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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인 나는 그 말을, 웃으며 들을 수 없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들 ⑥] 한빛은 나에게 '백신'이었다

등록 2020.03.17 17:51수정 2020.03.1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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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기자말]
아버지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으셨다. 지극히 검소하셨지만 경제적이지 못했다고 할까? 본인이 필요하다 싶으면 아무런 고민 없이 하고 싶으신 대로 다 하셨다. 엄마가 속상해서 불평하면 이모는 '돈을 이상한데 쓰는 것도 아니고 평소 사치스럽지도 않으니 이해하라'며 의외로 아버지 편을 들었다.

하긴 아버지는 생활 자체가 '절약'이었다. 나도 아버지의 이런 면을 고스란히 닮은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약하는 생활이 불편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잘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한빛이 가고 나니 이 또한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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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란 주면서 기분이 좋으면 됐지, 받은 사람이 어디에 쓰는 것까지 참견하냐. 그럴 거면 다음부터는 선물하지 말아라." 지나고 나니 아버지의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 unspalsh

 
아버지는 생신이나 명절 때 자식들이 돈을 드리면 그 돈을 너무 쉽게 쓰셨다. 연금으로 생활하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힘들게 생활비를 쪼개 드린 나는 아버지가 그 귀한 돈을 당신을 위해 쓰셨으면 했다. 그런데 받은 그 자리에서 손자들한테 거금의 용돈을 주고 비싼 장난감을 서슴없이 사셨다.
  
순식간에 없어지는 게 아까워 툴툴대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물이란 주면서 기분이 좋으면 됐지, 받은 사람이 어디에 쓰는 것까지 참견하냐. 그럴 거면 다음부터는 선물하지 말아라."

지나고 나니 다 맞는 말이었다. 덕분에 사주고 싶었지만 비싸서 감히 살 수 없었던 한빛 장난감을 아버지가 해결해 주셨다.

엄마인 나는 그 말을 웃으며 들을 수 없었다

한빛에게 용돈을 주고 간섭하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의 이 말씀이 떠올랐다.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반응을 기다리며 기웃거릴 때도 그랬다. 아버지의 말씀을 새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쓸데없는 욕심을 다스렸다. 한빛에게도 이 얘기를 해줬다. 그래도 외할아버지처럼 경제적으로 무감각하면 안 된다를 말을 덧붙이면서. 이 역시 나의 욕심이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급했다.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녹두거리에 원룸을 구해 나갈 때 준 용돈을 몇 년간 고정시킨 것이다. 내 월급도 해가 바뀌면 인상되는데 생각을 못 했다. 가끔 "용돈 모자라지 않니? 더 줄까?" 하면 한빛은 "괜찮아요. 학교도 걸어 다니고 별로 쓸 데도 없어요" 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하긴 학생이 돈 쓸 일이 뭐가 많겠어?' 하며 내 식대로 정리했다.

그러다 용돈 액수를 올리게 된 계기가 생겼다. 우연히 동생 친구들한테 들은 말 때문이었다. 스터디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식당을 가는데 한솔이만 먼 곳으로 간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한솔이는 좀 더 싼 곳의 식당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한솔이가 매우 경제적이라며 웃었다. 그러나 엄마인 나는 그 말을 웃으며 들을 수 없었다.

왜 용돈을 올려달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한솔이는 "아이, 그 식당이 맛있어서 가는 거예요. 친구들이 우스갯소리 한 거니 괘념치 마세요. 그리고 저는 다른 중요한 곳에 돈을 써야 해서 조정을 할 뿐이에요"라고 했다. 그제야 한빛, 한솔한테 주는 용돈이 몇 해 전 그대로임을 눈치챘다. 일부러 동결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말했다면 더 주었을 것이다. 왜 아무 말도 안 했을까? 대학 교내식당이 여러 곳 있고 식당마다 가격 차이가 있다는 것을 엄마가 어떻게 아나? 하긴 세상을 바라보는 내 무심함과 생활 태도가 문제였을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두 아이에게 용돈을 더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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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환갑 때 번듯한 선물을 드리고 싶어 거금을 들여 제주도 효도 여행 상품권을 샀다. 그러나 아버지는 환갑잔치도, 여행도 싫다고 하셨다. 결국 내가 엄마를 모시고 효도 관광을 떠났다. 효도 관광의 상술에 따라 스물일곱의 나는 재미없고 이상한 제주 여행을 해야 했다. ⓒ Pixabay

 
아버지 환갑 때 나는 교직 3년째였다. 번듯한 선물을 드리고 싶어 거금을 들여 제주도 효도 여행 상품권을 샀다. 그러나 아버지는 환갑잔치도, 여행도 싫다고 하셨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좋아야 하는 데 왜 억지로 가게 하냐고 하셨다. 그래도 설마 했는데 여행 전날까지도 변함이 없으셨다. 결국 내가 엄마를 모시고 효도 관광을 떠났다. 제주 공항에 내리니 버스에는 모두 어르신들이었다. 효도 관광의 상술에 따라 스물일곱의 나는 재미없고 이상한 제주 여행을 해야 했다.

바닷가 일정이 있는 날, 나는 한라산을 등반하기로 했다. 저녁때 들어보니 어르신들은 그저 가이드가 하라는 대로 얌전히 앉아 해수욕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고 했다. 엄마 역시 백사장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한 할머니가 묻더란다.

"따님이 정말 효녀네요. 엄마랑 효도 관광을 오고. 언제 혼자 되셨어요?"

졸지에 엄마는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가 되셨고 나는 효녀가 되었다.

아버지는 끝까지 고집 아니 소신대로 사셨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캐리어를 끌고 공항버스를 타러 가는 사람들을 볼 때 흔들렸다. 꼭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들처럼' 살고 싶어서였다. 해외여행보다 북한산 둘레길 걷는 걸 더 좋아했으면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봐주기를 먼저 의식했다. 아들인 한빛에게도 진심이 아닌 보이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한빛은 알고도 눈감아 주었을 것이다. 엄마를 많이 이해하려고 했으니까.

한빛은 나에게 백신이었다
  
아버지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셨다. 허례허식을 싫어하셨다. 제사도 오후 7시에 지냈다. 작은 집식구들과 친척 할머니들이 안전하게 귀가하셔야 하고 아이들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할머니들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하셨지만 아버지는 꿋꿋했다.

대신 우리는 제사 후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긴 시간 동안 조상들의 역사를 들어야 했다. 대단한 가문의 이야기가 아닌 민담이었는데 매년 들어서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주말농장에서 잡초를 뽑을 때 어린 한빛이 "엄마, 외할아버지의 할머니. 그 위의 할머니는 배추를 풀인 줄 알고 다 뽑으셨지? 엄마는 배추가 어느 건지 다 알아?"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또 제수를 술 대신 사이다로 하셨다. 투명한 술(정종)과 사이다가 비슷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사이다를 구경도 못 해본 우리들을 위해서였다. 실용적인 면에 방점을 두신 것이다. 우리는 제삿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퇴주잔이 나오면 사이다를 냉큼 받아 마실 수 있어서였다.

한빛도 외갓집 제사에는 꼭 가려고 했다. 엄마가 안 사주는 사이다를 마음껏 마실 수 있어서였다. 한빛 한솔까지 절을 시키니 작은 술잔(사이다)은 열다섯 개도 넘었다. 또 제사상에는 페리카나 양념치킨도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긴 이야기로 거품이 다 사라진 사이다를 홀짝홀짝 마시던 한빛. 아무리 그렇게 키워도 한빛 역시 중학생이 되니까 콜라를 기본으로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의 삶에서 보았던 인과관계는 자연스러웠다.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결론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 위해 산 것 같다. 한빛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한빛이 나에게 백신이었듯, 나도 한빛의 백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한빛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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