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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1621화

저는 치과의사입니다, 비말에 취약한... 여기는 경북이구요

[코로나19가 우리 가족에게 미친 영향] 아이들과 떨어져 지낸 3주

등록 2020.03.23 09:12수정 2020.03.2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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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다. 시작은 중국 우한이었지만 우리나라의 핵심 발화점은 내가 사는 바로 이곳, 대구경북(구미)이었다.

어느 종교집단을 중심으로 가연성 강한 폭발물처럼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확진환자 수가 하루에 수백 명씩 늘었다. 구체적인 관련 내용들은 연일 올라오는 속보를 통해 확인 가능하니 이번 글의 초점은 개인이 겪은 '코로나19'의 일상으로 한정한다.


사실 구미에서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코로나19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2월 22일 지역 내 첫 감염 이후 확진자의 동선이 하나둘 발표되기 시작하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의 이웃이었고, 내가 엊그제 방문했던 커피숍을 이용하는 시민이었다. 우연히라도 마주쳤을 법한 사람들이었다.

줄어든 환자는 언제쯤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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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대에 비치된 소독용품 치과 접수대에 손 소독제와 글러브, 체온계등을 준비하여 바이러스의 전파를 최대한 막기 위해 노력중이다. ⓒ 이정혁

 
나와 아내는 치과 의사다. 우리 부부는 구미에서 작은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주된 전염경로가 비말(침방울)이니 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의사군인 셈이다. 마스크와 보호 안경만으로는 완벽한 차단이 불가능하니 진료를 보고 나면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퇴근할 때가 되면 왠지 열감이 느껴지고 헛기침이 나올 것만 같다.

2월 말부터 발병이 급격히 확산돼 3월 18일 현재 구미의 누적 확진자 수는 59명이다. 길에는 사람이 없고, 도로도 한산해졌다. 내 병원의 환자 수는 말할 것도 없다. 예약의 2/3가 취소 혹은 연기됐고, 신환(신규 환자)은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직원들 월급 주기 쉽지 않겠다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의료용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손 소독제도 물량이 부족했지만 부랴부랴 소독과 방역에 더 각별히 신경을 썼다. 입구에서부터 모든 환자에게 의료용 글러브를 착용시켰고, 시술 전에 소독용 가글액으로 양치를 시켰다. 체온계마저 품절이어서 집에서 아이들 체온 재던 기계를 가져와 커버만 바꿔 체온을 쟀다.

퇴근길에 직원들과 맥주 한 잔은커녕 외출 절대 금지를 부탁했다. 확진 환자의 동선에 포함되는 것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는데 하물며 내부 직원이 확진이라면 병원 이미지에 미치는 파장은 한두 달로 그칠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19가 점점 더 목을 조여오자 주변 원장들 중에는 자진해서 며칠간 쉬는 곳이 생겼다. 직원들에게 자발적 무급휴가 동의서를 받아 인건비를 줄이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격리와 공포의 시간이 3주쯤 흘러가고 있다. 매일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던 긴급재난문자도 이제 좀 잠잠해졌다. 하지만 병원을 찾는 환자 수도 여전히 잠잠하다. 거리에 간간이 사람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급한 용무가 아니고는 여전히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직원들은 내 눈치만 본다. 결국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를 고민하던 직원이 그만둔다고 말했을 때, 오래 붙잡지 못하고 눈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직원을 더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환자가 오길 기다리며 예약이 없는 시간에는 청소하고 또 청소했다. 병원에 빛이 날 지경이다.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졸지에 이산가족... 트로트 신동이 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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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여파로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의 신학기 개학일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17일 오전 서울 한 시내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칠판에 교사가 입학생을 위해 준비한 축하 메시지가 붙어 있다. ⓒ 유성호

 
이제는 개인적으로 보낸 시간에 대해 적어 본다. 구미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다음 날, 우선 아이들부터 본가의 어머니 댁으로 옮겼다. 일주일 후에 데리러 올 테니 집 안에만 있으라는 당부와 함께.

결국 그 말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됐다. 일주일 개학 연기가 다시 2주 더 연장되더니 이번에는 아예 4월 6일로 미뤄졌다. 학원은 줄줄이 문을 닫거나 인터넷 강의로 명맥만 유지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집 안에서 할 일이란 많지 않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민화투를 배우고 할머니가 즐겨보는 <미스터트롯>의 애청자가 됐다. 큰아이의 존경하는 인물은 2주 만에 링컨에서 임영웅(<미스터트롯> 출연자)으로 바뀌었다.
     
아이를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나자 확진자 수가 하루에 대여섯 명씩 늘었다. 치과 진료를 접지 않는 이상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아내를 위해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을 하러 갔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보초들처럼 딱 5미터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할머니가 잘 거두어 먹여서인지, 햇빛을 보지 못해선지, 얼굴이 뽀얘진 아이들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챙겨온 옷가지와 책들은 하루 동안 밖에 두었다가 아이들에게 건네도록 했다. 눈물 나게 그립지만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상황. 누군가는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엄마 아빠는 둘 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를 마주하는 치과 의사였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나갔다. 아이들보다 아내가 더 걱정이었다. 태어나서 2주일 이상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아이들. 아내는 거의 우울증 수준으로 힘들어 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아내가 진료를 쉬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다. 계속 환자를 상대하는 나는 병원 앞에 지인의 방을 빌려 따로 생활하기로 했다.

거의 샤워하는 수준으로 소독제를 뿌리고 글러브와 마스크로 중무장한 뒤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은커녕 거의 납치하듯 아이들을 차에 태웠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마스크를 쓴 채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엄마와 재회했다.

아이들을 집에 내려주고 다시 나만의 자가 격리가 시작됐다. 글 쓰는 친구의 작업실이어서 텔레비전은 고사하고 책상과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황폐한 공간에서 나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거울이었다. 거울을 보며 코로나19를 욕하며 혼자 술을 마셨다. 아이들과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영상통화뿐이었다.

다행인 건 아이들을 데려온 주부터 확진자 수가 확실하게 줄어든 것이다. 확진자 발표가 없는 날도 있었고, 많아야 하루에 한 명 정도였다. 일요일 저녁에 시작한 나의 독방 생활은 목요일 저녁에 종지부를 찍었다.

더 이상의 확산을 막을 수만 있다면

마침내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3주 만의 일이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는 일상이 이렇게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과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하는 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일,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는 일, 이 모든 것 자체가 행복이다. 누군가 억지로 막으려 한다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일이다. 우리가 코로나19에 대항하듯이.

코로나19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특히나 서울 지역의 집단 감염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질병관리본부의 지침대로 손씻기를 확실히 하고 최대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다면 우리는 이번 사태를 이겨낼 수 있다. 지나고 나면 결국 감기 바이러스일 것을.

나의 경우를 지나치다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방에 도움이 되고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신경 쓰고 노력해서 우리 모두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구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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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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