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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1550화

매출내역에 밥값만 덩그러니... 여기는 남대문 시장입니다

[코로나19가 소상공인에 미친 영향] 최악의 매출... 결국 토요일 휴무 결정

등록 2020.03.20 15:57수정 2020.03.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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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서울 남대문 시장의 모습. ⓒ 연합뉴스

 
나는 남대문 시장에서 핸드백 도매업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고, 군 전역 후인 1990년대 후반부터 자연스럽게 두 분과 함께 일을 하게 됐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은 두 살 많은 형이 부모님의 뒤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직원으로 일한다.

장사를 하다 보면 손님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다. 우리 아버지를 포함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올해 장사가 제일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보수 정부가 들어오든 진보 정부가 들어오든 언제나 "차라리 이전 정부 때가 더 나았다"고 한탄한다. 매년 '올해 경기가 제일 나쁘다'는 얘기를 빠짐없이 들었지만 다들 수십 년 동안 큰 탈 없이 장사를 이어가는 걸 목격했기에, 나는 그들의 말을 100% 신뢰하진 않는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정말이지 요즘의 이런 경험은 평생 처음이다. 채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이 끔찍한 비극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원인은 바로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다.

절대 믿지 않던 그 말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매출 내역이 빽빽하게 적혀 있어야 할 일계표에는 당일 밥값만 덩그러니 쓰여 있을 때가 많다. ⓒ 양형석

 
코로나19에 대한 소식을 처음 접한 건 설 연휴를 앞둔 올해 1월이었다. 우리 가게는 중국 광저우에 공장을 두고 있어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중국발 소식에 다소 민감할 수밖에 없다. 중국 우한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호흡기 전염병이 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코로나19가 사스와 메르스를 능가하는 엄청난 파급을 가져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의 걱정은 춘절 연휴에 고향으로 이동한 공장 직원들이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한과 인접한 광저우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국내에서는 지난 1월 20일 처음으로 발병됐지만 2월 중순까지만 해도 확진자 30명 미만으로 잘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2월 18일 대구 거주의 60대 여성이 31번째 확진자로 밝혀진 뒤로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 그리고 우리 가게가 있는 남대문 시장은 직격타를 맞았다.

시장은 사람들이 외출할 때 문이 열려 있어야만 존재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전국의 시장들은 일반 기업이나 회사에 비해 휴일이 적은 편이다. 우리 가게가 있는 남대문 핸드백 상가 역시 매주 일요일과 명절 연휴, 8월 초 여름휴가 정도를 제외하면 휴일이 없다. 물론 개인 사정이 있는 매장은 자체적으로 문을 닫는 경우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도, 부처님이 오신 날에도, 일요일이 아니면 언제나 가게 문을 열어야 한다. 나는 한국에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됐을 때 가게와 상가에 불만이 아주 많았다. 친구들은 일주일에 이틀의 휴일이 주어져 '불금'을 즐기는데 나는 토요일까지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매출하락에 상가 협의회는 결국 3월에 한해 '주5일 근무제'를 결정했다. ⓒ 양형석

 
그런데 최근 우리 상가 사람들도 드디어 주5일 근무제를 경험하게 됐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심각할 만큼 장사가 되지 않자, 상인협회에서 설문조사 끝에 3월 한정으로 토요일에 상가 문을 닫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반기지 않는 주5일제 시행이다.


실제로 최근 2~3주 사이 상가와 매장 분위기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수준이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2월 말부터 매장은 판매량과 수익이 문제가 아니라 '개시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으로 매출이 폭락했다.

상가 사람들은 이미 실망을 넘어 체념 단계에 접어든 분위기다.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으로 이른 아침부터 나와 가게 문을 열지만 많은 가게들이 가방 한 개도 채 팔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것을 예상해 자체 휴가를 선언하고 문을 닫은 매장도 생겼다. 사람들은 하루 빨리 코로나19로 인한 이 '적막한 혼란'이 끝나 손님들과 기분 좋은 가격흥정을 하는 날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 삶의 터전이 되돌아오기를

지난 11일(현지시각)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코로나19는 극동 아시아를 넘어 이미 중동과 유럽, 북미 지역을 포함한 세계 각국으로 퍼져 19일 현재 무려 176개국에서 20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9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코로나19는 더 이상 중국과 한국, 일본 등 일부 나라들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가 함께 고민할 문제가 됐다는 뜻이다.

이미 국내의 스포츠가 '올 스톱' 됐고 KBO리그의 개막도 4월 이후로 미뤄진 가운데 코로나19가 세계 스포츠에 끼친 악영향도 대단하다. 미 프로농구 NBA는 이미 전면 중단됐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축구도 일시적 리그 중단을 선언했다. NBA 올스타 출신의 루디 고베어와 도노반 미첼(유타 재즈), 유벤투스FC의 수비수 다니엘레 루가니, 아스날 FC의 미켈 아르테타 감독, 투루아 AC의 석현준 등 유명 스포츠인들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물론 전망이 마냥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국내 신규 확진자는 지난 6일을 기점으로 감소 추세이며 격리 해제되는 환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지난 10일 코로나19 항체를 분리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만들어 백신 개발에도 한 걸음 가까워졌다.

코로나19로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고 하루 빨리 이 혼란이 지나가길, 내 삶의 터전인 남대문 시장도 활기를 되찾길 희망한다.
#코로나19 #남대문시장 #팬데믹 #주5일 근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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