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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보러온 초등생 엄마에게 내가 뱉은 부끄러운 말

[동네의사의 기본소득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

등록 2020.04.03 08:31수정 2020.04.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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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의 기본소득'이 매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네의사'는 과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고, 한국 최초의 에볼라 의사이기도 합니다. '동네의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풀어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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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로부터 외면 당한 장애아동의 슬픈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 송윤서, 최시은

 
나는 왜 그랬을까? 그때를 떠올리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서 숨고 싶다. 15년 전쯤이니까, 필자가 의사로서 환자를 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 중년 여성이 열이 나는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동네의원에 왔다. 난 그 아이가 좀 다르다는 사실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지적장애인이었다. 난 환자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고집을 꺾고, 대신 보호자에게 물었다.

"어젯밤 열이 났다고요? 혹시 열이 얼마나 났나요?"

중년 여성은 조금 당황해하며 답했다.

"제가 어제는 함께 있지 못해서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많은 보호자는 아이들의 증상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열이 펄펄 끓는다'라고 하지만 미열뿐이거나, '기침 때문에 며칠을 한숨도 못 잤다'라고 하지만 아이가 잘 뛰어놀기도 한다. 더구나 이 여성은 어젯밤 아이와 함께 있지도 않았다. 가족이 아닌 사람이 아이를 병원에 대신 데려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내 입에서는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엄마가 아니신가 봐요?"

'억장이 무너진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 순간 그녀 안에서 무엇인가 무너져 내린 것 같다. 마치 조건반사처럼 그 여성의 눈은 충혈되고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습기 가득한 한숨을 참으로 길게 내쉬었다.


"하... 제가 이 아이 때문에 얼마나... 어떻게 그런 말을..."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제야 지적장애 아이와 함께한 세월 동안 그녀가 느꼈을 죄책감, 분노, 좌절, 슬픔이 나에게도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녀에게 제대로 사과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나간 채 겨우겨우 진료를 마쳤던 것 같다. 나는 언제쯤 타인의 슬픔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제가 죽고 나면, 그때가 걱정이지요"

부끄럽게도 그 시절 필자는 중증장애인 가정을 방문해서 도움을 드리는 의료인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방문한 집에는 60대 여성이 30대 지체 장애인 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아들은 자리에 누운 채 온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도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의사소통은 가능하다는 그 아들과 어머니는 살가운 대화를 나누셨다.

몸은 이미 다 커버린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것은, 온전히 어머니의 일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두 식구만 남게 되었을까?' 안타까울 수밖에 없을 그 가족의 사연이 궁금했지만, 난 묻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종일 아들과 함께 지내야 하니, 따로 소득이 있을 리 없었다. 정부에서 나오는 약간의 생계급여가 유일한 목숨줄이었다. 뜻밖에 너무 밝았던 어머니의 담담한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요즘은 다 잊고서 아들과 즐겁게 살아요. 다만 제가 죽고 나면, 그때가 걱정이지요."

'그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시선을 돌리다

2000년대 초에는 장애인 자립 생활을 위한 그룹홈이나 자립생활센터도, 방문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보험도, 장애인의 이동을 위한 콜택시나 저상버스도 없었다. 장애인은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기보다, 특별히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가족이 지거나, 장애인을 사회에서 분리할 수밖에 없는 '시설'이 맡았다. 중증장애인들이 지하철 철로에 자신의 몸을 묶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치던 때가 바로 2002년이었다.

'정상인'의 눈에 잘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어있던 장애인들이 처음 거리로 뛰쳐나온 해였다. 그제야 우리는 장애인도 '이동하고픈 욕구를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문제는 쇠사슬로 몸을 묶은 장애인들이 아니라,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 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장애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로 향했다. 그 이후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한 시간이 흘렀다. 우리 사회는 모두를 동등한 구성원으로 맞이하고, 함께 아파하며 돌보는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을까?

"삶 자체가 너무 힘들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는 안타까운 사연을 많이 만들고 있다. 지난 3월 17일 발달장애를 앓고 있던 고등학생 A군과 그를 돌보던 어머니 B씨가 함께 목숨을 끊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 B씨는 지난 16일 유서를 남긴 채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섰고, 17일 오후 서귀포시 남원읍 인근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유서에는 '삶 자체가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경찰 관계자는 "개인 가족사에 의한 사건으로 구체적인 언급은 어렵다"며 "일각에서 제기된 코로나19 감염 우려 또는 돌봄 부담 때문이라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물론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을까?

요즘 공공장소 어디를 가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알리는 공익광고를 만날 수 있다. 진료실에서 '엄마 맞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지적장애 어린이의 엄마, 자기 죽음 이후를 걱정하던 지체장애인의 엄마,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자살을 선택했던 엄마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는, 공감하고 위로하는 손길과는 분명히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넘어서 연대하는 사회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강력한 논리 중 하나는 이렇다.

'온 국민에게 적은 돈을 골고루 나누어주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만 집중적으로 지원해 주자. 그럼 그들의 삶이 훨씬 좋아지지 않겠는가?'

일단 기본소득운동은 장애수당이나 연금, 특수교육, 보건의료 등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현물이나 현금 형태의 사회복지서비스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사회복지서비스가 더욱 확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의 도입을 위해 기존의 취약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축소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기본소득은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충분한 수준의 기본소득 역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참된 공동체나 사회적 안전망은 공적 서비스, 그러니까 보상을 통한 서비스 교환만으로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서비스는 아무리 촘촘하게 짜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공적 서비스는 딱딱하고 비효율적으로 흐를 수 있다. 이웃사촌이나 지역사회가 공동체를 완성할 수 있다. 돈 버는 노동에 대한 압박, 먹고 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기꺼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의 정신이다. 지금 우리에겐 사회적 거리가 아니라 연대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상훈씨는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공동위원장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19 #발달장애인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모자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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