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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의 전략이 궁금하다면, 김종인의 '과거'를 보라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이번에도 '구체적 약속' 없는 경제민주화 들고나올까

등록 2020.03.27 14:02수정 2020.03.2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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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하는 황교안-김종인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26일 오전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자택을 방문, 인사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미래통합당 총괄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 미래통합당 제공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알려진 김종인 전 의원이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 됐다. 26일 오전 황교안 대표와 박형준·신세돈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북한산 밑 서울 구기동 자택을 찾아 선대위 합류를 간곡히 요청한 결과다. 이로써 김 전 의원은 통합당의 4·15 총선을 총괄 지휘하고, 황교안 대표는 이낙연 전 총리와의 종로구 대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김종인은 국회의원 5선 출신이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1년 11대 총선 및 1985년 12대, 노태우 정권 때인 1992년 14대, 노무현 정권 때인 2004년 17대, 박근혜 정권 때인 2016년 20대 때 당선됐다. 그런데 다섯 번 다 비례대표(전국구) 당선이다.

지역구 선거에 한 번도 출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6월항쟁 이듬해인 1988년 13대 총선 때 서울 관악구을에 출마했다. 유일하게 지역구 출마였던 이 선거에서 김종인은 낙선했다. 당시 재선 국회의원이었던 48세의 민정당(민주정의당) 후보 김종인은 36세의 정치신인인 이해찬 평민당(평화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득표율은 이해찬 31.2%, 김종인 27.1%, 통일민주당 김수한 24.2%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해찬 현 민주당 대표의 국회의원 데뷔에 조연을 한 셈이 됐지만, 개표 이전만 해도 이해찬 후보는 관심권 밖이었다. 재선 의원인 김종인이 당 조직과 가문과 청와대 후광에 힘입어 훨씬 더 주목을 받고 있었다.

선거 25일 전 발행된 1988년 4월 1일 자 <동아일보> 기사 '여(與) 조직에, 야(野) 바람 기대'는 "민정(民正)의 김종인 의원은 금융사고로 의원직을 사퇴한 임철순 전 의원의 공조직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한 뒤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 '노태우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 등의 지식인 이미지로 지역구를 공략하고 있"다는 말로 관악구을 선거구의 분위기를 소개했다.

2선 의원, 지구당 공조직 장악,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 현직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 지식인 이미지 등이 강점이었지만, 김종인은 다크호스 이해찬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6월항쟁 이듬해에 벌어진 선거인 데다가 최초의 여소야대 국면이 조성된 선거라고는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민정당이 299석 중 125석으로 제1당 지위를 차지했다.

따라서 6월항쟁 직후의 민주화 열기 때문에 김종인이 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민정당 후보 125명의 당선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김종인이 강점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도 정치신인에게 패했다면, 패인을 김종인 본인에게서 찾는 게 좀 더 타당할 것이다. 그의 선거운동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한 번의 지역구 출마 사례를 갖고 '김종인은 자신의 선거운동은 잘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다. 그가 자기 선거운동을 잘한다고 입증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남의 선거'는 잘하는 사람

자기 선거운동을 잘한다는 점은 입증하지 못했어도, 그는 '남의 선거'는 꽤 잘했다. 소속 정당의 선거를 책임지거나 깊이 관여하는 경우에는, 그는 선거를 잘하는 사람이란 면모를 보여줬다. 2011년 12월 19일 출범한 한나라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참여한 이래, 그는 새누리당(한나라당)의 2012년 19대 총선, 대선후보 경선, 18대 대선과 더불어민주당의 2016년 20대 총선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이명박 취임 직후의 2008년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은 299석 중 153석을 차지했다. 6월항쟁 이후의 소선거구제 하에서 보수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한편, 새누리당은 이명박 집권 5년 차 때인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도 300석 중 152석을 차지했다.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외형상 비슷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19대 성적이 훨씬 좋았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로 인해 이명박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2011년 들어 친이계(이명박계)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서울시장을 비롯해 42명의 지자체 장(長) 및 의원을 뽑는 10·26 재보궐선거 당일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서관이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와 원순닷컴(박원순 홈페이지)을 교란하는 이른바 '디도스 공격'이 있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나라당의 위기가 가중되고 홍준표 대표가 사퇴한 가운데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출범했다. 그런 뒤 12월 27일 김종인 등 11명이 비대위원에 임명됐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152석을 얻은 것이기에, 새누리당의 19대 총선 성적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비대위 체제 하에서 '김종인=경제민주화' 이미지를 굳힌 김종인은, 이 체제 하에서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이미지를 갖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박근혜의 '경제 멘토' 입지를 굳힌 그는 그해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에서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의 외피를 입도록 하는 데 공을 세웠다. 진보 진영의 상징물처럼 여겨졌던 경제민주화가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물건처럼 인식됐던 것이다.

이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로 인해 '좌클릭'이란 표현이 유행했을 정도다. 경제개혁연구소가 발행하는 <이슈&분석> 2016년 4월호에 실린 위평량 연구위원의 논문 '20대 총선 여야 4당의 경제분야 공약 비교분석'은 2012년을 회고하는 대목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보수세력 및 집권당이 이른바 좌클릭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을 표방하였다"고 소개한다.

또 이 논문에는 "새누리당은 19대 총선 때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핵심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이례적인 모습"이라는 대목도 나온다. 김종인의 선거 가담이 새누리당을 그처럼 '이례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민주화 투쟁이 뜨겁던 20세기 후반, 김종인은 전두환·노태우 정권 편에 서서 경제민주화를 외쳤다. 이 시기에 그는 '큰 틀에서는 경제민주화를 공언하되, 세부적인 약속은 하지 않는 접근법'을 구사했다. 대중과 보수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타협적 노선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는 경제민주화 이념이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에 규정되도록 만들면서도, 누진세·토지공개념·금융실명제 같은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런 접근법은 6월항쟁 이후에 대중의 정치적 도전을 다소 무디게 하는 한편, 보수정당이 기존 색깔을 거의 그대로 지키면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공헌했다.

경제민주화 외쳤지만... 당선 후엔 실종?

촛불혁명의 전조(前兆)로 정치체제의 동요가 나타난 21세기 초반, 김종인은 정치 일선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접근법은 여전히 똑같았다. 이 점은 2012년과 2016년에 그가 경제민주화 전도사의 이미지를 풍기면서도,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비전은 제시하지 않은 데서도 드러난다.

그의 가세로 인해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와 친숙한 듯이 보였지만, 실상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었다. 이는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박근혜·안철수 후보의 경제분야 공약에 대한 경제개혁연대의 비교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이 단체가 발행하는 <경제개혁이슈> 2012-7호에 실린 위평량의 '제18대 대통령후보 3인의 경제분야 정책 비교분석'에 따르면, 김종인의 조언을 받는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표에 제시된 검정 삼각표는 '미흡'이란 의미다. 재벌 정책에서만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에 근접했을 뿐 나머지 분야에서는 현저히 뒤떨어졌다.
 

본문에 언급된 표. ⓒ 위평량, 경제개혁연대


또 대선 직후에 박근혜 당선자가 보여준 행보 역시 박근혜 진영의 진짜 속내를 잘 드러낸다. 2013년 2월 21일 자 <한겨레> 기사 '팽 당한 경제민주화 ··· 표현 바뀐 채 하위 전략 밀려'는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대선 직후에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로 명칭이 바뀌었다면서 이렇게 보도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경제민주화를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 과제' 가운데 첫 번째로 들었고, 11월 18일 비전 선포식에서도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3대 국정지표 가운데 하나로 삼겠다고 공약했다. 선거기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 정보로 열거한 '박근혜 핵심 공약' 1번도 경제민주화였다. 그러다 선거 직전 발간된 대선 공약집에는 10대 공약 가운데 9번으로 밀렸고,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정목표에서 탈락했다."


경제민주화를 공언하되 세부적 약속을 하지 않는 접근법으로 인해 박 정권이 이처럼 쉽게 발을 뗄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때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됐던 방법이 21세기에 박근혜 정권을 위해 또다시 요긴하게 활용됐던 것이다. 김종인이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한 20대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도 경제민주화에 관한 구체적 비전은 나오지 않았다.

알맹이 없는 공약을 내놓으면서도 김종인의 당이 경제민주화와 가까운 듯한 이미지가 형성되는 데에 적지 않게 기여하는 것들이 있다. 그가 헌법 제119조 제2항을 만들었다는 사실 외에 두 가지를 더 거론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김종인의 이미지다.

김종인한테서는 경제민주화 외에 다른 느낌들도 많이 풍겨난다. 권력에 대한 강력한 의욕도 보이고, 고집스러움이나 비타협적인 면도 보이고, 자기 뜻을 이뤄줄 주군을 물색하는 지사의 풍모도 보이고, 어딜 가나 전권을 요구할 것 같은 느낌도 나고, 마음이 틀어지면 언제라도 짐을 쌀 것 같은 느낌도 풍긴다.

이런 이미지는 김종인이 선택하는 후보나 당 대표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를 어느 정도 높여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대중은 김종인과 손잡은 정치인이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또 하나는 김종인의 '인증'이다. 그는 자신과 손잡은 후보가 경제민주화론자인 듯이 공개적으로 선전을 한다. 이런 선전이 인증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일례로, 2012년 대선 전에 박근혜 후보와 갈등을 빚다가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는 투표 10일 전인 12월 9일 공식 석상에 복귀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은 변함없이 확실하다."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불리는 그가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대해 다시 한번 인증을 해준 것이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를 높여줄 만한 발언이었다.

김종인은 2020년 현재도 그런 '인증'을 해주고 있다. 3월 26일 자 인터넷판 <신동아> 기사 '김종인, 황교안은 정직한 사람... 경제민주화에 의지 있어'에 따르면 "황 대표에게 경제민주화 의지가 있나?"라는 기자의 다소 부정적인 듯한 질문에 대해, 김종인은 자신만 알고 있는 이야기라며 이렇게 답변했다.
 
"황 대표가 말이야. 이건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 시절에 내건 경제민주화 공약 중 대표적인 것이 상법 개정이었다. 이후 황 대표가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으로 있을 적에 법무부에서 상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그러고 국무회의에 상정까지 했는데, 박 대통령이 개정안에 독소 조항이 있다고 뭉개버렸다. 그래서 무효가 됐다. 그때 안 거지."


황교안이 경제민주화론자라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자신이 그때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 비밀이 21대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김종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경제민주화 이미지를 활용해서, 자신과 손잡은 후보나 당 대표에게 경제민주화 이미지를 씌워주는 김종인의 선거전략 중 하나를 드러낸 대목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황교안을 경제민주화론자로 새롭게 부각시키는 동시에 "박 대통령이 독소 조항이 있다고 뭉개버렸다"며 2012년에 자신이 경제민주화론자로 띄워준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정당이 위기에 처한 6월항쟁 직후와 2012년에 김종인은 구체적 공약을 기피하고 큰 틀의 경제민주화를 거론함으로써 대중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또 자기 후보의 경제민주화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후보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데도 성공했다.

자기 선거를 잘한다는 점은 입증하지 못했어도 남의 선거는 잘해준다는 평을 받는 김종인의 비결 중 하나를 그런 데서 찾을 수 있다. 촛불혁명이란 대위기를 겪은 뒤 처음 치러지는 21대 총선에서 위기의 보수정당을 지휘하게 된 그가 이번에도 과거 전략을 답습할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된 전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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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저서: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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