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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죽으나 병들어죽으나..." 탑골공원 100m 줄 어쩌나

[데이터로 본 사회적 거리두기 ①] 종로 일대 노인들 전체 수는 줄었지만

등록 2020.03.30 07:18수정 2020.03.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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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우리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서울시와 KT가 제공하는 '서울생활인구' 데이터와 현장 취재를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증적으로 알아봤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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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탑골공원 돌담길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탑골공원은 2월 20일부터 문을 닫았다. ⓒ 선대식

 
25일 오전 10시 서울 탑골공원 돌담길. 한산한 거리에 노인들이 한 명씩 나타나 다닥다닥 붙어 줄을 섰다. 이곳은 무료급식소 앞이다. 오전 11시가 되자, 100명이 넘는 노인들로 인해 긴 줄이 만들어졌고 좁은 돌담길은 혼잡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기간'이 무색했다.

박아무개(71)씨도 줄을 섰다. 사업이 망해 1년 전부터 이곳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빵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되지 않는지 물었다. 박씨의 답이다.

"우린 다들 배고픈 사람들이다. 나처럼 노숙하거나 쪽방 노인네들이 많다. 다른 급식소는 문을 닫아서, 밥을 얻어먹을 데가 없다. 여기 탑골공원 근처 두 군데만 밥을 주니까 여기 많은 사람들이 나온 거다. 여기에서 못 얻어먹으면 굶는다. (코로나19가) 위험한데, 굶어죽거나 병들어죽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곧 무료급식소에서 노인들에게 빵과 요구르트를 나눠줬다. 250명 분은 순식간에 동났다. 노인들은 한 끼 식사를 들고 곧 사라졌다. 탑골공원 뒤쪽의 또 다른 무료급식소에서도 많은 노인들이 줄을 서 기다린 뒤 주먹밥을 받고 사라졌다. 탑골공원 돌담길은 곧 한산해졌다.
  
[종로1·2·3·4가 70대 남성 수] 1월 8일 7348명 → 2월 5일 5874명 → 3월 4일 4721명

코로나19 이후 탑골공원 일대를 찾는 노인들의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오마이뉴스>는 서울생활인구 데이터를 통해 1~3월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탑골공원 일대를 포함한 서울 종로1·2·3·4가 70대 남성의 숫자를 분석했다. 서울생활인구는 서울시와 KT가 공공빅데이터와 통신데이터를 이용하여 추계한 서울의 특정지역·특정시점에 존재하는 모든 인구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타나기 전인 1월 8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1·2·3·4가의 70대 남성 생활인구는 7348명이었다. 이 수치는 1월 중하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1월 말 설 연휴 직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하자 2월 5일 70대 남성 생활인구는 5874명으로 줄었다. 1월 8일에 비하면 20% 줄어든 것이다.

   
  
70대 남성 생활인구는 2월 말 다시 한번 큰 폭으로 줄었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고 사망자가 연달아 나온 때였다. 서울 확진자도 크게 늘기 시작했다. 결국 3월 4일 4721명으로 최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코로나19 확산이 주춤해지자, 70대 남성 생활인구는 조금씩 늘었다. 3월 18일에는 다시 5000명 선을 넘었다.

코로나19가 젊은 세대보다 노년층에 더욱 치명적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탑골공원 주변의 노년층 인구는 예년보다 준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는 일정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있으며, 단순 수치를 넘어 현장 상황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좋지 않다. 그 중심에 무료급식소가 있다.

[무료급식 줄은 오히려 증가] 문을 닫았더니, 배곯은 노인들이 문을 두드리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사회복지원각의 고영배 사무국장은 "무료급식 줄을 서는 어르신들은 오히려 늘었다, (예전에 이 곳에서) 못 봤던 분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곳 무료급식소도 코로나19로 2월말부터 3월초까지 3주간 문을 닫았다. 급식 중단은 1993년 문을 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당초 무기한으로 무료급식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다시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고영배 사무국장의 말이다.

"무기한 중단을 하려고 했다. 어르신들이 밥을 드시다가 확진자가 나오면 어르신들한테도 송구스럽고 무료급식 운영도 큰 타격을 받으니까. 그런데, 닫힌 문을 두드리면서 언제 밥을 주냐고 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래서 급식을 하는 대신 길에서 빵, 떡, 우유, 요구르트를 나눠주기로 했다."

무료급식소를 제외하면,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은 확연히 줄었다. 탑골공원은 지난달 20일부터 문을 닫아걸었다. 탑골공원 돌담길의 수많은 장기판이 사라졌고, 낙원상가에 있는 실버 영화관도 문을 닫았다.

탑골공원 돌담길 초입에서 20년째 구두닦이를 하는 하아무개(67)씨는 최근 두 달 만에 다시 나왔다. 하씨는 "코로나19 때문에 두 달 동안 장사를 접었는데,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주부터 다시 이곳에 나왔다. 그런데 장사가 안 된다. 코로나19 확산 전에는 아침부터 낮 1시까지 일하면서 1만5000원 ~ 2만 원을 벌었다. 며칠 전 다시 나온 날에는 4000원 벌었다. 그만큼 사람이 없다. 무료급식소 앞 말고는 사람이 잘 안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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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탑골공원 돌담길의 모습.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탑골공원은 2월 20일부터 문을 닫았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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