 여름에 노란 꽃을 피울 애기똥풀에 이미 하얀 꽃을 송송이 달고 있는 쇠별꽃까지 온통 꽃동산이다.

세상은 '코로나19'로 어수선해서 봄이 오는지 어쩐지 가늠도할 수 없는데, 세상사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나는 봄이라니. 이렇게 성큼 다가온 봄을 맞이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희망의 현실을 기도한다.

어쩌겠는가? 꽃 타령이라도 하면서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씁쓸해진 마음을 달랜다. 
#사랑초 #측백나무 #동백 #냉이 #회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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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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