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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이 수렵보다는 우월하다는 고정관념

[서평] 제임스 C. 스콧의 '농경의 배신'

등록 2020.03.31 15:01수정 2020.03.3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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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농경에 의존해 살아간다. 우리는 직접 논이나 밭에서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농경 생활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우리의 식탁에 올라간다. 이는 너무 당연해서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사실로 여겨진다. 농경민에 비하면, 수렵을 하거나 채집을 하는 이들이나 그들의 생산물을 먹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수렵이나 채집을 하는 이들은 대개 미개하거나, 문명도 모르는 야만인으로 그려진다. 부족 생활을 하기에 국가나 제도도 모르고, 농사를 지을 줄 모르기 때문에 고통받는 삶을 산다고 여겨진다. 외국의 부족을 찾아가는 형태의 TV 프로그램 중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 사는 부족들을 매우 원시적으로 묘사하는 것들도 있다.


우리가 수렵과 채집의 시대를 지나 농경에 기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농경이 항상 수렵에 우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더 나아가서, 정주 생활이 이동 생활보다 매력적인 것도 아니었다.
 

농경의배신 ⓒ 제임스C.스콧

 
'농경의 배신'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농경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책이다. 정확히는 문명의 발전 단계에 있어서 농경이 가지는 위치에 대해 검토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C. 스콧은 예일대학 정치학 스털링 석좌교수이자 농경연구프로그램 공동책임자다. 그는 관습적인 기존의 역사 서사를 거부하는 인물이다.

저자는 농경이 수렵, 채집보다 반드시 우월하고, 농경의 수확을 맛본 사람들은 이주 생활을 포기했다는 통념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고고학적인 발견과 최신의 연구성과에 따라 과장된 농경의 가치에 의문을 표한다.

저자는 일정한 경작지에서 농경을 하는 것이 그 이전에 인류가 살던 다른 모든 방식보다 우월하고 매력적이라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정착생활 자체가 이동생활보다 우월하고 매력적이라는 전제도 확실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아예 정착생활이 인류 역사의 보편적 열망이라고 볼 근거가 전혀 없다고 본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농경은 애초에 사람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농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곡물만으로는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렵을 통해 얻는 고기, 생선으로는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었지만, 농경으로는 단백질을 섭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농경민들은 수렵민과 달리 키도 작았고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건강하지도 않았다. 곡물이 수확을 기다리는 황금 들판의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농경민들에겐 참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농경 이전의 여성은 수렵한 짐승, 물고기, 식물성 기름에서 나오는 오메가6와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식단을 유지했다. 이런 지방산은 체내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형성에 반드시 필요한 철분의 흡수를 용이하게 해주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곡물이 주가 되는 식단은 필수 지방산이 부족할 뿐 아니라 철분의 체내 흡수를 억제한다. -153P
 
게다가 높은 인구 밀도로 인해, 농경민들은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도 높았다. 전쟁과 포로, 이주로 인한 인구 이동은 자연스럽게 질병을 가져왔다. 농경민들은 야생에서 음식을 얻을 기회를 잃었고, 고기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때문에 농경민들은 탄수화물 함량이 높아진 단순한 식단에 의존했고, 비타민과 단백질의 부족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그렇게 영양이 부족한 몸으로 질병에 저항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여기에 더해, 인간이 가축을 길들여 키우면서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위험한 질병도 탄생했다. 과거의 의학 기술을 생각해보면 이를 완치할 방법도 딱히 없었고,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신석기 시대에 농경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농경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졌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또 저자는 농경뿐만이 아니라, 국가에 중점을 두고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고대 국가들은 매우 허약했고, 오랜 세월 유지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국가의 중심지를 떠났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중심지를 떠나는 것을 역사의 암흑기라고 보지만, 저자는 그런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는 붕괴를 개탄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억압적이면서도 연약한 복합체인 국가가 더 작은 파편으로 분해되는 과정일 뿐이라고 본다. 그리고 고대 국가 중심의 붕괴가 반드시 인명 손실로 이어진 것도 아니라고 본다. 인구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들을 특정짓는 인구의 분산은 전쟁, 세금, 전염병, 흉작, 징병을 피하기 위한 도주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국가의 통치 아래 집중화된 정착생활에서 비롯된 최악의 손실들을 막아주었을 것이다. -274P
 
결국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농경과 국가의 기능에 대한 우리의 인상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는 셈이다. 농경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선호되는 선택지가 아니었고, 국가의 붕괴는 문명의 소멸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책은 국가와 사람들의 삶을 별도로 본다. 국가의 식량 생산 변동과 인간의 영양 상태 변화를 구분하고, 국가의 멸망과 인류의 손실을 따로 구분한다. 이러한 사고는 우리가 은연 중에 가지는 국수주의적인 세계관과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저자는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역사의 서사를 넘어서서, 암흑기에 국가를 떠난 사람들, 정주 생활을 거부하고 이동 생활을 선택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문명을 바라본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새로운 관점에서 과거를 생각하는 안목도 기를 수 있다.

농경의 배신 - 길들이기, 정착생활, 국가의 기원에 관한 대항서사

제임스 C. 스콧 (지은이), 전경훈 (옮긴이),
책과함께, 2019


#농경 #수렵 #역사 #채집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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