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안의 세상사, 누군가는 써야지요"

김창호 택시기사 <우리는 지금>출간... 손님과 나눈 대화 바탕 에세이

등록 2020.03.16 11:46수정 2020.03.1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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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운전하는 김창호씨. 그가 동대구역 택시 대기장에 들어서면 다른 기사들이 주위에 몰려든다. 무엇 때문일까. 만담을 잘하거나 정치적 선동에 익숙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까닭이 특이하다.

"택시에서 오가는 대화들, 민심의 척도 아닌가! 정치하는 사람들, 높은 사람들, 듣고 참고할 이야기가 참 많지. 하지만 아무도 기록을 하지 않으면 진가를 발휘하지 못해. 그런 점에서 김창호씨는 대단히 의미있는 일을 하는 거야. 우리 택시기사들의 대변인이지."


기사들은 대략 그런 격려를 김창호씨에게 해준다. 그가 수필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특히 그렇다. 기사들은 '혼자의 경험만 기록하려 들지 말고, 우리 택시 기사들이 보고 들은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소재를 찾으면 더 풍부한 내용의 책이 될 것'이라는 조언도 해준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기사 김윤옥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김창호 저 <우리는 지금>의 표지 ⓒ 김창호

 
김창호 씨는 본래가 수필가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는 제목으로 낸 이번 책도 생전 처음 펴내는 저서다. 하지만 사회고발적 성격이 다분한 이번 책과 같은 저서를 펴낼 조짐은 일찍부터 보여왔다. 농어촌 보건의료 지원 법안 등 다수의 입법 초안을 만들어 정부와 의회에 제안해온 그의 오랜 이력이 바로 그것이다.

"여러 가지 정책 변경이나 개선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서 정치적 진영 또는 당사자의 위치와 관계없이 여기저기, 오랫동안 제안을 했었지요.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나름대로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제안이 실제로 반영이 되어서 구현되는 것을 볼 때면 아주 기뻤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책을 펴내게 된 것은 그 일과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김창호씨는 "정책 제안을 한 것이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행동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같은 책을 쓰는 일은 문학적 작품 활동인 셈"이라며 "그렇지만 글 쓰는 택시기사로서 동료들과 일반 서민들을 대변하여 사회적 목소리를 기록한다는 소명감도 가지고 썼다"라고 답했다.

단순한 일화에서 보는 서민 생활의 애환

이 책에는 택시 승객들이 보여준 서민생활의 애환이 많이 담겨 있다. 술에 취한 손님들이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책에 여러 편 실려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음주문화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에피소드만 기록하는 데 멈추지 않는다.


택시 승객들로부터 들은 이야기 속에서 그는 사회의 문제를 발견한다. 그는 택시기사를 처음 시작할 때 '친절하되, 인사 외에는 승객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만, 승객이 말을 걸어올 때는 성심껏 답변한다.

한번은 대학 화학과 학생 승객이 '취업할 길도 없고 걱정'이라면서 '뭐 좋은 데 없을까요?' 하고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그래서 주기율표를 외어 보임으로써 아주 문외한이 아니라는 것을 과시(?)한 후, '화학의 결합과 분리, 그에 따른 반응과 응집 등을 연구하면 산업화할 과제가 많을 것'이라며 '화학은 인류발전에 중요한 분야다. 관심 있는 세부 분야를 잡아서 준비하고, 그것을 적용할 만한 회사를 학생이 찾아서 선택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랬더니 (화학과 학생은) 목적지에 다 왔는데도 차에서 내릴 생각은 않고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조른다. 20분을 이야기하다 헤어지면서 90도로 큰절을 하고 간다. "교수님보다 낫습니다. 길을 찾은 것 같습니다." 하고 힘차게 달려간다. 도서관으로 가는 것 같다. ('화학과생의 멘토' 중 일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꼭 하고 싶은 말

저자는 대리기사들을 밤새 이동시켜주는 공유버스(합승차량)의 현실에 대해서도 한 마디 지적한다. 그는 '대리기사 공유버스들이 대부분 학원 지입 관광차나 유치원 등 개인 자가용 차량이다. 이렇게 대리기사를 태워주는 일로 심야에 밤샘 운전을 하고 낮에는 유치원 또는 학원 차량을 운전하다면 운전기사의 피로가 높아져 사고 위험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역시 교육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목소리다.   

이런 대목을 보면 동대구역 기사들이 '택시기사들의 이야기를 정치하는 사람들, 높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 한다'고 말하는 까닭이 가늠이 된다. 거의 매일 동일한 길을 오가는 자가용 운전자는 대리기사 공유버스의 문제점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에는 이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는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저자는 '이 책은 택시기사인 김 기사가 대화를 통해 승객과 소통한 내용에서 소재를 얻어 쓴 수필'이라고 말한다. 책 표지의 저자 이름도 본명 '김창호'가 아니라 '김 기사'로 밝혀 두었다. 개인의 창작 수필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의 삶을 기록한 사회적 기록물이라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지금>을 읽으면 독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의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덧붙이는 글 김창호 저 <우리는 지금>(효창기획, 2020년 2월), 199쪽, 13,000원
#김창호 #우리는 지금 #택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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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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