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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고치는 게 없던 아빠가 기억은 왜 잃었을까

MBN 예능 프로그램 '모던패밀리'의 이재용 전 아나운서 부모님을 보며

등록 2020.03.26 09:42수정 2020.03.2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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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MBN의 예능 프로그램 <모던패밀리>에서 이재용 전 아나운서가 아들과 함께 요양시설에 있는 부모님을 찾아 뵙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아버지께서 늘 같은 옷을 고집하셔서 외출할 때마다 옷 갈아입히는 게 힘들다고 했다.
 

MBN의 예능 프로그램 <모던패밀리>에 출연한 이재용 전 아나운서. ⓒ MBN 화면 캡처

 
어머니께서는 제작진들을 보며 "저분들 시장해서 어떡해…"라는 말을 하고 또 하셨다. "이따가 따로 식사하신대요." 대답을 드려도 조금 후면 같은 말을 되풀이 하셨다. 분명 좀 전에 손주와 여자친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문득 떠올랐다는 듯 "여자친구 지금도 만나니?" 하고 물으셨다.

3월 7일 방송에서는 삼십 년 세월을 사셨던 동네에 찾아가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늘상 걸었던 길을 거닐고, 손주가 다니던 학교를 지나고, 자주 가던 빵집과 식당에 갔다.

"집에 가기 전에 꼭 여기 들러서 빵을 샀어. 그래, 이 빵! 매일 샀었는데… 저 언니 기억나."

어머니는 많은 것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손 꼭 잡고 걸으시는 부모님의 모습은 진심 행복해보였다. 남들에게는 그저 치매 부부일지 몰라도 정작 당신들은 세상 둘도 없는 잉꼬부부였다.

"제가 어디에 갔었다고요? 기억이 안 나네요…"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셨는데, 처음 이사했을 때의 이야기며 추억이 서린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며 전부 다 기억하고 계셨는데, 인터뷰를 위해 카메라 앞에 앉으신 부모님은… 다시 치매 환자로 돌아와 있었다.

아들 손주와 함께 그토록 아련한 추억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건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하셨다. 순간 나는 2014년 여름 엄마에게서 아빠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그때처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는 아빠가 좀 이상하다고 했다. 동생의 결혼 날짜를 자꾸 물으며 "아, 그럼 열흘 남았구나?" 하고 엉뚱한 날짜 계산을 하신다고 했다. 아빠 친구들에게는 벌써 오래 전부터 "술을 마시면 집을 잘 못 찾겠어"라고 하셨단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실 때가 많아지셨다고 했다.

가족의 마음을 수없이 멍들이는 병, 치매. 아빠의 치매는 몇 년이 지나는 사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치매 스토리는 계속해서 쌓여갔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내가 전화를 걸어 "엄마는 어디 가셨어요?" 하면 "응.. 음…" 머뭇거리다가는 "응, 안경점에" 하고 뚱딴지같은 대답을 하곤 했던 건 치매 초기, 가벼운 스토리에 불과했다.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말을 시작하자마자 눈물부터 나올까 봐 남편에게도 전하지 못했던 그날의 일.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삼 년이 지난 최근에야 이런 일도 있었노라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직접 본 일도 아닌데, 이제는 오래 전 일인데, 그런데도 울먹이지 않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동생과 함께 외출을 하려고 차를 타는 중이었다고 한다. "이게 잘 안 돼…" 하는 아버지 소리에 차 뒤쪽으로 간 동생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아버지가 트렁크에 들어가서는 좌석처럼 편안히 앉지를 못하겠으니 자꾸만 이게 잘 안 된다고 하시더라는 거였다.

그럴 때 아빠는 머릿속 어디쯤을 헤매고 계셨던 걸까. 엉킨 실타래처럼 엉망이 되어버린 생각과 기억들 속에서 정답을 찾아내려 애쓰고 계셨을까? 아님 하얀 도화지같은 순백의 나라에서 아무 걱정이 없으셨던 걸까. 나는 부디 후자이길 기도했다.

차라리 어디 한 군데가 아픈 거면 째고 수술해서 고치고 정성을 다해 곁에서 간호하겠노라고, 그런데 이건 어떻게 노력으로 고쳐볼 수 있는 병이 아니질 않냐고 엄마는 절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엄마라면 분명 온 마음을 쏟아 아빠를 간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가 앓고 있는 병은 고칠 수도 없고 뭔가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그래서 그저 받아들이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병이었다. 가족들의 마음에는 자꾸만 자꾸만 비가 내렸다.

가끔은 아빠가 정신이 드셨는지 거실에 놓인 화분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씀하셨다고 한다. "저거 내가 다 했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아픈 마음을 누르고 아빠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대답하셨단다. "응. 그랬지. 이젠 내가 다 할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렇게 정신이 잠시 드셨었나보다 싶은 생각이 들 때면 더 마음이 쓰렸다. 제 정신이 돌아와 당신이 치매라는 걸 깨닫게 될까 봐, 그래서 무기력해진 당신의 모습에 말할 수 없이 괴로울까 봐 너무나 걱정이 됐다.

그냥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본인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치매 환자는 정작 본인은 행복하다잖아요'라는 말이 위로가 되기도 하는 그런 나날이었다.

아빠는 목수라 해도 될 만큼 손재주가 좋으셨다. 어릴 적 우리집은 아빠가 손수 만든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액자나 램프, 벽걸이 같이 비교적 간단한 것들에서부터 어항이나 그네, 시소까지 아빠는 못 만드는 게 없고 못 고치는 게 없었다.

우리집 맥가이버. 아빠는 정말 그랬다. 우리는 물건이 고장나면 AS센터에 전화를 거는 게 아니라 아빠를 먼저 찾았다. 그랬던 아빠가 커튼 하나 달지 못해 제부가 하는 것만 뒤에서 멀뚱히 쳐다보고 계셨다고 했다. 그런 아빠의 뒷모습이 꼭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아서, 그 등이 하도 쓸쓸하고 아파서,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숨죽여 눈물만 흘렸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 나를 지탱해주던 아름다운 추억들뿐 아니라 돌아보기 싫었던 일들까지도 점점 희미해지는 것, 내 삶을 이루고 있던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 둘 타인이 되어가는 것, 그건 나를 잃어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부모 곁에서 가족들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느 행복했던 순간이나 진짜 고생했던 순간에 머물러 계시더라구요." 이재용 전 아나운서의 말처럼 치매환자들에게는 점점 좁아져가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그것을 다른 이들은 과거라 부르고 그분들은 현재라 부른다. 그렇다면 가족들이 할 일이란, 무너지는 가슴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쓸어담으며 함께 시간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

이재용 전 아나운서가 하듯, 머물러 계신 그 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그 시절의 아이가 된 듯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울고, 거듭 물어보시면 거듭 대답하면서. 우리가 어릴 때 부모님께 귀찮도록 같은 것을 묻고 또 물으며 세상을 배워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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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손 맞잡고 함께 걷는 한 남자, 그리고 꽃같고 별같은 세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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