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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스루' 교과서 배부, 나는 좀 불편했다

[주장] 민원에 등 떠밀린 교육청과 학교... 지금 절실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록 2020.03.20 11:55수정 2020.03.2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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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책걸상이 시험일처럼 분단별로 배치돼 있다. 개학 뒤에도 수업 중 학생간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학교 측의 조치다. ⓒ 연합뉴스

 
정규직 교직원을 "일 안 해도 월급 받는 그룹"이라고 지칭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실언이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지만, 이미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청마다 항의가 빗발쳤던 모양이다. 이 와중에 교사들은 놀고 먹는다는 질타가 이어진 탓일까. 공교롭게도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공문을 내려 '휴업일에 교원은 출근의 의무가 있다'는 내용을 대뜸 강조하고 나섰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개학이 세 차례나 연기되며 내달 6일로 늦춰졌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이마저도 추이에 따라 유동적이라 학교마다 학사일정을 확정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은 교사들끼리 대책반을 꾸려 바이러스가 교문을 넘지 못 하도록 방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급선무다.

현재, 평상시와 다름없이 출퇴근하는 교사도 있고 재택근무를 신청한 교사도 있다. 재택근무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학교에 아이들이 없는데 굳이 학교에 나와서 일할 필요가 없어서다. 단지 수업만 없을 뿐, 공문 처리 등 흔히 잡무라고 불리는 행정 업무는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재택근무하는 교사들은 말 그대로 일하는 공간이 교무실에서 집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해진 근무 시간 동안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접속해 실시간으로 부과되는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한편, 개인정보보호나 안전교육 등에 관한 의무 연수도 원격으로 들어야 하고 수업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찔끔찔끔 개학이 늦춰지다 보니, 학교는 학사일정을 조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물론, 교육부를 탓할 일은 아니지만, 교사의 입장에서는 연기 발표가 날 때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해서 당혹스럽다. 그때마다 교과별 연간 평가계획을 재구성해야 하고, 진도 등 수업계획도 새로 짜야 하기 때문이다.

수능의 연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교내 시험이 무슨 대수랴마는 현장 교사들에게는 결코 소홀할 수 없는 업무다. 교육부 권고대로 수업일수와 수업시수의 감축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각종 시험에 대비해 학습 분량을 조정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특히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과 고3 교사들이 안절부절 못하는 이유다.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지난달 말 첫 번째 개학 연기 발표가 난 뒤, 3월 2일부터 오늘까지 변함없이 학교에 출퇴근하고 있다. 학교에 특별한 일이 있어서라기보다 집에서 정해진 근무 시간을 지킬 엄두가 나지 않아 평소대로 출근하고 시간에 맞춰 퇴근한다.


문제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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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출근한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재택근무 중인 동료 교사들도 대체로 복무규정을 잘 준수하고 있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 인접 교과 교사들과 수업계획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가 하면, 공문 내용에 대해 문의하기도 한다.

동료 교사들은 하나같이 교육청의 공문을 두고, 넌지시 재택근무를 지양하고 평소처럼 출퇴근하라며 종용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일부 교사들의 비뚤어진 행태를 성토하는 '민원' 때문에 일부러 발송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한 교사는 교육청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면서 '민원'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들려주기도 했다.

개중에는 실제와 다른 지적도 있고, 일부의 사례를 일반화시킨 것도 많다. 그런가 하면, '민원'이라고 말하기에 유치한 것도 있고, 설마 사실일까 싶은 인터넷 댓글 수준의 막무가내 험담도 있었다.

'민원'마다 아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공무원이라면 모두 공감할 테지만, 많은 교사들은 힘들어하는 이웃들에게 뭐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감염병의 공포로 경제활동이 마비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제때 월급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죄스러운 마음이다.

물론 '이 와중에 놀고먹는' 교사도 없진 않을 것이나, 단언하건대, 극소수다. 만약 재택근무를 신청한 상태에서, 엄연한 근무 시간에 다른 곳을 출입했다면 색출해서라도 일벌백계해야 마땅하다. 명백한 근무지 이탈로서 근무 태만에 대한 법적 처벌 규정이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극소수의 사례라고 해도 같은 교사로서 참담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재택근무 자체를 탓해서는 곤란하다. 코로나19의 지역 감염이 우려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권장되어야 하는 제도다. 더욱이 하루 종일 수백 명이 밀집되어 생활하는 공간 특성상 감염 우려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학교로 출근하거나 등교하는 일은 자제되어야 옳다.

'개념 없는' 일부 교사들로 인해 수십만 명의 교사 집단이 도매금으로 욕먹는 것도 안타깝지만, 정작 문제는 따로 있다. 교육청과 학교가 '민원'에 등 떠밀려,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심지어 해서는 안 될 일까지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교사의 학생 대면 상담과 개학 전 교과서 자율 배부 지침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집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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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들이 차를 타고 온 학부모에게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교과서를 나눠주고 있다. ⓒ 연합뉴스

  
일부 교육청에서는 마치 미담 사례인 양 두둔하고 있지만,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불러다 대면 상담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도 다수의 아이들과 한꺼번에 만나는 자리라면 위험할 수도 있다.

대면 접촉을 최대한 삼가고, 대신 전화나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상담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보통신기술 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학습의 영역까지도 비대면 방식의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다. 관리형 온라인 학습이 가능하도록 만든 'EBS 온라인 클래스'의 경우, 수십만 명의 학생이 동시에 접속해 공부할 수 있다. 이럴진대, 비대면 상담에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개학 전 교과서 배부는 학부모의 '민원'에 학교가 눈치를 본 대표적인 사례다. 거칠게 말해서, 자녀의 학습에 학교가 무관심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는 시늉에 불과하다. 더욱이 일부 학교에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교과서를 배부하는 모습이 여러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이를 모방하려는 학교가 시나브로 늘어나는 모양새다.  

우선, 교과서가 없어서 공부를 못 한다는 건 누가 봐도 설득력이 없다. 학업 부담이 크지 않은 초등학교 경우엔 돌봄을 걱정할지언정 학습에 대한 학교의 관심 부족을 탓하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관련 민원이 제기되는 경우는 십중팔구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다. 다만, 안타깝게도 수능에 목매단 그들에게 교과서는 그다지 쓸모 있는 책이 아니다.

100%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제한한다면 모를까, 교과서를 수령하기 위해 학교에 개별적으로 찾아오라는 건 자칫 감염의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 시간차가 있다 해도,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의 아이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돌아가는 길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PC방 등에서 '회포'라도 풀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물론, 학교에서는 '필요한 사람은 직접 수령해갈 수 있다'고 밝혔다. 당장 교과서가 필요하지 않다면 나중에 받아도 된다는 거지만, 꼭 필요를 느껴서라기보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아이들 대부분 친한 친구와 함께 학교를 찾아올 게 뻔하다. 이를 모르지 않을 학교에서 '자율'이라는 말로 눙치는 건 비겁하다.

그럼에도 교과서가 꼭 필요하다면, PDF 파일로 얼마든지 내려받을 수 있다. 교과서를 간행한 출판사 대부분이 홈페이지를 통해 교과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습 자료들을 PDF 파일로 제공하고 있다. 별도의 회원 가입을 하지 않고도 언제든 활용할 수 있어서, 인터넷과 연결된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있다면 딱히 교과서 배부에 애면글면할 이유가 없다.

지금은 전례 없는 비상 상황이다. 더더욱 학교는 최고조의 긴장 상태다. 학교 내에서 단 한 명이라도 감염된다면 그 파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교육과정과 학사일정, 수능과 대학입시 등 어느 하나라도 소홀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드라이브 스루 #개학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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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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