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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1218화

감염·생계·인종차별 걱정... 난 지금 이탈리아에 있습니다

[현지 리포트] 10대 여자아이 세 명이 우릴 보고 입을 막았다

등록 2020.03.13 07:46수정 2020.03.13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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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확진자가 매일 속출하던 2월 초기엔 바이러스에 대한 심각성도, 마스크의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하던 이탈리아였다. 심지어 이탈리아 내무부 장관은 텔레비전에 나와 이 사태는 단순 '감기'일 뿐인데 왜 이렇게들 호들갑이냐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마스크 안 해도 되는 거야? 안심해도 되나?' 혼란스러운 와중에 한국은 특정 종교의 단체 감염 이후로 코로나19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탈리아도 2월 21일 북부 롬바르디아주에서 첫 지역 감염이 확인된 후 3월 10일 기준 누적 확진자가 만 명을 넘어섰다. 확진자 3명이 됐을 초기에 로마는 중국발 항공기를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발빠르게 취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결과라니.
 

3월 12일 오전 8시 기준 공개된 세계 감염자 수. ⓒ 코로나보드 화면 캡처

 
그후 이탈리아 확진자 수는 매일 갱신하다 못해 확진자 수 2위 자리에 어머어마한 숫자를 올렸다. 평소 사고 방식의 차이로 마스크는 중증환자일 경우에만 착용한다던, 그래서 구하기조차 어렵다는 마스크도 매일 매진 행렬이다. 그런데 정작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보는 건 정말이지 극히 드물다. 

마트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심상치 않은 상황을 볼 수 있었다. 2월 24일, 당분간의 칩거를 이유로 아이들 음식 등은 좀 사두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마트에 갔는데, 결국 카트가 제대로 끌리지도 않을 만큼 장을 보게 되었다.
 

위기라고 느낀 탓인지 담아도 너무 많이 담았다. ⓒ 이혜진

  

계산대 앞 줄 선 사람들 카트 속도 이미 한가득,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 이혜진

   
그런데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미 파스타, 쌀 등이 있어야 할 곳곳은 텅텅 비었고, 북부 쪽은 종류 불문하고 동이 나서 이미 총 없는 전쟁 체감을 완벽하게 하는 중이란다.
 

2월 24일, 파스타, 쌀 등이 있어야 할 곳곳은 텅텅 비었다. ⓒ 이혜진


이런 상황에서 더 두려운 건 인종 차별이다. 아직도 한편으로 여전한 동양인 차별이 두려워 나는 마스크 착용은커녕 아예 외출 자체를 포기할 때가 더 많다. 한국인이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이도 둘씩이나 있다 보니 염려스러운 마음이 커 이런저런 이유로 외출을 미루다 급하게 필요한 물품이 있어 쇼핑센터를 잠시 다녀왔는데... 하아. 어린 10대 여자아이 세 명이 우리를 보고 손으로 입을 막는 행동을 취하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을지 알 수 없어 바이러스를 피해다니는 것도 진절머리날 지경인데 동양인을 상대로 묻지마 공격이라도 받을까 두려워 해야 하는 타국살이다. 힘들다 힘들다 세상 이런 일이 생길지 과연 누가 알았겠는가.

12월 예약한 크루즈선, 하루 전 탑승 불가 통보
 

크루즈 탑승 하루 전날 2월 28일 예상치도 못했던 공문이 날아왔다.?전 세계 크루즈 선사 50여 개에서 '한국에서 출발한 지 14일이 넘지 않은 탑승객은 승선시키지 않겠습니다'고 한 거다. ⓒ 이혜진

 
한편,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훨씬 이전이었던 12월경 이미 2월 29일 출발하는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예약해 두었던 터라 한국 거래처로부터 연이은 연락이 왔다. 매번 내 대답은 "로마는 아직까진 괜찮은 편입니다, 한국 괜찮으신가요?" 였다. 여기 이탈리아보다 한국에 있는 그들의 안부를 더 걱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가 갖는 위험성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 전 세계는 연일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한국이 오히려 심각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 후 거래처 사장님은 손님들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했다. 헌데 탑승 하루 전날인 2월 28일 예상치도 못했던 공문이 날아왔다. 전 세계 크루즈 선사 50여 개에서 '한국에서 출발한 지 14일이 넘지 않은 탑승객은 승선시키지 않겠습니다'고 한 거다. 크루즈를 타고 유럽 여행을 꿈꾸었던 그들의 꿈같은 여행은 로마 크루즈 항구에 도착하여 '탑승 거부'라는 현실로 돌아왔다.

크루즈 탑승 실패 후 관광객들은 로마 인근 투어를 계속 하려고 했으나, 2일 남부투어 내려가던 중에 알리탈리아 항공의 인천발 단항 소식을 듣고 급히 로마로 복귀해야 했다. 원래는 5일 귀국이었으나(애초 귀국은 크루즈 탑승 후 8일이었다) 그날 밤 항공편으로 변경하여 인천으로 가셨다. 

3월 예약 전부 환불.... 중요한 건 안전이니까

북부 이탈리아에 비하면 아직 로마는 견딜 만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특유의 이탈리안의 여유로움인지, 세상 이 시기에 경각심도 없이 스키 여행에 봄 나들이까지 즐기는 이들이 참 대책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 9일(현지 시각) 밀라노의 롬바르디아주 포함 14개 주는 봉쇄에 들어갔고, 예고제 도시봉쇄로 봉쇄 전날 각 도시를 빠져나오기 위해 항공, 열차, 각각의 이동수단은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소식이다. 

역병으로 인해 가족의 면회를 제한하자 이탈리아 전 지역 22곳의 교도소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현재까지 죄수 6명의 사망과 220여 명에 달하는 탈옥 죄수까지 발생, 심지어 이들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추적조차 안 된다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북부 이탈리아에 비해 상황이 나아 보이는 남쪽(로마)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북부 지역에 국한되던 도시 간 봉쇄는 어느덧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Io Resto a Casa(나는 집에 있습니다)'라는 그야말로 웃픈(웃기고슬픈) 법령 시행으로 기차, 항공, 기타 도시간의 이동 시에는 본인 작성의 진술서가 필요하게 되었다(진술 사실이 거짓일 시 범죄로까지 간주할 수 있다고 한다). 경찰 심문시 진술서를 제출, 이동에 대한 근거가 합당해야 이동이 가능한 말 그대로 재난영화의 한 장면같은 상황이 매일매일 갱신되고 있는 중이다.

다행스러운 건 집 주변에서는 아직 우리를 경계의 대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늘 다니던 바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슈퍼에서 장을 보고, 늘 당연하던 일상을 아직까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3월 15일까지 휴교령이던 학교는 4월 3일까지 자동연장되었고 바티칸박물관, 콜로세움, 폼페이, 피렌체, 밀라노 두오모 등등 사실상 이탈리아의 주요 관광명소는 모두 닫혀 버린 상황에서 작은 영세 여행업인 우리는 기약 없는 백수 신세가 되었다.

취소와 환불 기한 원칙을 따지자면 환불 불가가 맞지만, 3월 예약 건에 한해 취소 요청시 전체 환불을 진행했다. 예약된 투어 스케줄이 펑크 나면 나같은 소규모 여행업을 하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는 너무 크다. 당장 소속 기사님, 가이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쓰린 가슴으로 예약을 취소하는 고객의 입장에서 함께 하기로 한 결정이다. 어찌됐든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괜스레 어린이집에서 유일한 동양인인 아이를 혹여나 미운 시선으로 보게 될까 그것조차 신경 쓰이는 요즘이다. 특히 호흡기로 전달되는 질병인 만큼, 항상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가족이 있고, 전 세계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에서 어느 국적 어떤 사람이 스쳐 지나칠지 모르는 로마에 살다 보니 조금 더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나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세상 이렇게 즐거울 때가 또 없다는 표정이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던 아이는 어느날부터 엄마가 아침에 어린이집 가자며 채근하지 않고, 늘 바쁘다는 핑계로 부재 중이던 아빠가 24시간을 함께하니 그렇겠지. 그래, 이 시국에 너라도 행복하니 그게 어디냐.

복잡한 내 속도 모르고 날씨는 또 어쩌자고 이렇게 좋은 건지. 이쯤하면 됐으니 재난 영화는 영화관에서 볼테니 모든 게 꿈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면 좋겠다.
#코로나19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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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이탈리아 로마 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 해외교민의 시선으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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