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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1651화

"올해 한식 차례는 생략하자"는 아버지… 코로나19에 제사도 '취소'

여전히 대학 입학 대기중인 큰조카... 5월엔 우리 가족 만날 수 있을까

등록 2020.03.23 21:37수정 2020.03.2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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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비돼 있는 선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한식 차례를 처음으로 생략하자고 아버지가 제안했다. 아버지의 결정인만큼 올해 한식에는 선산을 찾을 일은 없어 보인다. ⓒ 김동이

 
"올해 한식 지사(제사, 차례)는 생략해야겄어. 시상이 이런디 워쩌겄냐. 괜히 지사 지내겠다고 이동하다가... 혹시 모르는 일 아녀. 그냥 (한식날) 일 봐."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천안, 대전, 태안에 사는 자식들이 아버지가  아버지가 계시는 세종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아버지의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집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한식 차례를 건너 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종갓집인 우리집은 어려서부터 예절과 관혼상제를 엄격히 따지는 엄한 할아버지 아래서 일년에 거의 매달 제사를 지냈다. 제사 시간도 엄격했다. 꼭 밤 12시에 제사가 시작됐다. 어린 나와 동생들은 배가 고파 징징대기 일쑤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할아버지 생전에는 제사 때 새벽 밥 먹기가 보통이었다.

모든 고생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몫이었다. 20대 초반에 당시 독자였던 아버지한테 시집와서 그 큰 종갓집 살림을 작은 몸집으로 다부지게 책임졌다. 한마디로 작은 거인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우리 집안에 시집 와 30여 년을 집안 제사는 물론 종중의 대소사까지 도맡으며 손에 물이 마르지 않는 분주한 삶을 사셨다.

코로나19에 처음으로 제동 걸린 한식 차례

1980년대 중반 할아버지께서 소천하신 이후에는 그나마 집안 제사가 줄었다. 아버지와 상의 끝에 아버지의 직계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제사는 그대로 모시고, 증조할아버지 윗대까지는 한식에 모여 한꺼번에 제사를 올리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때부터 매달 제사가 그나마 두 번의 명절과 한식,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이렇게 5번으로 줄어든 셈이다.

제사 시간도 두 시간 정도 앞당겨졌다. 제사 때마다 12시 자정을 기다리면서 주린 배를 붙잡았었지만 밤 10시로 앞당겨진 까닭에 그나마 사정은 나아졌다. 어머니 생전까지는 이렇게 제사를 모셨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부터는 또다시 집안 제사에 변화가 생겼다. 일년에 5번의 제사도 어려워졌다. 이런 연유로 아버지와 장남인 나는 또 다시 고민 끝에 기존에 모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도 한식 차례에 같이 모시기로 결정했다. 즉, 일년에 두 번의 명절과 한식, 그리고 어머니 제사까지 4번을 지내게 된 셈이다.

그렇게 지난해까지 17년을 단 한 해도 빠짐없이 집안 제사를 모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19가 닥친 올해 한식(4월5일) 차례에 대한 아버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필 아버지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세종시는 20일 기준으로 41명의 확진자가 발생, 코로나19에 불안한 상태다. 

또, 여동생이 사는 충남 천안시도 20일 기준 충청남도 전체 확진자 119명 중 98명이 확진을 받았다. 막냇동생이 살고 있는 대전도 20일 기준으로 22명의 확진자가 나온 상황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충남 태안군도 지난 18일 첫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첫 확진자가 태안군에 거주하는 주민이 아니라 충북 진천에 사는 펜싱 선수라는 것이다.
 

차례를 준비하는 가족들 올해 4월 5일 한식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한식차례를 생략키로 해 온 가족이 모여 차례 지내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 김동이

   
아버지는 "코로나19 사태가 이렇게까지 길게 갈 줄 몰랐는데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어쩔 수 없이 한식 차례를 생략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면서 "얘들도 있는데 혹시나 이동 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잖나. 생략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셨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생략한 적이 없고, 가족끼리 지내는 한식인데 무슨 일이 있겠냐"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세종 집에 와서 한식 차례를 지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제사를 지내려면 재래시장에도 가서 제사 흥정도 봐야 하고, 이동하는 중에 휴게소 등도 들를 텐데 불특정다수가 모이는 곳에 갔다가 혹시라도 모르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물론 시일이 좀 남아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우리집 한식 차례는 처음으로 생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아버지의 일상도 바꿔놓았다. 이전에 아버지는 경로당에 가서 지인들을 만나 무료함도 달래고 점심식사도 해결했다. 하지만, 세종시에 확진자가 발생하고 경로당이 폐쇄되면서 생활이 달라졌다.

집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끼니도 아버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데 반찬이 문제였다. 아버지는 예전에는 인근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구입해 조달했다. 그런데 외출이 조심스러워져 반찬 사는 것도 여의치 않다.

이런 아버지의 상황을 전해들은 나와 동생들이 집에서 직접 만든 반찬을 택배로 보내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구입해 드리고 있다. "참 편리한 세상이 됐구나"라며 고맙다는 아버지는 "그래도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돼서 경로당에도 가고 여행도 하고 눈치 안보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날이 와야지"라고 하셨다.

축하 속 대학 입학을 꿈꿨던 큰조카
 

코로나19로 보기 어려워진 단상 요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경로당이 폐쇄되고 행사가 취소되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 김동이

 
한편, 코로나19사태 장기화로 가장 실망하는 가족 구성원은 단연 큰조카였다. 여동생의 큰 아들인데 올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해 고3의 굴레를 벗어난 자유로운 캠퍼스 생활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학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지 못하고 천안 집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오는 28일부터 어렵게 따낸 대학 기숙사에 입사한다는 것이다. 지금 조카는 한 학기 등록금이 만만찮은데 한 달 이상을 수강도 못했음에도 등록금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나타냈다. 한 달의 공백만큼 후반기 등록금을 감해 주든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들 둘을 둔 막냇동생도 고민을 털어놨다. 아이들의 방학이 4월초까지로 한 달이 더 늘어났다. 아이들에 대한 돌봄 문제뿐만 아니라 여전히 운영하는 학원을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막냇동생은 "문을 닫거나 수업이 중단된 학원도 있다. 하지만, 00가 다니는 수학학원은 운영하고 있는데 보내야 할지 고민이다"라며 "일단은 마스크를 씌워서 학원에 보내고는 있지만 걱정은 된다"고도 했다.

4월 5일 한식과 4월 6일 개학이 다가온다. 이미 우리 가족 한식 만남은 물 건너간 상태다. 그 다음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코로나19를 말끔히 털어내고 건강하고 웃는 얼굴로 가족들의 만남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대한다.
#코로나19 #한식 #차례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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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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