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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1648화

컵밥 먹으며 컨테이너 생활... 대구 의료진 "미래 안 보여"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 ②] 감염에 대한 불안 심해... 휴식 부족하고 시간 외 수당 지급도 불확실

등록 2020.03.23 19:47수정 2020.03.2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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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이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한가운데 놓인 보건의료노동자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합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코로나19 일일 상황보고 체계를 통해 개별 의료기관의 문제를 중앙에서 취합하고, 지방의료원지부, 특수목적 공공병원지부 등 의료기관 특성별 간담회를 가지며 현장 고충을 한데 모아 제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에 등장하는 인터뷰는 모두 보건의료노조 산하 지부의 노동자들의 목소리임을 밝힙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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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공공병원 외부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의 내부 ⓒ 보건의료노조

 
감염병전담병원인 대구 소재 ○○공공병원은 재활전문병원이라 음압병실은 하나도 없다. 궁여지책으로 병원을 통째로 통제하고 건물 앞에 컨테이너 박스 50동을 설치했다. 탈의실, 대기실, 화장실 등 모든 설비는 병원 밖으로 빼고 보호복을 입어야만 병원에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실상 병원 전체를 격리병동으로 만든 셈이다.

A 보건의료노동자는 '(보호복 탈의 후 이동 시) 야외라서 밤이 되면 추워서 막 뛰어서 온다'며 '반팔 입고 땀에 젖어 있는데 감기에 걸려 아플까 봐 너무 걱정'이라고 야외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근까지는 추워서 문제였지만, 조금이라도 더워지면 에어컨도 없는 컨테이너 생활을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는 게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보건의료노동자가 이용하는 간이화장실 ⓒ 보건의료노조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도 어려운 조건이다. B 노동자는 "식당이 따로 없으니 일하다가 컨테이너 박스에서 마주 보고 식사할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지급되는 도시락도 대기하다 먹을 공간이 없어 안 먹고 포기한다'고 말했다. 화장실은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이 화장실을 쓰고 있다. C 노동자는 "화장실이 냄새나고 푸세식이다 보니 출근해서 사람들이 먹지를 않는다"며 "컨테이너 박스에는 수도라인이 없으니 손을 씻으려면 어쩔 수 없이 샤워실이나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명감 있지만, 일한 만큼 보상이 있어야 힘이 날 텐데..."

○○ 공공병원은 재활치료실 소속 노동자가 전체 인력의 절반이다. 원래 평일 주간, 병원 내에서 일했던 치료사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3교대에 야외에서 일하고 있다. 야외에서 경비를 서거나 환자 입퇴원 시 보호복을 입고 인계하는 등 기존의 고용계약과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악화된 노동조건을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치료실 소속 D 노동자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병원을 위해서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시간 외 수당과 야간수당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막막하다'는 심정을 전했다.

○○ 공공병원은 '총액인건비제도'로 인건비 총예산이 묶여 있다. 주당 노동시간이 80시간에 가까운 직원들이 많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지침이 없는 상황이라 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E 노동자는 "총액인건비 때문에 평소에도 시간 외 근무는 미리 승인을 받아서 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했다"며 '전체 예산이 묶여 있으니 회사(병원)도 곤란하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감염에 대한 불안감도 상당해


대구 소속 노동자의 처우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된다. 복지부 지침으로 공공병원에서 대구로 파견된 인력에 대해서는 근무수당, 위험수당과 함께 별도의 출장비가 지급되고 파견 종료 후 자가격리 희망자의 경우 2주간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다. 파견 기간도 기본 2주로 정해져 있고, 동의가 있어야만 연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구 감염병전담 지정 병원 소속 노동자의 경우 위험수당은커녕 코로나19 병동 근무 후 자가격리 기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구시 감염병전담병원인 □□ 공공병원 소속 노동자는 "주말까지 확진자병동에서 일하고 검사결과도 안 나왔는데 일반 병동으로 출근하라고 한다"며 "레벨 D 보호복을 입고 근무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다는 게 병원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 공공병원은 감염병전담병원 지정 후 닫았던 일부 병동을 재오픈하면서, 코로나19 병동에서 일하던 간호 인력 일부에게 즉시 출근을 요구했다. 복지부 지침상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근무할 시 원칙적으로 격리가 불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원할 경우 유급으로 자가격리 기간을 보장하는 파견인력에 대한 대우와 상반된다.

 

복지부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파견 의료 인력 지원 운영 지침>. 파견 의료진의 경우 희망시 종료후 자가격리 기간을 보장하는 지침이다. ⓒ 복지부

 
병동 출근을 요구받은 F 노동자는 "열나는 사람도 있고 머리 아픈 사람은 태반인데 바로 환자를 보라 한다"며 "내가 전파자가 돼서 환자들을 감염시킬까 봐 너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G 노동자는 "우리 병원의 기존 환자들은 대부분 60~70대 이상의 기저질환자들이다"며 "우리는 다 희생하고 있다고 하지만 감염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말했다.

격리지를 이탈해 병원에 오는 자가격리자들에 대한 불안감도 상당했다. 전담병원 외래 파트에서 일하는 H 노동자는 '자가격리 환자인지 모르고 진료하고 검사하고 다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됐다'며 "개인정보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정보 공유는 돼야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가격리자나 확진자 본인이 밝히지 않으면 의료기관에서 알 수 없는 시스템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다.

"미래가 안 보인다" 장기전 대비 위해선 처우개선 시급해
 

대구지역 보건의료노동자들은 한목소리로 끝이 정해져 있지 않아 더욱 힘들다고 말한다. J 노동자는 "미래가 안 보이고, 종료점이 안 보이기 때문에 피곤도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다른 전담병원에서 일하는 K 노동자는 "파견직원들은 2주 일하고 2주 공가를 받지만, 우리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연속으로 일해야 한다"고 피로감을 호소했다.

숙소에 대한 확보가 늦어지고 식대 등에 대한 지원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장기간의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데 한몫한다. J 노동자는 "병원 내 빈 침대에서 살고 있다"며 "시에서 (집을) 구해준다고 하지만 병원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을 정해줘 가서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직원은 불편함을 못 이겨 월세방을 구해서 살고 있다. 
 

대구 보건의료노동자들이 먹는 도시락. 일하는 동안 먹는 한 끼 식사는 도시락으로 지급되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식사도 문제다. 숙소에 사는 경우 조리를 할 수 없어 하루 두 끼의 식사는 간단식으로 해결한다. 병원 인근 모텔에서 출근하고 있는 M씨는 '숙소에서는 컵밥이나 라면같은 것을 먹고 출근해서는 도시락을 먹는데 이게 가장 힘들다' 고 토로했다. 식대에 대한 기준은 없냐고 묻자 옆에 있던 K 씨는 "가이드라인이 아무 것도 없다"며 "식비는 얼마다 이렇게 정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구 보건의료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포기하며 코로나 19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함을 견디며 열악한 노동조건을 묵묵히 감수하는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는 보건의료노동자에게 일한만큼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코로나 19와의 장기전을 위한 첫 번째 대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안태진은 보건의료노조 정책부장입니다.
#대구 #코로나19 #대구의료진 #대구보건의료노동자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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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에서 일하다 퇴직 후 세계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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