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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다움'이란 건 없다

[여자의 소설] 최진영 작가 '이제야 언니에게'... 살아남기 위해 매일 싸워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

등록 2020.04.05 19:23수정 2020.04.0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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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소설가가 통찰력 있게 그려낸 여성 서사를 통해 여성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 여성에게 의미 있는,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여성 서사가 우리 삶에 스며들길 기대합니다.[기자말]
최진영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를 읽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소설 속 이제야가 2차 가해 당하는 장면에선 진이 너무 빠져 책을 여러 번 덮어야 했다. 리뷰를 위해 발췌하면서도 몇 번이나 울거나 쉬었다.

제야는 당숙에게 강간을 당했다. 울며 불며 제발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당숙은 힘으로 제야를 제압했다. 제야는 겁에 질려 제대로 반항도 못했다. 당숙과 헤어지고 받은 문자에는 이모티콘을 섞어 답문자를 보냈다. '아저씨도 안녕히 주무세요.'


강간범에게 답문자는 왜 하고, 이모티콘은 왜 넣었느냐고? 답문자를 안 하면, 의심스럽게 보내면, 당숙이 집으로 찾아올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 문자는 나중에 '서로 좋아서 그랬다'는 당숙의 말에 힘을 실어준다. "이게 성폭행범과 피해자 사이에 주고받은 문자처럼 보이느냐"고 강간범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제야는 당숙을 감옥에 집어넣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갔다. 그런데 경찰은 제야가 경찰서에 혼자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제야를 의심했다. "진짜 그런 일 겪은 애들은 (중략) 아무것도 못하고 방에만 처박혀 있다가 미쳐버리고 말지 학생처럼 이렇게는 못해."

제야의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다며 2차 가해도 서슴지 않았다. "학생, 생각해 봐.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저항이란 걸 해. 그러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어. 근데 학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잖아."
 
저항하면 죽을 것 같았다고 제야는 소리를 질렀다. 강간이 잘못이지 반항하지 않은 게 어떻게 잘못이냐고 발을 구르며 소리 질렀다.
학생.
경찰이 제야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학생 말하고 행동하는 거 보면 전혀 피해자 같지 않아.
피해자 같은 게 뭔데.
그냥 당하고만 있었을 것 같지 않다고. 진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젯밤에 신고했어야지. 여기서 소리 지를 게 아니라 어젯밤에 그 남자 앞에서 그랬어야지.

그 날 이후 소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록산 게이의 <헝거>를 떠올린다. '피해자다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아마 내가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해봤기 때문일 테다. '만약 록산 게이가 성폭행 신고를 했다면 법원은, 경찰은,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어줬을까?'

열두 살에 성폭행을 당한 록산 게이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성인이 된다. 한동안은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낸다. 그녀는 여전히 공부 잘하는 착한 딸이고, 사귀던 남자 친구와도 잘 사귀고 있다. 겉으로는. 하지만 그녀의 남자 친구가 그녀를 집단성폭행으로 유인한 장본인이었다는 것, 그녀가 그에게 되돌아간 건 "그것 말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몰라서였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 날 이후 소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녀 스스로 말하듯 비포, 애프터가 분명한 삶이다. 차이는 눈으로 확연히 드러났다. 그녀는 어느새 190센티미터의 키에 261킬로그램이 나가는 거구가 되어 있었다. 다시는 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남자들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먹고 또 먹은 결과였다.

이런 그녀가 시간이 흘러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신고한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강간을 당한 여자가 강간범과 계속 연애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 강간당했다는 날 이후에도 공부도 잘하고 아주 멀쩡했다는데 피해자가 그럴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 등등 그녀의 '피해자답지 않은 모습'에 우선 '2차 가해'부터 하고 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누누이 말하지만 '피해자다움'이란 건 없다. 그 누구도 성폭행 피해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떻게 행동할지 알지 못한다. 성폭행을 당하고도 성폭행범과 연애를 계속 이어갈 수도, 밥을 먹을 수도, 그를 위해 일을 할 수도, 이모티콘을 넣은 문자를 주고받을 수도, 같이 살 수도 있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에서 성폭력 전문가 아이리언은 말한다.
 
"종종 트라우마는 우리의 예상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에서 열여덟 살 마리 또한 제야와 같은 이유로 의심받는다. 피해자답지 않다는 거였다. 마리는 강간을 당했음에도 초연해 보였다. 잔디밭을 구르며 웃고 떠들기도 했으며, 친구들에게 자기가 강간을 당했다고 떠벌리기도 했다. 마리의 진술은 시종일관 뒤죽박죽이었다. 이렇게 말했다가 저렇게 말했다.

결국 마리는 허위 신고로 기소됐고, 법원에 벌금까지 물었다. 만약 강간범의 카메라에서 공포에 젖어 있는 마리의 사진을 찾지 못했다면, 그녀는 평생 허위 신고자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마크 오리어리라는 연쇄 강간범을 추적하는 이 논픽션에는 강간 피해자들이 여럿 나온다. 그런데 이중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피해자다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피해자들을 묘사하는 말들은 이런 식이다. "굉장히 이성적인 태도였고, 전혀 감정적이지 않았죠. 감정을 분출하거나 평정심을 잃은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피해자는 이런 식이었죠.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같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봅시다.'" "히스테리컬 하지 않았습니다." "차분하고 담담했다." "침착해 보였다." 그렇기에 이 책이 시종일관 견지하는 태도는 이것이다.
 
"성폭력이라는 트라우마에 대한 피해자의 반응이 신뢰도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 여성들은 또한 강간을 당할 때도 아무도 반항하지 않았다. "이 여성들은 거의 서너 시간 동안이나 학대를 견뎠다." 학대를 견디며 비명도 안 질렀고, 몸싸움도 안 했다. 당연히 몸에 상처도 없었다. 성폭행 유무를 피해자가 얼마나 격렬히 반항했는지를 두고 판단한다면, 세네 시간에 걸쳐 여러 번 강간을 당한 이 여성들은 아무도 강간을 당한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책표지 ⓒ 창비

 
소설의 중반부 이후는 그날 이후의 제야의 고통을 그린다. 제야는 강간을 당한 것이 아닌 게 됐으며, 하루아침에 평판이 나빠진 여자가 됐다. "나는 이제 가만히 있어도 음흉한 애다. 헤픈 애고, 착각하는 애고, 꿍꿍이가 있고, 남자를 꼬드기는 애다." 모두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주목했다. 모두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잘못했다고 했다. 일 키우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그래야 너에게 좋을 것이라고 어른들은 제야에게 말했다. "내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어떤 독자는 소설의 중후반부를 읽으며 이런 기대를 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야가 조금이나마 괜찮아지면 좋겠다고, 그 아이가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좋은 어른인 강릉 이모의 품 안에서 치유되면 좋겠다고.

그 날 이후 가방에 과도를 넣어 다니게 된 제야가, "남자 무리에 있으면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입술을 물어뜯는" 제야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대신 당숙을 칼로 찔러 죽이고 말겠다는 제야가, 여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으면 집까지 따라가 무사히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제야가, 늘 죽음을 떠올리는 제야가, 그래도 이모에게서 힘을 얻어 천천히 그 날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실은, 내가 그랬다. 스스로를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어른들로부터 상처 받은 제야에게, 강릉 이모가 어른들을 대표해 "어른으로서 미안해, 제아야. 정말 미안해" 하고 말했을 때, 제야가 울었을 때, 제야가 조금씩 나아지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책을 계속 읽어나가며 나는 이런 기대가 폭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갔다. 진심으로 상대방이 괜찮아졌으면 좋겠다는 이런 마음 자체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그들이 자기 자신을 탓하게 하고, 더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선의라고 포장될 수 이런 기대나 마음이 결국은 나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자, 아무것도 모르면서 '피해자다움'을 운운하는 사람들과 내가 뭐가 그리 크게 다른가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왜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기대하고 바라는가.  

제야는 강릉 이모와 지내면서 힘을 내는 듯도 보였다. 다시 미래를 계획하고, 일상을 영위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수능을 봤다. 하지만 대학에 다니던 제야는 다시 몸이 굳었고, 죽을 것 같았고, 다시 그날로 돌아갔다. "그것은 기생충처럼, 병균처럼, 생물처럼 산 채로 제야를 간섭했다. 지나간 일이 아니었다." <헝거>에서 록산 게이도 말했다. "매일같이, 하루도 빠짐없이 그 과거를 데리고 다닌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에서 몇몇 여성들은 자신들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나 '승리자'로 불러주길 원했다. 살아남았다는 데서 생존자이자, 죽음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다는 데서 승리자다.

생존자나 승리자라는 호명은, 강간을 당한 그 날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죽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호명이 아니다. 그 날 이후의 시간에 대한 호명이다. 그 날 이후, 그녀들은 죽는 것이 더 당연할 만큼 끔찍한 하루하루에서 살아남았고 승리했다. 제야 역시 매일매일을 생존자이자 승리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소설의 끝엔 희망이 있을까. 희망을 봤다면 그것 역시 내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본 것 아닐까. 하지만 난 제야가 조금은 강해진 것 같아서, 그녀가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론 다시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돼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과거를 지닌 채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어서, '약간의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돼서,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에 관심을 갖게 돼서, 아래처럼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게 돼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난 늘 무서워 제니야. 그건 장소 문제가 아니야. 누군가와 같이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니지. 앞으로도 나는 늘 무서울 거야. 나는 비로소 그것을 이해했어."

제야는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당숙이 늙고 늙어 힘이 없어지면 갚아줄 거라고 했다.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을 뒤에 두고 다시 0에서 시작할 거라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 거라고 했다. "나와 잘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제야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동생 제니에게 말했다. 만약에 너에게도 나와 같은 일이 생기면, 죽일 수 있다면 죽여. 그리고 넌, 살아남아. 제야는 살고 싶다고 했다. 
 
"살 수 있는 만큼 다 살아내고 싶은 마음 같은 것. 제야는 살아내고 싶었다."

이제야 언니에게

최진영 (지은이),
창비, 2019


#이제야언니에게 #최진영 #피해자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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