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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만명 신상공개는 강간문화 대항한 '금융실명제'다

[주장] 텔레그램 n번방 이용자 전원 신상공개가 필요한 이유

등록 2020.03.25 07:32수정 2020.03.2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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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20대 남성 A씨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A씨가 텔레그램에서 유료로 운영한 이른바 '박사방'이라는 음란 채널에는 미성년자 등 여러 여성을 상대로 한 성 착취 영상과 사진이 다수 올려졌다. ⓒ 연합뉴스

 
버닝썬 그리고 김학의 사건 때에도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구하라씨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선 애도의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도저히 언어가 없었다. 타인의 글을 읽고 공유하는 것 이상으로 언어가 생겨나지가 않아서 계속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문제로 거대한 비명과 절규가 터져나오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몸은 계속 아프고, 말을 하면 몸이 더 아프다. 정확한 언어는 대개 통증을 씻어주지만 그 언어를 찾지 못하면 말을 할수록 아프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그램 n번방 26만 명 신상공개'에 대한 여러 반응들을 보면서 해야 할 말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는 모든 범죄자의 신상공개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그가 성범죄자이든 아무리 악독한 연쇄살인마이든 인권의 관점에서 신상공개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판에 의한 법적 처벌 이상의 가중처벌이며, 처벌 이후 범죄자의 자기 반성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대중의 즉자적인 증오를 부추기고 거기에 영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근대 형사법에서 피의자·피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들에 반영된 정신을 훼손하는, 즉 근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전제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내가 지금 26만 명의 신상공개라는 의제에 대해 느끼는 건 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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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 청원. 24일 오후 1시 53분 현재 181만9928명이 동의했다. ⓒ 청와대국민청원 갈무리

  
인권의 관점에서 신상공개에 대해 반대한다는 말들이 논점 일탈로 느껴진다. 통상의 신상공개 요구가 법적 절차와 무관하게 대중적 공분에 의한 처벌과 복수를 원하는 것이라면, 작금의 신상공개 요구는 이론이나 언어 이전에 아래로부터 제기된, 강간문화에 대항하기 위한 사회 정책처럼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의자들의 인권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대중적 증오의 발현이 아니라, 심각한 강간문화에 아파하고 분노하는 여성들이 선취해 제기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데, 이 정책이 진지하게 상상되거나 정교한 언어로 논리화된 걸 (내 짧은 지식으로는)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강간문화'라고 지시되는 어떤 구조·관행·문화가 이 사회에 넓게 퍼져 여성들의 몸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왔다는 사실 자체는 '익숙한' 일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운동의 많은 부분은 바로 이에 대한 저항이었다.

특히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강간문화 폭로는 온라인 공간에 기반하고 있었다. 가령 삼년상 치른 지도 오래된 '메갈'과 미러링이라든지, 소라넷 폐쇄 운동, 카카오톡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의 몸을 품평하는 문화 등 n번방이 크게 이슈화된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모든 문제들이 다 이어져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이런 강간문화들이 갈수록 '익명의 개인들'에 의해 온라인 세계의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스며들며 암약한다는 점에서 문제라 하겠다.

그러나 요 몇 년은 온라인 기반의 강간문화의 실체가 단순히 하나둘 드러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을 드러내고 그것과 싸우면서 하나하나 바로잡고자 했던 것이 지난 몇 년이었고, 그 주체가 바로 지금 n번방에 분노하는 젊은 여성들이다. 말하자면 온라인 강간문화와 싸우는 데 경력과 경험치가 있는 현장 베테랑들이다. 그런 '베테랑'들이 지금 '26만 명의 신상공개'를 의제로 삼았다면, 일단 그 의미를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를테면, 26만 명의 신상공개는 강간문화에 대한 '금융실명제'와 같은 방식이라고 느끼고 있다. 우선, 그간 강간문화라고 불러온 것이 26만 명이라는 명징한 숫자가 됐을 때, 즉 강간문화가 계량화돼 26만 명이라는 숫자로 나타났을 때, 까마득한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알고는 있었겠지만 일종의 확인사살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저 26만 명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 26만 명은 응달에서 활동하다 사람이 나타나면 흩어지기 바쁜 벌레들이 아니다. 사진과 영상을 빌미로 피해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이 문제를 취재하고자 나선 기자까지도 위협하면서 여성들의 저항을 봉쇄하려고 한다.

거기에 핵심 기제는 단연 '익명성'이다. 스스로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언어화하기도 까마득한 범죄(나는 여러 의미에서 아우슈비츠를 떠올렸고, 이건 정말 인륜에 반하는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라고 불러야 마땅한 것 같다)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며, 동시에 익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갖가지 폭력을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26만 명에 대해서, 그리고 온라인 강간문화에 대하여 '금융실명제'처럼 그 이름을 다 까발려 버리면 어떨까.

두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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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n번방' 이용자 수는 26만 명으로 알려졌다. ⓒ 오마이뉴스

 
이건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하나는 음지에 숨겨진 것들을 투명하게 양지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명성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전제조건이고, 투명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유착과 비리와 범죄가 민주주의를 좀먹곤 한다.

마찬가지로 음지에서 음지만을 지향하는 강간문화에 '햇볕'을 비춰 그것을 투명하게 드러낼 때, 여성들도 불신을 거두고 이 민주공화국을 신뢰하고 기댈 수 있을 것이다. 즉, '강간문화 실명제'는 투명성이라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를 함축하고 있으며 한국사회가 공동체로 존속하기 위한 제도로서 작동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는 국가가 '사적 영역'에 개입해 폭력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해 오는 과정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운동이다. 19세기에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자본가와의 사적으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사적 영역에서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노동조건, 산재사고를 겪던 노동자들이 뭉쳐 투쟁함으로써 오늘날 헌법에 기입된 '노동3권'과 노동관계법을 얻어냈다. 이것은 약자의 권리를 위해 국가가 의무적으로 개입하도록 만든 운동의 성과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들은 '가정'이라는 또 다른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약자에 대한 폭력, 즉 가정폭력에 국가가 개입하도록 만들어 왔다. 즉, 사적 영역이라는 이유로 방치돼온 부정의한 폭력에 대하여 국가가 개입할 것을 요구하고 법제화한 것이 일련의 진보적 사회운동의 역사였다.

마찬가지로 익명성과 통제 불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온라인 영역 역시 국가의 통제와 개입에서 아주 벗어나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상상하기엔 온라인 공간이 국가폭력으로부터 피난처의 역할을 하겠지만, 한국사회에서 겪어온 온라인 공간의 실상은 그와는 아주 다르다.

지난 몇 년간 페미니즘 리부트가, 사적 영역으로만 취급되어온 온라인 공간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절박하게 증언해 왔다. 익명성에 기반해 이뤄지는 신상털이와 조리돌림은 많은 사람들을 자살로까지 몰아간 사실상의 집단 살해였고, n번방이 보여주듯 온라인 공간은 집단적인 강간과 고문, 학대를 용인하고 은폐시켜줬다. 온라인 공간은 평화롭고 모두가 평등한 공간이 절대 아닌 것이다. 노동시장과 가정이 언제든 계급과 젠더 위계에 의해 폭력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인 것처럼.

이슈의 초점을 가해자에게

비상한 시국, 비상한 문제에 대해서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YS(김영삼)가 금융실명제를 깜짝 통과시킨 것처럼, 강간문화라는 음습하고 질긴 구조 역시 26만 명의 신상공개라는 비상한 대책 없이 제대로 해결되기 힘들다.

피해자는 최대한 가려지고 보호되는 상태에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이슈의 초점을 피해자에서 가해자에게 옮겨오는 것이란 점에서도 중요하다. 물론 26만 명의 신상을 공개한다고 강간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을 계기로 온라인 기반의 강간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익명성'에 기대는 가해자들을 잡아내고 그 구조를 개선할 정책에 대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한 적이 없었을까? 과문하게도 나는 몇 가지 사례밖에 안 떠오른다. 한국에서는 친일파 명단을 작성해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다. 마찬가지로 나치 부역자들도 늘 공개됐다. 역사의 응달에 숨어 학살과 전쟁범죄에 가담했던 이력을 지우고 싶어하는 범죄자들을 기억하도록 하는 데도 '투명성'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아우슈비츠를 떠올리게 만드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그 명단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최성용씨는 정의당 의견그룹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기획국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성공회대학교 국제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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