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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1863화

"병원에서 일하시잖아요..." 유치원에서 아이를 거부하다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 ③] 의료진 응원하는 목소리 뒤편의 배제와 외면

등록 2020.03.30 19:42수정 2020.03.3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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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이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한가운데 놓인 보건의료노동자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합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코로나19 일일 상황보고 체계를 통해 개별 의료기관의 문제를 중앙에서 취합하고, 지방의료원지부, 특수목적 공공병원지부 등 의료기관 특성별 간담회를 가지며 현장 고충을 한데 모아 제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에 등장하는 인터뷰는 모두 보건의료노조 산하 지부 노동자들의 목소리임을 밝힙니다. [편집자말]

코로나19 의료진이 묵는 빈 병동의 침상 ⓒ 보건의료노조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 중 많은 수가 근무 후에도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의료지원이나 파견을 위해 떠난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 근무하는 많은 의료진이 근무 후에도 집에 가지 못한다. 대신 이들은 빈 병동이나 임시 숙소로 향한다. 빈 병동의 침상에서 지내거나 방음이 잘 안 되는 모텔에서 잠이 든다.

코로나19 확진환자와 접촉할 때 의료진은 원칙적으로 방호복과 마스크 등 방호 장비를 착용한다. 근무 후에는 모두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하지만 혹시나 자신이 감염돼 가족과 이웃에게 전파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주위의 꺼려하는 시선 때문에 많은 코로나19 의료진이 집에 가지 못한다. 사실상 자가격리나 마찬가지다.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 A씨는 "이제 태어난 지 100일 된 딸을 영상통화로 봐야 했다"라면서 숙소에서 홀로 울음을 터뜨렸던 일을 이야기했다. 다른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B씨는 "병원에서 나올 때마다 샤워한다고 해도 병원을 오간다는 사실이 스스로 부담스럽다"면서 "아파트 주민들이 병원에서 일하는 것을 알아 부담스러워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피한다"라고 집에 가지 못하는 고충을 토로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은 전시상태 야전병원과 같이 운영되고 있다. 입기만 해도 땀이 뻘뻘 나는 방호 장비를 착용한 채 일해야 하고 시간 외 근무도 일상적이다. 적어도 근무 후에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OO공공병원에서 일하는 C씨는 "외부 숙소 예약도 쉽지 않아 건강검진 센터에 침대를 놓고 숙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 공공병원에서는 전체 병동을 반으로 나눠 한 편에는 환자가, 반대편에는 의료진이 잠을 자기도 한다. 병원에서 일하고 퇴근해 병원에서 선후배·동료와 함께 쉬고 잠이 든다. 때때로 위급 환자가 발생했다는 방송도 들린다. C씨는 "퇴근 후에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 일하는 D씨는 병원 주변 모텔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D씨는 "계약 만료 등으로 숙소와 객실을 여러 번 옮겨야 했다"면서 "방음조차 잘 되지 않는 숙소에서 지낼 땐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옷 세탁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D씨는 "간단한 빨래는 손으로 하고 옷은 며칠 분을 가져와서 입다가 집으로 보낸다"라고 답했다. 코로나19 발생 두 달이 지나고 '장기전'이 회자되는 지금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의 현실이다.

방호복 안, 마스크 뒤에 사람이 있다
 

한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 병동 절반을 나눠 한쪽을 의료진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병원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했어요."


OO공공병원에서 일하는 E씨는 무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치원 측에서 "병원 다니시잖아요"라고 말하며 내원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식으로 말하고, 같은 유치원의 학부모들이 "병원에서 일하는데 위험하지 않냐", "괜찮겠냐"라며 분위기를 조성한 결과였다. E씨는 "우리 병원 직원 중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한 사람이 더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E씨는 병원에 확진 환자를 받기로 한 이후 "(병원 근처의) 아파트 대표가 병원에 전화해서 '아파트 주민들이 너무 위험하니 우리에게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지급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 일하는 F씨는 "의료진이 집에 다녀오는 모습을 본 주민들이 병원에 항의 민원을 제기했다"라면서 "바로 앞집 이웃이 의료진인 걸 알고 항의 전화를 한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반복되는 항의에 병원 측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뒷문으로 다녔으면 좋겠다'라고 직원들에게 전했다. 병원 측의 말은 의료진에게 다시 상처로 다가왔다.

'백의의 전사'라며 의료진을 응원하는 목소리 뒤편에는 배제와 외면이 있었다. 위험하고 힘든 업무에 더해, 코로나19 의료진은 바이러스인 양 취급하는 시선에 고통받고 있다.

방호복 안, 마스크 뒤에 사람이 있다. 확진세가 꺾였다지만, 여전히 하루 100명 내외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 확진자 수는 70만 명을 넘겼다.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재난 상황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전선에 서 있는 의료진의 재충전을 도와야 한다. 

배제와 외면은 재난 극복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재난을 극복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들에게 전국민적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힘든 업무를 마친 뒤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배제와 외면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오늘도 묵묵히 병원 현장을 지키고 있다.
 

집에 가지 못한 의료진이 머물기 위해 건강검진 센터에 간이 침상을 놓았다. ⓒ 보건의료노조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 ①] "현장 잘 안다"는 보건복지부 장관님, 이 사진을 보십시오
[코로나19, 현장의 목소리 ②] 컵밥 먹으며 컨테이너 생활... 대구 의료진 "미래 안 보여"
 
덧붙이는 글 글쓴이 지산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홍보부장입니다.
#코로나19 #코로나 #보건의료노동자 #보건의료노조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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