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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창궐 이유? 철새 위한 습지 보호해야"

[화성습지는 생명이다 ①] 새들의 낙원... 되찾은 갯벌에 평화가 꿈틀거린다

등록 2020.03.27 08:41수정 2020.03.2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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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지 개발사업에서 생명의 땅으로. 전쟁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평화의 갯벌로 되살아난 화성습지. 그래서 긴 여정에 나선 도요새의 마지막 낙원이 된 그곳에 다시 공군 전투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습지는 생명이다. 그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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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호에서 관찰한 최소 1만 마리의 붉은어깨도요 (2018년 4월) ⓒ 화성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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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물떼새 무리 / 화성습지 ⓒ 화성환경운동연합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기세가 서해 작은 어촌 마을이라고 비켜갈 리 없다. 길가에 띄엄띄엄 보이는 사람들은 포근한 봄 날씨에 외투를 벗어들었다. 하지만 귀에 걸린 마스크만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한 나이 지긋한 어부가 장화를 신고 뒷짐을 진 채 항구 안쪽으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긴다. 누렇게 바랜 마스크를 차마 벗지는 못하겠는지 턱밑에 걸쳐뒀다.

화성습지 탐사에 나선 지난 18일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은 한산했다. 원래 시원스러운 바다 전망과 환상적인 일몰을 볼 수 있어 화성 8경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인근에 제부도와 공룡알 화석지, 탄도항, 전곡항 등 다양한 여행지가 많다.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도 먹을 수 있다. 코로나19만 아니었어도 서울 근교 나들이에 나선 사람들로 붐볐을 터다.

궁평항의 유혹을 밀쳐내고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신면 궁평리와 우정읍 매향리를 잇는 화성방조제(길이 9.8km) 들머리에서 탁 트인 바다(남양만)가 시야에 들어온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왼편으로 서신면·마도면·남양읍·장안면·우정읍에 걸쳐 있는 화성호(총면적 17.3km²)와 간척지가 펼쳐진다. 오른편 앞바다(서해)는 물이 빠지면 진회색의 기름진 개펄을 드러내 또 다른 모습으로 길손을 반긴다.

화성호 건너편 갈대숲 곳곳에서 날아오른 철새 무리의 군무가 장관을 연출한다. 철새들에게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좁아 보인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느라 답답하고 짜증 났던 가슴이 뻥 뚫린다.

[화성호] 건강한 습지... 도요새 등의 중간 기착지

생물다양성이 높은 화성습지이지만, 특히 대표적인 서식 생물종은 조류다. 화성습지는 2018년 12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네트워크 서식지'(EAAF Network Site; 국제철새서식지)로 지정되면서 공식적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전까지 오랫동안 '남양만'으로 불렸다. 화성호와 화옹지구 간척지, 매향리 갯벌 등을 포함한 73㎢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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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부리백로 / 화성습지 ⓒ 화성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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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락꼬리마도요 / 화성습지 ⓒ 화성환경운동연합

 
정한철 화성환경운동연합 교육국장에 따르면, 화성습지에서 3월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조류는 도요물떼새다. 알락꼬리마도요, 검은머리갈매기, 검은머리물떼새, 붉은어깨도요, 큰뒷부리도요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많게는 한 번에 3~5만 마리가 날아올라 카메라 앵글에 담기도 버겁다.

특히 3월에는 적도 근처에서 월동하고 번식하러 돌아오는 저어새와 겨우내 월동하고 이제 막 떠나는 노랑부리저어새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전 세계에 4,000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저어새를 만나는 일은 그래서 더 소중하고 반갑다. 도심의 하천이 아니라 유일하게 연안 습지(갯벌)에만 의존해서 사는 노랑부리백로도 있다.

이 물새들은 대부분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고,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이다. 호주, 대만, 중국, 북한, 러시아 등을 출발해 긴 여행을 하다가 먹잇감이 풍부한 화성습지를 중간 기착지로 활용한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화성습지는 지난 2015~2016년 조류 약 44종, 최대 약 9만7000개체가 관찰돼 생태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으로 평가받았다.

화성습지에는 물새의 먹이가 되는 굴·조개류, 게류, 고둥류, 지렁이류, 새우류, 작은 물고기류, 곤충류 등이 풍부하다. 갯벌과 바다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의미다. 정한철 국장은 "새는 건강성을 측정하는 지표"라며 "다양한 새가 많은 수로 관찰된다는 것은 화성습지가 건강한 생태계임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신호등 하나 없이 직선으로 뻗은 방조제 도로 위를 자동차로 달렸다. 중간 지점을 넘어서자 배들이 정박해 있는 작은 항구가 나타났다. 매향항이다. 항구 맞은편으로 지느러미 모양의 화성호 옆길이 나 있다. 길 초입 오른쪽으로 갈대가 무성한 '매향습지'가 펼쳐졌다. 잠시 차에서 내려 습지를 가로질러놓은 나무다리를 걸었다. 다리 한쪽에 야생동물의 배설물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갈대숲 사이로 얼룩덜룩한 무늬가 얼핏 스쳤다. 한 발짝 더 내딛자 그새 인기척을 느꼈는지, 빠르게 몸을 숨긴다. 고라니다.

아까부터 작은 매 한 마리가 먹이를 찾는지 멀찌감치 허공에서 맴돌고 있다. 화성습지는 물새뿐 아니라 맹금류의 천국이다. 매와 수리부엉이, 황조롱이가 대표적인 화성습지 텃새로 언제나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포유류는 일반 내륙 하천이나 산보다 다양하지 않은 편이다. 고라니와 너구리, 족제비 등은 흔하다. 특히 대표적인 멸종위기종 포유류가 살고 있는데, 바로 '삵'이다. 운이 좋으면 멧토끼(산토끼)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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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방과후 대안학교 '그물코학교' 친구들과 화성습지 탐방. 왼쪽 끝이 정한철 화성환경운동연합 교육국장. ⓒ 화성환경운동연합

 
과거 남양만은 대한민국 최대 가리맛조개 산지였고, 수백 년 동안 임금에게 석화(굴)를 진상하던 굴 특산지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80대 어르신이 허리 두들기며 2시간 바지락을 캐면 세금 다 떼고 7만 원쯤 받았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나서면 같은 시간에 20만 원까지 벌 정도로 생산성이 높았다.

2018년 9월 '도요새와 위대한 비행 그리고 화성 갯벌'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김충기 박사는 "갯벌 1㎢의 연간 가치가 63억 원에 달한다"며 "마르지 않는 통장"이라고 표현했다. 가치와 면적을 계산하면 화성 갯벌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약 2,200억 원에 달한다. 사실 습지의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다. 관광 산업의 가치를 제외하고도 산림의 10배, 농경지의 100배 가치가 있다고 한다.

[매향리 갯벌] 전투기 폭격으로부터 반세기 만에 되찾은 평화... 또 다시?

다시 방조제 도로로 나와 가던 방향으로 자동차를 달리면 방조제 끝을 붙잡고 있는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에 도착한다. 겨울철이면 매향리 고온항 인근은 '굴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 굴 값은 다른 지역에 비해 2배나 더 비싸다. 주민들이 새벽에 일어나 작업복에 호미·갈고리 등을 챙겨 갯벌로 나가 직접 손으로 채취한 자연산 굴이기 때문이다.

화성 갯벌의 자연산 굴은 양식 굴과 달리 밀물 때는 바다 아래서 살을 찌우고, 썰물 때는 햇빛을 보며 자란다. 그래서 작지만 고소한 맛이 곱절이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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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역사관 야외에 전시된 포탄들 ⓒ 화성시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 어귀를 돌면 길 끝에서 거대한 포탄 무더기를 만난다. 로켓 모양의 포탄이 하나도 아니고 수백 개는 족히 넘어 보인다. 매향리의 아픔을 씻기 위한 보상이자 기념의 뜻으로 만들어진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이다.

고온리(매향1·5리)에서 불과 1.5km 떨어진 농섬은 1951년부터 주한미군 공군폭격훈련장으로 사용됐다. 미군은 1년 250일, 1일 평균 11시간, 15~30분 간격으로 227kg짜리 연습탄 MK-82, 12kg짜리 BDU-33(방망이탄) 등 중형폭탄을 이 작은 섬에 쏟아부었다. 농섬과 함께 살던 물새와 곤충들, 나무와 풀들, 갯벌의 조개와 게들, 그리고 주민들은 포탄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생명력을 잃어갔다.

주민들은 반세기가 넘는 동안 전투기의 굉음과 혹시 모를 오폭 사고 위험에 시달렸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격장이 생긴 이래 피해를 본 주민은 모두 713가구, 4천여 명이다. 8개월 된 임신부를 포함해 오폭 및 불발탄 사고로 13명이 사망했고, 손목 절단 등의 중상을 포함해 22명이 다쳤다. 소음 피해는 더 했다. 지속적인 폭격 소리로 주민들은 심한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겪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32명에 달한다.

2005년 주민들의 지속적인 호소로 드디어 포탄과 총알이 난무하던 사격장이 폐쇄됐다. 주민들은 그로부터 또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정화 작업을 마친 평화롭고 아름다운 갯벌을 오롯이 되찾을 수 있었다. 문전호(64) 고온리 어촌계장은 "요즘에는 바다가 휴식기여서 석굴만 채취하고 있지만, 5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바지락 채취를 시작한다"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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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공군사격장 해상타깃이었던 매향리 농섬 배경 붉은어깨도요 3만 5천 마리 관찰. ⓒ 화성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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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갯벌 ⓒ 화성시

 
문전호 계장은 매향리 갯벌 일대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했다. 주민들이 자연 생태계를 그대로 보전하면서 다양한 생명과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지난날의 큰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바람이 더욱 간절했다.

"사격장이 폐쇄된 후에,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갯벌에 들어와 생태계가 망가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 지역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해서 주민과 자연이 함께 공유해서 살기를 원한다. 돈을 벌기 위해 바다 어장을 개발하는 것도 좋겠지만, 자연이 먼저 살아야 모든 게 살 수 있지 않겠나."

화성시도 매향리 주변 갯벌이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는 점을 들어 약 14.08km²(425만 평)에 대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경기도에 신청했다. 화성시는 화성습지 일대에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등을 포함한 조류 90종과 야생동물 7종, 저서생물 29종, 식물 31종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후 경기도로부터 신청서를 받은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9월 지정 추진안을 수립하고, 시·도로부터 의견을 수렴했다. 경기도는 해당 지역이 습지보호지역 지정과 관련한 법적 요건을 충족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원 군 공항(수원 제10전투비행단)의 화옹지구(화성호 내 간척지)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수원시가 반대하고 나섰다. 습지보호지역 지정으로 군 공항 이전 사업 논의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앞서 수원시의 이전 요청을 받은 국방부는 수원에 있는 군 공항의 예비 이전 후보지로 화옹지구를 지정했다. 이에 화성시는 습지 등 생태계 파괴는 물론 자치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화성시의 반대로 수원 군 공항 이전 논의는 전면 중단된 상태다.  

고온리에서 나고 자란 문전호 계장은 수원 군 공항의 화옹지구 이전 주장에 대해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농섬이 (미 공군) 사격장으로 쓰일 때, 엄청난 소음으로 주민들이 아픔을 겪었다. 다시 군 공항이 들어서면 그 소음이 또 시작되는 것 아닌가. 그 고통을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50년간 소음 속에서 살아온 우리만큼 그 고통을 아는 사람은 없다. 군 공항이 안보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주민들은 지난날의 아픔을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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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호 인근 곳곳에 걸려 있는 수원 군 공항(수원 제10전투비행단) 화옹지구 이전 반대 현수막. 작은 도요새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최경준

 
화성습지 탐방을 마치고 자동차를 돌려나오는 도로 곳곳에서 주민들이 걸어놓은 다양한 종류의 군 공항 이전 반대 현수막을 마주했다. 그중 한 현수막 하단에 작은 도요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결사적인 군 공항 이전 반대 문구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오랜 시간이 걸려 어렵게 되찾은 평화를 다시 빼앗기고 싶지 않은 주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저 도요새가 대신 들려주는 듯했다.

정한철 국장은 화성습지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설명했다. "현재 우리 지구촌을 두렵게 하는 코로나19가 창궐한 주원인으로 생태계 파괴가 꼽히고 있고,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것이다.

실제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인수공통감염병은 동물과 사람 간에 서로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하여 발생하는 감염병을 의미하며, 현재 새롭게 나타나는 감염병질환(emerging infections)의 약 75%가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알려졌다. 인수공통감염병의 원인으로는 병원체 자체(예, 높은 돌연변이 비율), 숙주인 인간의 행동 및 생활양식의 변화(예, 해외 이동 활성화, 항공이동의 발달 등), 생태학적 및 환경변화(야생동물 서식지 침범, 환경파괴 등) 등이 꼽힌다.

정 국장은 "코로나19는 인수공통감염병이며 이 같은 바이러스는 점점 더 많아질 거라는 게 과학자들의 전망"이라면서 "공군 전투기지가 화옹지구에 건설되면 습지의 생명다양성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조류들의 서식지가 파괴될 것이다, 철새의 서식지를 보호하는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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