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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1342화

나는 돈만 벌려고 사교육자가 된 게 아닙니다

[코로나19를 버티는 마음] 미술학원 운영 6년차... 자극적인 댓글에 분통 터지는 날들

등록 2020.03.16 08:07수정 2020.03.16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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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좋아했고 미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의류 업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팔리는 상품을 데이터화하여 디자인하고, 쌓이는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함께 판매할 제품을 연구해야 했다.


쌓여가는 옷더미를 보면서 직업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고, 3년 만에 회사 생활을 그만두었다. 그후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동안 배운 것, 가진 재주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전공 관련 교육자가 되는 것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공교육 기관으로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였기에 사립학교 기간제 교원으로 취업했다. 계약직 기간제 교원으로서 학교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내게 학교라는 곳은 교원의 교육 철학이나 마음가짐보다는 성적, 오직 교원임용 고사로 선별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무원 조직 같았다.

선택의 대안을 찾다가 사교육계로 넘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공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미술 교육의 목적과 사교육 공간에서 다루어야 하는 그것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영리 없이 생계를 꾸릴 수 없었다.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교육적 정체성과 방향성에 혼란스러웠지만, 나의 출발은 '교육을 위한 미술'이었기에 조금 돌아가도, 덜 벌어도 괜찮았다. 바른 교육을 하고 싶었다.

미술학원 운영 6년째, 이런 위기가 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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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임시 휴원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0.2.24 ⓒ 연합뉴스

 
올해로 교육 서비스업 자영업자로 종사한 지 만 6년째이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지만, 대체로 버틸 만했다. 상사의 업무를 대신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형식적인 업무 처리는 생략해도 상관없었다. 아무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지만, 나 또한 고객 외에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그렇듯 연구와 기획, 마케팅 등 매일 매 순간이 업무의 연장선이었지만,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감사했다. 나의 고객인 아이들은 대체로 순수했고,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고,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그저 좋았다.

2020년 2월 23일 교육부는 학원 강력 휴원 권고를 발표했고 3월 현재 3주째 휴원 중이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이 우선이니까 당연한 선택이었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사교육 공간도 정상 수업을 하는 곳은 없었는데 뉴스에서는 전국의 많은 학원이 영업 중이라고 질타했다. 휴원하지 않는 학원은 국세청의 세무조사, 소방시설 등을 강력하게 점검한다고 했다.

말이 권고지 영업 단속이나 마찬가지다. 학원계의 비난이 빗발치자 저금리 대출이나 소독 등 휴원을 지원해주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힘들지 않은 자영업자가 어딨냐며, 이 와중에 아이들 상대로 돈 벌려고 애쓴다며 학원을 비난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교육자로서 휴원은 당연했다. 교육청의 '강력 휴원 권고'와 '강력 단속' 없이도 마땅히 휴원할 생각이었다. 설 연휴 이후로 교육 연구 모임 단 두 번을 제외하고 외출을 삼갔다. 면역력이 약한 내가 우리 학생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없었기에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을 해 왔고,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가족과도 따로 식사했다. 매일 꼼꼼한 청소와 소독은 당연했다. 길어진 청소 시간으로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영업자로서 휴업 중이니 수입도 '0원'이다. 설 연휴 전후부터 이미 1/2이상의 아이들이 부모에 의해 자체적으로 휴원 중이다. 임차료와 월급, 공과금 등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이 있는데 점점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3월 23일 학교 개학에 맞춰 영업을 시작하려 하지만, 지금 추세로는 그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도권 등에서 소규모 집단 감염으로 확진자가 대폭 증가하였다. 개학하면서 정상 수업을 시작한다고 할지라도 쉬고 있는 모든 학생들이 돌아온다고 장담할 수 없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더욱 불안한데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기력하다.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 보장할 수 없는 것, 그걸 경험 중이다. 노력하면 나아지리라는 보장, 열심히 일한 만큼 돌아온다는 보장, 뿌린 만큼 거두리라는 보장이 없는 요즘, 불안감이 나를 옥죄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생계와 보람'을 위해 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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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교육청은 지난 3월 6일 교육감실에서 교육청 관계자와 인천학원연합회 이선기 회장 및 임원진이 참석한 가운데 '코로나19' 학원 관련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 인천시교육청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방어할 수 있는 건 마스크 착용과 소독제, 집 안에 머무는 것이 전부다. 집안에 갇힌 채 바깥세상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인터넷 뉴스라도 보려면 자극적인 댓글에 분통이 터진다. 다들 지쳐 버렸고, 힘겨워 감춰둔 뾰족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당장 나부터 감정적으로 험한 말부터 내뱉고 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다들 마찬가지이구나.'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와중에 여론에 휩쓸려 불안감에 빠져 있다가는 내 속만 망가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 속에 남는 자가 누구인지 안다고, 궁지에 몰리니 누가 적군인지 누가 아군인지가 보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켜쥐는 사람, 서로를 위해 마음을 여는 사람, 순간적인 기분으로 대처하는 사람, 나보다 더 궁지에 몰린 사람 등등. '적어도 나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같은 생각도.

나는 '돈'만을 위해 사교육자가 된 것이 아니다. 사업가나 공무원, 자영업, 회사원 등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한 이유로 나의 생계와 보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오직 돈만을 위한다면 결코 이 직종에 종사할 수 없다.

요즘 아이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상처와 아픔,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어 지도가 쉽지 않다. 국영수처럼 정답을 찾아가는 교과가 아니기에 더욱 어렵다. 대회 입상, 성적 같은 원하는 결과물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꾸준한 연구와 노력 없이 지속되지 않는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아이들은 무언가를 끄적이는 행위로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미술 활동을 통해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고, 사고를 확장시킨다. 나는 미술 교육자로서 연구, 기획, 경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아이들의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유익한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직업군이 사회악이라도 된 듯 비난하고 왜곡하고 문제화시키고 없애려 들지만, 예술 없이 행복을 논할 수 없다. 사교육계 종사자도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 다른 톱니바퀴가 되어 함께 굴러가야 돌아간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나약한 존재의 겁 없는 도전일지라도, 해낼 것이다. 도전할 것이다. 분해서 이대로 무너질 수가 없다. 지금은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게 되겠지만, 버텨낼 것이다. 지금부터는 버티는 만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이 든다.

IMF 같은 건 뉴스로나 접했지, 그 시절 사람들이 어떻게 극복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 위기를 기회 삼아 좀 더 튼튼하고 견고한 내공을 쌓는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 이 길이 힘겨울지, 가다가 또 넘어지게 될지, 올바른 방향인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작가의 브런치와 buk.io(북이오)의 채널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자영업자 #교육서비스업 #학원장의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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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를 즐깁니다. 사는 이야기, 생각과 일상을 기록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아 그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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