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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서, 꽃이 피어서... 그래도 이럴 땐 차를 돌리세요

[코로나19 속 봄 여행] 사회적 거리두기 하면서 여행하는 법, 조심할수록 좋습니다

등록 2020.03.25 17:19수정 2020.03.2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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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사진은 모두 네거티브 필름을 이용해 촬영 후 직접 스캔했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필름의 규격은 645 중형 포맷 Ektar100이며 해당 필름이 아닌 사진은 괄호로 명칭을 표기했습니다.[기자말]
지난 8일 일요일 아침. 일종의 책임감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중형카메라 1대와 135규격 1대, 각종 필름들을 함께 챙겼다. 행선지는 남쪽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어느 정도의 소비'였고, 두 번째 이유는 '봄과의 만남'이었다.

예년보다 1주일 가량 개화가 빨라서였을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야 할 3월 초순, 침실 창틀에서부터 이른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감염병으로 온 나라가 얼어붙었지만 봄의 색채는 변함이 없었다.

본인은 보통 여행을 떠나면 경비를 아끼기 위해 사먹는 끼니를 최대한 줄인다. 아침은 일찍 집에서 해결한 후 점심 한 끼는 배불리 사먹고 저녁은 먹지 않거나 미리 준비한 간단한 간식으로 대체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날은 한나절의 여행 동안 무려 두 끼를 일부러 사먹었다.

사람 대신 꽃을 만나다

첫 번째 행선지는 구례 산동이었다. 이맘때 산수유로 온 마을 노랗게 물드는 곳이다. 매년 30만명이 다녀가는 곳이라 평소 이 시기에는 19번 국도에서 지방도로 내려가는 것부터 기다림의 연속인 곳이다. 

지자체는 지역경제 위축을 무릅쓰고 과감히 올해의 축제를 포기했다. 2km 이상 연결되던 서행 차량의 행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식 주차장은 만차에 가까워 보였다. 오늘 여행의 본질은 그 인파에 섞이는 것이 아니었다. 유명하지 않은 포인트를 개발하여 한적하고 안전한 곳에서 이른 봄만 만나고 가면 될 일이었다.
 

산동면 외산리 멀리 지리산 위에 쌓인 눈. 햇살을 받아 노랗게 빛나는 산수유나무. ⓒ 안사을

   

햇살과 나무 채 가시지 않은 아침안개, 나무에 역광으로 비추이는 햇살. ⓒ 안사을

 
몇 번의 후진을 하고 농로를 건너 적당한 화각을 찾는 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장소를 만나게 된다. 이름난 곳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본문 소제목에 '사람 대신 꽃을 만나다'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더 정확하게는 꽃나무와 함께 사람의 흔적을 만난다고 말하고 싶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불편함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한가한 곳이라도 일을 하는 분이 있다면 다른 곳을 찾아서 떠났다. 이런 식의 이동이 거듭되면 이내 또 하나의 작은 여행이 된다.
 

산수유 한 송이 전지를 한 나무에 꽃 한송이가 피어올랐다. ⓒ 안사을


오전 11시쯤 산동면(산수유마을 소재지)을 나섰다. 원래 계획은 하동 쪽으로 향하여 섬진강을 끼고 드라이브를 한 후 강 건너편에서 광양 매화마을을 잠시 눈 속에만 담아두고 순천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혹시 전망이 괜찮은 곳이 나올까 싶어 망원렌즈도 챙겼다.

광양 매화마을은 해마다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오는 곳인데, 고령자가 많은 마을 주민들을 보호하는 등의 이유로 올해 지자체가 관광객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요구를 한 바 있다. 마을 어귀에는 '상춘객 방문 자제'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고도 했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향하는 지방도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3분도 채 가지 못해 멈추고 말았다. 광양으로 향하는 수많은 차량의 행렬이 움직이지 못하고 공회전만 하고 있었다. 멀리서나마 그곳을 보고 싶었던 나의 생각을 반성했다. 동시에 지자체와 마을 주민의 만류에도 그곳을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야속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사람 대신 꽃'이었기에 미련없이 차를 돌렸다. 19번 국도를 타고 순천으로 바로 내려가서 낙안읍성을 둘러본 뒤 와온해변의 석양을 담고자 하는 계획이 1분 만에 머릿속에서 완성되었다.
 

섬진강변 매화 곡성읍에서 압록으로 가는 길에 매화가 피어있다. ⓒ 안사을

     

봄까치꽃 매화밭에 가득 핀 봄까치꽃. ⓒ 안사을

   

순천시 서면 어딘가 이동중에 만난 두 나무. 산수유와 홍매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 안사을

 
600년째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

낙안읍성은 고창, 해미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읍성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이곳이 가진 차별점은 여전히 초가지붕 아래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살고 있다는 것이다. 600년이라 함은 태조 6년(1397년)에 왜구를 막기 위해 토성이 만들어졌고 세종 9년(1426년)에 석성으로 증축이 되었기 때문인데, 사실 이곳은 마한시대 때부터 삶의 터전이었다.

이곳에도 사람이 많으면 발길을 돌릴 생각이었다. 일요일이었음에도 주차장은 절반 밖에 차 있지 않았기에 마스크를 단단히 쓴 채 매표소를 지나 입구로 향했다. 커다란 천막에는 '코로나19발열검사출입구'라고 쓰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곧바로 성곽 위로 올랐다. 마주 지나친 사람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사람이 적어서 가깝게 스치지 않아도 비껴가기가 가능했다. 초가지붕 위로 비추이는 따스한 햇살은 현재의 심각함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평온하기만 했다.
 

낙안읍성 입구 (C200)발열검사 진행 중 ⓒ 안사을

   

성곽 위에서 초가지붕 사이로 산수유꽃이 몇 그루 보인다. 가을이 되면 산수유의 노란 빛이 은행나무로 옮겨 갈 것이다. ⓒ 안사을

 
성곽의 길이는 총 1.4km정도이니 모두 걸어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중간에 가파른 계단이 있지만 높지 않아서 어린아이도 충분히 걸을 수 있다. 다만 성곽에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어서 인파가 많을 때에는 옆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집집마다 보이는 사람의 흔적은 이곳이 단순한 테마파크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어떤 집은 장독이 많고 어떤 집은 밭에 작물이 크고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체험을 제공하는 곳들도 많지만 그와는 별도로 실제 삶을 위해 살림을 꾸리는 모습이 특별한 곳이다.
 

사람 사는 모습 살림집의 느낌이 물씬 난다. ⓒ 안사을

   

성곽 높은 곳에서 낙안읍성에서 가장 유명한 촬영 지점일 것이다. 전망이 제일 좋은 곳. ⓒ 안사을

 
이곳에서도 소소한 꽃구경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성곽 바깥에는 매실밭이 있었고 드문드문 산수유꽃과 동백꽃이 피어 있었다. 디귿자로 성곽을 걷고 미음자가 시작되기 직전에 내려와 마을을 가로질렀는데 꽃들 사이로 가야금 병창 소리가 들려왔다. 관광객 대상 체험은 현재 중단 상태이니, 아마도 문하생의 소리였을 것이다. 

그곳은 실제 이곳에서 살았던 가야금 병창으로 유명했던 오태석 명인의 생가였다. 흘러나오는 소리의 파동은 물리적으로 계절마다 같겠지만 사람이 듣는 소리는 봄 다르고 가을 다를 것이다. 이날의 소리는 당연히 봄처럼 살랑살랑 불어왔다.
  

성 밖 매실밭 매화꽃에 봄 햇살이 드리우고 있다. ⓒ 안사을

 

동백과 산수유 하트 모양 동백나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노란 산수유. 오태석 생가는 사진 바깥 왼편에 있다. ⓒ 안사을

 
당일치기 여행의 마무리는 석양으로

두 시간 반 동안 여유롭게 마을의 고즈넉함을 즐긴 후 근처 사찰 '금둔사'에 잠시 들렀다가 와온해변으로 향했다. 와온해변은 순천만의 동편에 있고, 서편의 화포해변을 마주보는 위치이다. 용산전망대에서 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다.

또 다른 육지를 마주보는 구조 때문에 이곳에서는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해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갯벌과 하늘이 서로 붉은 빛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만들어지는 석양 풍경이 일품이다. 

사람이 있는 곳을 피해 적절한 장소를 물색했다. 세 척의 배가 정박 중인 작은 방파제 옆으로 차를 댈 수 있었다. 해가 넘어가기 전부터 후까지 약 2시간 동안 머무르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빛을 담았다. 화려한 일몰은 아니었지만 어둠에도 색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포근한 하늘이었다.
 

해가 진 직후 일몰의 하늘은 해가 진 후에 더 아름답기 때문에 계속 더 지켜봐야 한다. ⓒ 안사을

   

물결의 기록 전 사진보다 40분이 더 흐른 뒤. 어둠은 훨씬 진해졌지만 노출 시간을 길게 주어 더 밝게 느껴진다. 30초동안 물결의 흐름을 담았다. ⓒ 안사을

 
어둠이 너무 진해지기 전에 자리를 옮겼다. 까만 하늘이 되면 아무리 장노출을 해도, 풍경은 밝게 담기겠지만 붉은 빛 대신 남색이 사진을 가득 메울 것이다. 오늘 여행의 마지막 사진이기에 더욱 신중히 노출 계산을 하고, 하늘을 짙게 하기 위해 암부는 과감히 포기했다.
 

까맣고, 파랗고, 붉다 1분동안 셔터를 열어 밤하늘의 엷은 빛을 기록했다. ⓒ 안사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이 병들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개인의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다. 요즘 다시 문을 연 클럽에 손님이 가득하다고 한다. 안전하고 행복한 여가선용을 위해, 사람이 북적이는 실내 오락보다는 여지없이 다가온 봄을 찾아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단, 유명한 관광지를 피하고 사람 대신 꽃을 찾아, 나무 한 그루에서라도 봄의 정령을 만나기를 바란다.

또한 경제의 순환을 위해 적절한 소비가 필요하다. 자신이 속한 지역의 상황에 맞게 안전한 동선을 확보한 상황에서 개인의 지갑을 풀어야 한다. 지금은 '이것을 소비하면 나에게 어떤 이득이 오는가'를 생각하기보다 '이것을 소비하여 누구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가'를 고려하여 이타적인 소비를 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의 지갑이 비어 있다. 이를 위해 행정부와 국회는 함께 머리를 맞대어 하루속히 '지역상품권 배부' 등의 경기부양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이 위기를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면, 필자는 다음에 부과될 세금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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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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