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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으로 아수라장... 그들은 왜 독가스 살포했나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재난에 겹쳐진 종교 테러

등록 2020.03.20 14:50수정 2020.03.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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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 대지진 소식을 전한 1995년 1월 18일 한겨레신문 1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95년 1월 17일 일본에서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다.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7.2의 강진이었다. 이것이 오사카와 고베를 아우르는 일대를 뒤흔들어 놓았다. 2011년 3월 11일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 전까지, 이 지진이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역대 최악이었다.

이 지진은 고베 대지진으로도 불리지만, 한신(阪神) 대지진으로 많이 불린다. 프로야구팀 한신 타이거스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한신'은 오사카(大阪)와 고베(神戶)에서 한 글자씩 딴 명칭이다. 한국어에서 '판'으로 발음되는 한자 阪은 일본어에서는 '한'이나 '반' 혹은 '사카'로 발음된다. 그래서 오사카에서는 '사카'로 발음되고, 한신에서는 '한'으로 발음되는 것이다.

한신 대지진에서는 사망자 6300명, 부상자 2만 6804명, 이재민 20만 명이 발생했다. 재산 피해는 14조 1000억 엔에 달했다. 건물과 공업시설이 부서지고 도로·철도·통신시설 등이 파괴되는 대재앙이었다.

1월에 발생한 이 재난은 쉽게 복구되지 못했다. 피해가 가장 컸던 고베시의 경우에는, 원상복구를 위한 도시정비계획을 세우는 데도 여러 달이 소요됐다. 그해 3월 15일자 <매일경제> '건설사, 일(日) 지진복구 참여한다' 기사는 "현재 고베시는 지진피해 복구를 위한 도시정비계획이 완료되는 6월 말까지는 4만여 동의 응급가설 주택 외의 모든 건축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올해 말께 영구 복구사업에 대한 공사 발주가 있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복구공사의 발주를 연말로 예정해야 할 정도로 피해가 막대했던 것이다.

그해 봄, 도쿄 지하철에 살포된 독가스

일본 사회가 이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던 그해 봄, 도쿄 도심에서 어처구니없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1984년에 창설된 신흥종교이며 신자 수가 1만여 명으로 추정되던 옴진리교(옴교)의 신도들이 지하철에 사린이라는 독가스를 살포한 것이다.

1995년 3월 21일자 <한겨레> 기사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는 "(20일) 오전 8시 17분께 도쿄 시내 지하철 히비야선 쓰키지역과 마루노우치선 가스미가세키역 등 18개 역과 전차 안에 신문지로 싼 도시락 상자에서 청산가리보다 500배나 독성이 강한 사린 가스가 새어나와 출근길 회사원 등이 급히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큰 소동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12명이 사망하고 약 600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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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를 보도한 1995년 3월 21일자 한겨레 보도.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옴진리교는 상심에 빠진 사회를 위로하기는커녕 도리어 독가스를 살포했다. 범죄집단도 차마 하기 힘든 일을 종교단체가 태연히 자행했던 것이다. 생명을 존중해야 할 종교가 대지진 충격에 빠져 있는 일본인들을 상대로 도리어 테러를 가했으니,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쇼크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황당한 것은, 이 테러가 교주의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한 일이었다는 점이다.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평소 예언해온 '1995년 11월 최후의 심판'을 믿게금 하려고 벌인 자작극으로 드러난 것이다. 1995년 5월 17일자 <경향신문> 기사 '천년왕국 꿈꾼 사교집단'은 힌두교 시바신을 숭배하는 옴진리교가 자작극을 벌인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사하라 교주는 '인류는 세균무기와 핵무기로 최후의 종말을 맞는다'며 '옴진리교 신자들이 95년 11월 아마겟돈(인류 최후의 전쟁)을 극복하고 천년왕국을 영위한다'고 설법해왔다. 이 같은 교리에 따라 옴교는 이런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과학기술성·자치성 등 정부기구를 본뜬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경찰은 이번 독가스 테러 사건이 아사하라 교주의 아마겟돈을 실천하기 위해 교단 측이 꾸민 자작극으로 보고 있다. 옴진리교 측은 사린가스는 물론 세균 가스와 핵무기 확보에도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세균전에 의한 1995년 종말'을 예언하던 차에 1995년 1월에 한신 대지진이 발생해 사회가 혼돈에 빠지자, 이 틈을 타서 교주 자신이 독가스를 살포해 예언을 성취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을 벌이면서도 이들이 도덕적 갈등을 별로 겪지 않았을 거라는 점은, 이 사건이 아사하라의 은밀한 지시가 아니라 옴진리교의 공식 절차를 통해 준비됐다는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해 6월 7일자 <경향신문> 기사 '아사하라, 각의(閣議)서 살포 지시'에 따르면, 아사하라는 '각의'라는 이름의 공식회의를 열어 범행을 결의했다. 이들은 세상의 권위를 부정하고 자신들을 최고 권력기관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독자적인 내각회의 시스템까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회의에서 임무를 받은 '장관'들이 부하들에게 범행 계획을 지시하는 순서로 범행 준비가 이뤄졌다.

군복을 입고 국가의 명령에 따라 남을 죽인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덜 받는다. 국가를 최고의 윤리체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정부기구까지 갖춘 옴진리교 열성교인들의 입장에서도, 자기 종교의 공식 라인에서 내려온 '합법적 명령'이기 때문에 독가스 살포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많이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일반 세상과 상반되는 윤리관념을 갖고 있었기에, 한신 대지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상대로 독가스까지 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 시스템의 균열과 옴진리교의 등장

당시 사람들은 이 일을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을 대표하는 사건으로 해석했다. 사회 시스템에 경고를 주는 일로 풀이했다. 사건 다음날인 3월 21일자 <매일경제> 기사 '잇단 재앙에 일(日) 열도 경악'도 그랬다.

이 기사는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건들이 구조적인 변혁기를 맞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석하고 있다"며 "5년여째 계속되고 있는 경기침체, 엔고(円高), 그리고 이에 따른 기업 시스템의 변화, 지진 등 자연재해의 발생 등에서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에 자극받은 불순세력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해 12월에 시마조노 스스무 도쿄대 교수는 <한국종교> 제20집에 기고한 '옴진리교 사건과 현대 일본: 전후(戰後)적 도덕질서와 새로운 도덕질서의 모색'이란 논문에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균열되기 시작한 현대 사회의 시스템이 옴진리교처럼 새로운 윤리를 표방하는 신종교의 출현을 가능케 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옴교 이외의 신신(新新)종교 교단-통일교회, 여호와의 증인, 행복의 과학 등의 경우도 근대적·전후적인 자유에 대한 제한과 새로운 도덕질서를 모색하는 시도가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옴진리교 사건은 1970년대 이후의 그 같은 흐름에 더해 1990년대 초반의 탈냉전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정치적 권위가 약해짐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라고 그는 해석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약해지는 상태에서 강대국들의 권위까지 시들해지면서, 신종교들의 도전이 거세지게 된 것으로 봤던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미국 및 유럽 내부의 도전이 68혁명으로 표출된 데서 알 수 있듯이, 1970년대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본격적 도전을 받기 시작한 시기다. 이때부터 미국의 대(大)자본가들이 대기업의 자율성 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지구화·세계화를 적극 추진한 것은 그런 흐름의 반대편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 같은 도전은 대중의 심리상태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대중의 심리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 현상에도 파급되지 않을 수 없었다. 1970년대부터 세계 종교계에 뉴에이지 운동 혹은 신영성 운동이 유력한 현상으로 급부상한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2004년에 <한국사회> 제5집에 실린 전명수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의 논문 '신영성운동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고찰'은 신영성운동에 관해 "20세기 후반 특히 1970년대 이후 세계 선진국에 있어서 또한 제3세계도 포함해서, 소비문화가 발달한 대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전지구적인 운동"이라고 요약한다.

이렇게 1970년대 들어 기존 세계체제의 윤리나 권위에 크게 제약받지 않는 종교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이들이 새로운 윤리체계를 앞세워 대중을 설득하는 현상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한신 대지진으로 수렁에 빠진 일본인들한테 독가스를 살포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옴진리교 같은 집단이 생겨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체제를 죄악시하는 옴진리교의 윤리체계가 일본 사회의 위기에 편승해 힘을 발휘하고, 이것이 잔혹한 테러를 가능케 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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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저서: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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